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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홍콩 반정부시위 장기화의 배경엔 중국과 다른 ‘독자민족’이란 의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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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홍콩 반정부시위 장기화의 배경엔 중국과 다른 ‘독자민족’이란 의식이 있다

사진은 홍콩시민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지난 6월16일의 시위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홍콩시민 200만 명이 거리로 나온 지난 6월16일의 시위 모습.


돈만 벌면 만족하는 사람들. 얼마 전까지 세계는 이렇게 홍콩인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정치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민족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2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이를 입증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직후인 1997년에만 해도 본토에서 쓰이는 ‘보통어’로 말을 걸면 노골적인 혐오감을 나타내는 반면, 영어를 사용하면 만면의 미소를 지었던 곳이 홍콩이다. 당시에는 영국에 의한 식민지지배의 잔재라고 중국인 식자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민족의식의 발로였다. 지금 홍콩을 휩쓸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는 바로 그 민족주의가 성숙해 마그마처럼 폭발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6년 지식인인 서승은(徐承恩)의 명저 ‘홍콩-조울한 도시국가’에는 홍콩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홍콩민족은 기원전부터 동아시아 남부에 살던 바이에츠(百越)의 후예로 근세시대에 돌입한 뒤 포르투갈인과 영국인, 한인 난민과의 혼혈로 융합해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족의 한 집단이 아니라 독자적인 민족인 이상 민족자결권을 행사해 도시국가를 건립해야 한다고 단적으로 선언했다. 그리스와 로마도 도시국가로부터 스타트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도시국가를 만들자는 참신한 내용의 저서였다.

언젠가는 홍콩의 중국화가 멈출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제 중국화 저지운동은 이제 그야말로 큰 물줄기가 됐다. 홍콩민족이 지향하는 도시국가 건설을 베이징 당국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중국 본토로의 ‘범죄인 인도’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례 개정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결집한 초기단계에서 인민해방군의 한 장교는 “홍콩은 사실 대만보다 더 나쁘다”며 비판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국대륙과 동떨어진 대만에는 선량한 사람(공산당의 선도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반면, 홍콩은 반공기지였다. 하야할 때까지 대만을 지배했던 국민당은 공산당과 일란성 쌍둥이 형제 같은 존재이며, 둘 다 소련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민족주의 정당이다. 그동안 적대해 왔다고는 하지만 독립에만 치우지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홍콩인들은 한족이 아닌 ‘야만인 바이에츠(百越)의 자손’이라는 차별적인 시각이 중국당국 쪽에 있다. 그 야만스러운 민족에 자유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반공분자’가 더해지고, 여기에 영국 제국주의의 ‘나쁜 교육’을 받으면서 홍콩의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베이징은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산당 정권은 홍콩을 이용해 왔다. 홍콩을 창구로 해 서방의 정보를 수집하고, 금융센터로서의 이점을 십이분 활용해 첨단기술과 풍부한 자금을 본토로 끌어 들였다.

이젠 강해졌으니 홍콩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베이징에 있어서 정보수집 창구나 금융센터로서의 이용가치는 떨어지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홍콩이 공산당 고관들의 ‘축재의 요새’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주석 시진핑을 포함해 공산당 정권의 고위관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홍콩에 부정 축재한 재산을 은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중국 내부에 부정축재한 돈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향후에도 ‘빈사’상태의 홍콩에 한정된 번영과 자치를 계속 줄 것이다. 하지만 홍콩민족의 도시국가 건설의 꿈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