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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이순신은 군사를 먹이면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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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이순신은 군사를 먹이면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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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였다. 난을 피해 평양으로 옮긴 선조 임금은 ‘평양 사수’를 선언했다. 백성은 그 말을 믿고 평양으로 몰려들었다. 여러 고을에서 양곡도 운반해 챙겨놓았다. 모두 10만 섬이나 되었다.

그러나 선조는 왜병이 대동강 건너편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의주로 도망치고 말았다. 선조는 그 와중에도 궁녀를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분노한 백성은 궁녀와 대신의 길을 막고, 몽둥이질까지 했다.

궁녀는 빠뜨리지 않았지만 경황이 없어서인지 식량을 빼먹고 말았다. 평양에 쌓아두었던 양곡은 고스란히 왜병에게 넘어갔다. 왜병이 힘도 들이지 않고 차지한 10만 섬은 5만 병력이 넉 달을 먹을 수 있는 적지 않은 양곡이었다.

정유재란을 포함, 7년이나 계속된 왜란 동안 군사들은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백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굶어죽은 백성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라고 특별히 나을 것은 없었다.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장군이 아닌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군사들을 먹일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순신은 농사를 지어서 군사들을 먹이는 ‘둔전(屯田)’부터 서둘러 시행했다. 군사들이 농사를 지으니까, 배고픈 백성도 모였다. 백성이 가세한 덕분에 생산성을 올릴 수 있었다. 솥을 걸고 소금도 구웠다.

더 있었다. ‘청어 잡이’였다. 전투가 없는 날은 군사들에게 어망을 들려 바다에서 청어를 잡도록 한 것이다. 잡은 청어를 먹고, 남는 것은 가공해서 내다팔아 모자라는 양곡과 군수물자도 조달할 수 있었다.

‘청어 잡이’는 백성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전쟁에 지친 백성은 이순신의 군사들이 공급해주는 청어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굶주리지 않게 된 군사들은 사기가 높아졌다. 이순신을 받들고 따랐다. 똘똘 뭉친 군사는 패할 리가 없었다.

‘불패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충무공의 리더십’이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사청문회를 거쳐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 개혁, 법무부 혁신 등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했다.

조 후보자가 밝힌 ‘서해맹산’은 ‘바다와 산에 맹세한다’는 뜻으로, 이순신 장군의 시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를 인용한 것이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도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강조했다. 지난달 전국경제투어의 일정으로 전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남 주민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했다. 길지 않은 연설문에서 이순신을 3차례나 언급했다는 보도였다.

그렇지만, 1개월 식량밖에 없으면 ‘한 달 군대’, 하루 식량밖에 없으면 ‘하루 군대’라고 했다. ‘서해맹산의 정신’도, ‘호국정신’도 배부르게 먹어야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배고픈 군사는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는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 ‘올인’하겠다는 말이 더 바람직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말도 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