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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미적 고찰…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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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미적 고찰…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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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발레블랑 39주년을 맞아 2019년 발레블랑(회장 이고은)의 정기공연(9월 7일 오후 7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이 있었다. 이 공연은 ‘공존’(共存)을 화두로 삼고, 1부는 발레블랑의 연령대별 대표안무가 5인의 2인무 모음작으로써 2인무에 관한 상상인 빠 드 되 수트(Pas de Deux Suite, 이인무)를 문신하(안단톄, 발레리노 박영상), 조윤라(아다지오와 스타카토, 발레리노 정운식), 이채민(알레그로, 발레리나 서민영), 김정은(비바체, 발레리노 Michael Wagley), 김향좌(안단테 다 카포, 발레리나 오정민)가 담당하였고, 사용 음악은 파가니니와 바흐였다. 주안점은 내용적 의미를 최대한 배제하고 동작은 음악이 제시하는 뉘앙스에 따라 자신들의 기교와 예술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것이었다.

2부로 넘어가면 이지혜(충남대・청주교대 강사, 이화발레앙상블 단원)의 현대발레 『그 너머엔...』이 이지적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를 비롯하여 4장(1장: ‘우리 안에서’, 2장: ‘경계선상에서’, 3장: ‘뒤바뀐 자리에서’, 4장: ‘그 너머로...’로 구성되어 있다. 이지혜의 현대 발레는 발레 작업에서 무리하게 철학적 논리를 적용시키지 않고 도식적 틀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는 발레블랑이 최근 몇 년 간 저질러왔던 매너리즘적 사고방식을 깨고 전형과 파격 사이의 간극을 메꾸면서 구성이 돋보이는 놀라운 창의력으로 품격 있는 신작을 발표했다. 에뚜왈의 의상은 신비감과 호기심을 부각시켰고, 막스 리히터(Max Richter)와 필립 글라스(Philip Glass) 작곡의 음악이 ‘그 너머’의 세상을 살피는데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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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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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이지혜는 세상을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우리’라는 인간이다. 살아가면서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는 작은 인연으로 ‘우리’가 된다. 운명적 ‘우리’는 세상의 전부인 듯하고 먼 바다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느낀다. 생의 한가운데, 일렁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무모한 모험이기도 하고, 안전한 굴레의 ‘우리’ 마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고운 심성들은 외면해야한다는 주변의 만류와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갈등한다. 하지만 언제라도 외면 받는 누군가의 자리에 ‘우리’가 놓여 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지혜는 그녀의 넓은 바다 위의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의 도래를 목도하는 ‘우리’로써 공존하기를 희구한다. 이기적 유전자들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존재론적 ‘우리’에 대한 이지혜식 발레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 너머엔...』의 장면 별 내러티브를 살펴본다. 프롤로그: 암전 속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알리는 명암의 교차, 느와르적 분위기가 감돈다. 긴장감이 일고, 영상은 도회적 분위기를 차용한다. 서서히 세상과 대면한다. 한 곳만 향해가는 항해, 그것을 표현해내는 움직임은 조형감을 일으킨다. 어두운 바다와 위태로운 수평선 위에서도 믿음의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붉은 경고등이 존재하는 세상, 그 쪽을 돌아보는 우리 중 누군가를 막아 세운다. 디테일한 조명의 현란한 운용이 만들어내는 비주얼, 다양한 움직임들이 이어질 장(場)에 대한 호기심을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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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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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1장: ‘우리 안에서’, ‘우리’는 순응적 태도를 취한다면 발레적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 절대적 균형, 이상적 유토피아가 실현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화평을 낀 삶의 파스텔화에 대한 전제는 예술에서 파생되어야한다. 시각적 비주얼이 강조되고 관객들은 몽환의 판타지에 빠진다. 진정한 자유는 ‘우리’ 밖일지도 모르겠다는 호기심과 갈등이 인다. 본질에 대한 주저는 ‘우리’라는 경계선을 만드는 행위인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동작으로 표현된다.

2장: ‘경계선상에서’, 집중을 유도하는 조명이 사선을 가로지른다. 기(氣)의 합일을 보이며 선택을 강요하는 장(場)이다. ‘우리’를 결정짓는 경계선상에서 본능적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한 개인의 용기만으로 사람은 ‘우리’라는 경계를 넘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방황하듯 사선 위를 오간다. 고립되어 있는 타인과 마주하게 되면서 클래식과 대중가요 사이 같은 긴장감이 일고, 칸트의 아침을 만난 것 같은 경계 너머의 고립된 이지적 나를 만난다.
3장: ‘뒤바뀐 자리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나의 모습으로 고립되어 있는 타인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서로를 마주한 채 헛손질만 반복된다. 거울 속 군중이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나는 ‘우리’가 아닌 고립된 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외면당한다. 고립의 공간은 차갑고 어둡다. 절정으로 치닫는 군무의 장(場)은 엄습하는 공포와 함께 역동적이고 이미지 충만하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만, 고립된 공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4장: ‘그 너머로...’, 앙금이 남은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외면하고 먼 발 치에서 지켜본다. 두려움, 후회와 같은 감정이 다시 일기도 하지만 ‘우리’ 속에서 용기를 내어 조금씩 다가간다. 결국 타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공감하고 ‘우리’라는 배가 바다만큼 커지다가가 함께 울어주며 위로한다. 타인에 대한 기독교적인 사랑의 실천, ‘우리’로 정의했던 다름을 벗어나 그 너머를 향한 몸짓은 옷깃을 만지듯 주변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단원은 뭉클한 감동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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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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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이지혜 안무의 『그 너머엔...』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모두를 ‘우리’로 포용하는 ‘사랑’이다. 최근몇 년 동안의 발레블랑의 활동 중 최대 성과로 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위선적 포장의 작품들의 주제를 가볍게 제압하며 심중의 큰 뜻을 밝힌 작품이다. 쉽지만 간과하기 쉬운 ‘일상의 소중함’들을 친화력의 도구로 삼고 있는 발레리나의 열정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다. 아직, 이지혜는 ‘그 곳, 그 너머’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리아적 심성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발레 『그 너머엔...』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교본이 되었다.

출연/이지혜, 오정민, 서민영, 정수민, 임지은, 배민지, 최솔빛나라, 류형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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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출연의 『그 너머엔...』

◯ 안무자 이지혜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및 동대학원 무용박사

현)충남대학교・청주교육대학교 강사

발레블랑・이화발레앙상블 단원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이사, 한국무용교육학회 이사, 한국발레연구학회 이사,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 ICDFK 이사

2016 ‘주목할 예술가’ 선정(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17 크리틱스초이스 초청 안무가

이화여대, 한성대, 경성대, 선화예고 강사 역임

안무작: 『Her Story』, 『Wandering』, 『Beyond the Edge』 외 다수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박귀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