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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AK 구로본점'...26년 만인 31일 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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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AK 구로본점'...26년 만인 31일 폐점

만남의 장소란 '추억' 뒤로하고... 남은 직원들 갈 곳 없어

AK플라자 구로본점 정문 입구. 사진=최수진이미지 확대보기
AK플라자 구로본점 정문 입구. 사진=최수진
30일 오후 서울 구로구 AK플라자 본점. 31일 폐점을 앞둔 쇼핑센터인데도 불구하고 백화점 안은 한산했다.
정문 입구 앞에 세워진 천막에서 ‘마지막’ 할인을 외치는 점원의 목소리가 26년 만에 문을 닫는 ‘애경 1호점’이란 상징적 의미를 더 안타깝게 했다.

1층 고별전 세일 판매대. 사진=최수진이미지 확대보기
1층 고별전 세일 판매대. 사진=최수진

1층에 있는 고별전 세일 판매대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바로 옆 화장품과 구두 매장은 행사 코너로 향하는 사람들 3~4명만이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여성 캐주얼 매장에서 일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폐점을 알리는 방송 이후 고객이 늘었지만 한 달 전만 해도 소수의 단골 고객만이 이곳을 찾았다. 실제로 ‘세일’을 하는 매장들에만 손님들이 북적였다.

이들을 제외하면 고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남성복 매장인 4층 전경. 사진=최수진 이미지 확대보기
남성복 매장인 4층 전경. 사진=최수진


남성복 매장인 4층과 아웃도어 매장이 있는 5층은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특히 5층은 복도 끝에 연결된 CGV 영화관 매표소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쇼핑 중인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

AK플라자가 문을 연 1993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해왔다는 최모 씨(여·53세)는 “전시된 물건만 남기고 창고에 물건은 이미 다 뺐다”며 “폐점을 앞두고 할인 상품을 사러 오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10여 년을 훌쩍 넘길 만큼 이곳을 찾았다는 단골손님 이모 씨(여·77세)는 “다른 백화점보다 아주 편하게 느껴져서 자주 왔다”며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페점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26년 동안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겐 이미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였다. 폐점 탓에 만남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구로 본점은 애경그룹의 1호 백화점이다. 1993년 문을 열고 이듬해 배우 차인표를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배경으로 나와 당시 대표적인 고급 백화점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목동 현대백화점, 영등포 롯데백화점과 신세계 백화점 등 경쟁자들 사이에서 점차 밀려나면서 현재 AK플라자는 2009년 구로점을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에 1520억 원에 매각하고 재임차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1호점이란 역사적 의미를 뒤로하고 폐점을 선택하게 만든 데는 ‘명품 매장’을 갖춰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다는 점으로 업계 측은 풀이하고 있다.

중·저가 브랜드는 이미 온라인 시장에서 주로 판매되면서 오프라인인 백화점들은 명품 매장을 입점시키는 고급화 전략을 선택했다. 이에 반해 AK플라자 구로점에는 샤넬·루이비통 등 인기 명품이 없고, 명품 편집숍 비아델루쏘가 입점한 것이 전부다.

‘추억’이란 감성적인 의미를 제쳐두고 보면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 26년 동안 운영된 백화점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이곳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일하는 점원들이다.

10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은 대부분 해당 업체에서 파견한 직원들이다. AK백화점에서 직접 고용한 50여 명은 AK플라자 수원점이나 분당점 등으로 재배치된다. 하지만 매장 파견 직원들은 수도권 내 위치한 다른 매장으로 흩어지거나, 거리차 때문에 퇴직을 선택한 점원도 많다고 한다.

백화점 내 여성복 매장에서 15년 동안 일했다는 김모 씨(여·59세)는 “아르바이트로 일했기 때문에 일할 곳을 다시 알아봐야 한다”며 “40대 초반에 와서 이곳에서 일한 지 15년이나 됐기 때문에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구로 본점에 들어올 새 주인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에서 거론하는 곳은 롯데아울렛과 이랜드, 엔터식스 등으로 건물을 소유한 유엠씨펨코리테일은 이 중 2곳과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공공연히 NC백화점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chsj9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