[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성장통]당장은 밑지나 길게 보고 가자

거래처의 자재 위기에 온몸으로 대처

기사입력 : 2019-07-17 06:00 (최종수정 2019-07-18 10:11)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이과장님! 혹시 내일 저녁까지 기름 좀 넣어 줄 수 있겠어요?"

일과를 마치고 막 잠자리에 드는 데 휴대폰에 이런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베트남에서 거래하는 대기업인 A사의 담당 차장 전화였다. 거래하는 여러 품목 중에 한 번도 거래한 적이 없는 자재였다. 뭔가 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재는 주문에 따라 날짜를 맞춰서 한국에서 해상운송으로 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까지?' 정신이 확 들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운송이 문제였다. 항공운송으로 연결되면 '이건 손해보는 장사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렇게 베트남 호치민에서 늦은밤 잠자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 일화의 주인공인 이현수(가명)씨는 지난 2013년 8월에 베트남으로 갔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과정(GYBM) 연수를 마치고 호치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 오면 사무실도 꼭 찾는 편이라 근황을 자주 듣는다. 칼럼을 준비하다 전화로 "재미나는 일이나 골치 아픈 경험 없나요"라고 물었더니 풀어놓는 얘기다. 상당히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고 극적이라 현지 업계에서 소문이 난 일이라며 알려주었다.

그는 처음에 하노이에서 경공업제품을 제조·마케팅하는 C사에 입사했다. 베트남어와 영어로 무장한 덕분에 짧은 기간에 다양한 일을 맡아 하던 중에 호치민에서 B2B영업을 하는 새로운 회사인 B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으나 베트남사무소를 만든 지 6개월 밖에 안 되는 신생 조직이었다. 그는 사무소장으로 전직(轉職)했다. 취업한 지 3년 만에 사무소장이라니 짜릿했지만 책임감도 무거웠다고 한다.

한국의 많은 제조 기업들이 줄을 이어 들어가는 베트남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영업망을 적극 확대하려는 대표이사의 생각이 맞아떨어져 만났다고 한다. 근무 여건도 좋았다. 초기에는 한국의 거래 연장선상에서 거래처가 확보돼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과장 본인 스스로 개척한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속에 차 있었다.

늦은 밤 전화를 받고 시계를 보니 한국은 한 밤중인 새벽시간이었다. 할 수 없이 담당 팀장에게 전화를 드렸다. 전후사정을 말씀 드리고 "한 번 거래를 해보고 싶다. 운송은 항공편이 불가피해 원가분석을 해서 아침에 보고 드리겠다"며 전화를 내려놓았다. 다행히 물량은 있다고 했다. 바로 포워딩(forwarding.운송대행) 업체 담당자에게 운송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중형 탱크로리 한 대 분량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부산-호치민'간 정기 항공편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운임도 확인했다.
2시간 동안 원가분석에 들어갔다. '잘 해도 본전'이고, 자칫 손해가 나는 거래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을 만회할 거래조건을 정리했다. 어느덧 아침이 됐다. 공장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 기간 동안 동일 자재 납품을 약속 받았다. 다른 자재들도 주문하겠다는 구두 약속도 받았다. 정리가 됐다.충분히 가치가 있는 거래였다. 바로 구두보고와 함께 서류 결재를 올려 본사 승인을 받았다.

한국공장, 부산공항, 호치민공항, 납품처공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돼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늦은 시간에 입고가 완료됐다. 24시간 만의 일이었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혼자서 판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회사의 승인을 받아 처리해 서로가 상생하는 거래! 비즈니스맨 최고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그 공장이 순조롭게 돌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밤샘한 가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1주일 후에 담당 차장과 운동을 같이 했다. "고맙다"는 말을 거듭 들었다. "베트남어 구사가 부럽다"며 엄지척도 주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물량은 5배로 늘어 났고 다른 품목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그는 운동하고 헤어지는 길에 한국 기업 몇 군데를 더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이번 일을 말했더니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고…

이 일을 처음 닥쳤을 때 대우의 김우중 회장이 생각이 났다고 했다. "거래를 하든 사람을 만나든 마음을 통해야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라"라는 말씀이 떠올랐다고 했다. 연수 때 직접 특강에서 들은 말씀의 의미를 몸소 느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거래처, 우리 회사 본사 팀장과 대표이사의 전적인 믿음이 뒷받침이 됐다고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말이 성과로 이어지는 것을 실감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2년 만에 떠났지만 경공업을 하는 전 직장 C사의 사장께 배운 지혜도 소중했다. 작은 것 하나도 미리 챙겨두라는 것이다. 이 품목은 자재 특성이나 거래 규모가 제법 크기에 보통 상황이라면 거래선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다른 품목 건으로 공장출입하면서 미리 챙겨두었기에 테스트나 시운전을 생략하는 거래가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제대로 해도 베트남 교민사회에 금방 소문이 났다. 교민숫자는 많지만 정작 이 업계만으로 보면 손바닥만한 규모이다. 평소 처신도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일 이후 사업이 커 나간다는 느낌이 확연히 와 닿는다고 했다. 그는 힘들었지만 새로운 시장 개척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쳤다.

필자의 소감을 한 마디 건네 주었다. "일을 잘 하면 무엇이 생기는 줄 아세요?"라고 묻자 "돈, 여유, 기회 그런것 아닌가요"라는답이 왔다. 이렇게 답했다."물론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 하나가 있지요. 바로 '일'이 늘어난다는 거죠. 이게 비즈니스의 원리 아닐까요"


오늘의 핫 뉴스

실시간 속보

금융 최신기사

칼럼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생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