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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일본의 조선인 ‘학살 예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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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일본의 조선인 ‘학살 예비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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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소위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1923년 9월 1일이었다. 진도 7.9의 강진이었다.

알다시피, 지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은 조선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웠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일본 여성을 습격하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국적(國賊) 조선인을 모두 죽여 버리자”며 곳곳에서 조선 사람 ‘사냥’을 벌였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들까지 석방해주며 학살을 부추겼다. 조선 사람 죽이느라고 수고한다며 죄수들을 ‘죄수님’이라고 올려주기도 했다. 학살을 열심히 한 죄수들을 격려한다며 ‘토막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조선 사람을 잡으면 철사로 나무에 묶어놓았다. 나무 옆에 “나는 조선입니다. 차거나 두드려주십시오”라고 적힌 팻말을 세워놓았다. 팻말 옆에는 곤봉을 준비해두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때려죽이도록 했던 것이다.

온몸을 꽁꽁 묶은 조선 여성을 트럭으로 그대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고통으로 꿈틀거리자, 한 번 더 밀었다. 조선 여성은 처참하게 죽어야 했다.
가시덤불 위에 조선 사람들 꽁꽁 묶어서 눕혀놓고 불을 지피기도 했다. ‘화형식’이었다. 불에 탄 조선 사람의 피부가 ‘갈색’이 되었다고 떠들기도 했다.

그들은 도쿄에 1593군데를 포함, 무려 3689군데에 ‘자경단’을 설치, 조선 사람을 검문했다. ‘15엔 55전’, 또는 ‘파∙피∙푸∙페∙포’를 발음해보라면서 조선 사람을 찾아냈다. 또는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교육칙어’ 등을 외우라고 해서 조선 사람을 가려내기도 했다. 조선 사람의 특징인 납작한 뒤통수, 눈꺼풀, 큰 키 등이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집단 광기(狂氣)’였다. <조선인의 죽음. 재일사학자 姜德相 지음. 홍진희 옮김>

당시 학살된 조선 사람의 숫자는 ‘공식 기록’으로 6661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3.4배나 되는 2만3058명에 달했다는 독일 외무성 사료가 발견되었다는 강효숙 원광대 교수의 발표가 몇 해 전에 있었다.

▲학살 장소와 시신이 모두 확인된 조선인 피해자 8271명 ▲장소 미확인·시신 확인 피해자 7861명 ▲장소 미확인·시신 미확인 피해자 3249명 ▲경찰에 학살된 피해자 577명 ▲일본 기병(군인)에 학살된 피해자 3100명 등이었다.

거의 ‘한 세기’ 전의 과거사다. 그것으로 그쳤다면 지금쯤은 용서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관동 대지진’ 2년 후인 1925년에는 홋카이도의 ‘오타루(小樽)’라는 도시에서 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었다. 만약에 지진이 또 일어나면 조선 사람들이 ‘폭동’을 또 일으킬 우려가 있다며 학생들에게 진압훈련을 시킨 것이다. 이를테면 ‘조선인 학살 예비훈련’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학살’에, ‘학살 예비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하고도, 자기 아이들 교과서에 있는 “대지진의 혼란 와중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되었다”는 표현을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는 문장으로 바꿔서 얼버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코 잊으면 안 될 ‘관동 대지진’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