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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기업 곳곳에서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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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기업 곳곳에서 후유증

도로공사 요금수납원 "계약해지 1500명 전원 직접고용" 요구 본사 점검농성
공항공사·코레일 자회사 근로자 "용역회사와 처우 달라진게 없다" 파업
공공부문 비중 커진 민주노총 입김도 가세..."정부가 갈등해법 내놓아야"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 사진=한국도로공사 이미지 확대보기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 사진=한국도로공사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이 비정규직 고용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상당수의 공기업들은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공기업은 한국도로공사이다.
도로공사는 지난 9일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200여명이 경북 김천 본사 기습 점거 이후 현재까지 9일째 2층 로비 농성 상태에 처해 있다.

농성 요금수납원들은 지난달 말 대법원 최종판결에서 승소한 내용을 근거로 "1500명 요금수납원을 즉각 본사가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며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이 집단해고를 부른 만큼 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 사건의 제소 당사자인 요금수납원 499명에 한해 본사가 직접 고용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현재 1,2심 재판에 계류 중인 나머지 요금수납원에게까지 확대적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은 점거 농성이 열흘째로 넘어가고 장기화될 경우 다가오는 정기국회 국정감사 준비는 물론 고속도로 유지관리와 교통관리 등 본연의 업무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초 추석연휴 직전에 경찰력의 강제해산 움직임이 있었으나, 공권력 투입에 따른 농성자와 충돌 우려, 농성자 대부분이 여성인 점 등이 고려돼 경찰 동원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요금수납원들이 가입한 민주노총의 '전원 직접 고용' 요구가 오히려 도로공사와 농성자들의 선택 반경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도로공사와 농성 요금수납원이 서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직접 협상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는 외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도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의 파업 예고로 혹시 발생할지 모를 항공대란에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골치를 앓는 모습이다.

한국공항공사 비정규직 근로자에서 자회사인 KAC공항서비스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은 당초 용역업체에서 일할 때보다 급여나 근무여건이 더 열악해졌다며 지난 달 찬반투표를 실시해 파업을 가결했다.

김포공항을 비롯해 전국 14개 공항에서 기계·전기 설비 유지·보수와 안내·조경·미화 등 업무를 맡고 있는 KAC공항서비스는 공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지난 2017년 12월 설립된 한국공항공사 자회사다.

KAC공항서비스 정규직 전환 근로자 900여명은 추석 이후 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해 놓은 상태다. 파업에 돌입하면 국내 공항 근로자들의 첫 파업이자 전국 공항의 동시다발적인 항공대란을 초래할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공항공사 측은 .해당 근로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동시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또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의 근로자들도 지난 11~16일 서울역 앞 등지에서 기한부 파업을 벌이고 있다.

코레일관광개발에 소속된 KTX승무원, SRT승무원, 시설 등 전문직 근로자들은 '자회사 노동자 차별폐지', '철도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을 약속했었고, 철도안전법상 여객 승무업무는 안전업무에 속한다"면서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 국토교통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파업과 농성 후유증을 앓고 있는 공기업들의 공통점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라는 명목으로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회사 정규직으로 옮겨가도 기존 용역회사에 있을 때와 처우에서 달라지는 게 없기에 본사로 직접 고용해 달라는 요구이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 출범을 전후로 민주노총 신규 조합원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공공부문에서 민주노총의 파워가 커지면서 근로자의 강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민주노총 산하조직별 조합원 수를 보면 지난 2017년 1월에서 지난 4월 사이 전체 79만 6874명에서 101만 4845명으로 21만 7971명이 늘어났고, 이 가운데 공공부문이 8만 2564명 차지하고 있다.

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인 요금수납원들은 민주노총 일반연맹 소속 노조원이며, KAC공항서비스와 코레일관광개발의 파업을 주도한 근로자들 모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이다.

그러나 지난 16일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2차 호프 미팅'을 가질 정도로 사측과 대화를 중시하는 모습과 달리 민주노총은 '투쟁 일변도'라는 국민여론의 따가운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공기업 입장에서는 인원 조정, 업무 배분, 인건비용 등 여러 경영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노무직 근로자의 대거 본사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어 정부 정책과 사이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노동학계에선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을 당시 반드시 뒤따라야 할 예산지원 계획이 미흡했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분배하려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