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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아한 가을 여인 같은 '과남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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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우아한 가을 여인 같은 '과남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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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어느 시인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지면 가을'이라고 했던가.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쪽빛 하늘을 바라보거나 석양에 물들어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 무작정 길을 떠나고 싶단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들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곧잘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으로 내닫곤 한다.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아 천변을 따라 달리며 새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잿빛 도시의 칙칙함을 버리고 다채로운 자연의 색감에 빠져든다. 그때마다 천변에 피어나는 꽃들은 새로운 색과 향기로 일상에 지친 나를 위로해준다.

어느새 중랑천의 둔치 꽃밭엔 화려한 색의 코스모스가 물결치고 있다. 연보라색 쑥부쟁이와 흰 구절초 같은 국화과의 꽃들이 부쩍 눈에 띄는 걸 보면 천변엔 이미 가을이 깊은 모양이다. 모처럼 가을 향기에 취해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자전거를 달리던 나를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멈춰 세운 꽃은 다름 아닌 과남풀이었다.

과남풀은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로 8~10월에 보라색의 꽃을 피운다. 보라색은 품위 있고 고상하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보라는 활동력을 상승시키고 치유력을 지닌 색으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쓰일 만큼 여성에게 친근한 색이다. 보라는 개성이 강한 색이라서 잘못 사용하면 천박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국한된 것일 뿐 과남꽃은 마냥 매혹적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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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남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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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남풀.
용담과에 속하는 과남풀은 얼핏 보아서는 용담과 구분이 쉽지 않다. 용담은 약재로 쓰이는 뿌리가 쓰기로 유명한 웅담보다 더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남풀은 꽃의 개화 상태를 자세히 보면 용담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용담꽃은 뒤로 젖혀진 꽃잎에 하얀 점 같은 무늬들이 많이 찍혀있지만 과남풀은 통상 꽃잎을 오므리고 있어 새침한 여인처럼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는 꽃이다. 햇빛이 좋을 때나 살짝 꽃잎을 벌리는 정도이다.

과남풀이란 이름은 관음초(觀音草)로 불리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바뀐 것이라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 과남풀은 늦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 막바지까지 꽃을 피운다. 개화기간이 길어 화단에 심어두면 보랏빛으로 가을을 더욱더 그윽하게 만들어 준다. 꽃은 줄기 끝과 윗부분의 잎겨드랑이에 여러 개가 달리는데 꽃 밑에 붙은 잎은 화관보다 길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5~6갈래로 갈라진다. 키가 50~60㎝ 정도인 용담에 비해 키가 큰 편이어서 큰잎용담이라고도 부르는데 전국 산야에 걸쳐 자라는 우리 꽃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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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남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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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남풀.

꽃을 알아 가면 갈수록 내가 아는 꽃보다 모르는 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수시로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들로, 산으로 꽃을 찾아나서는 것은 자연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자연은 어머니의 품을 닮아있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나의 시선과 마음을 묵묵히 받아줄 뿐 결코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 어머니처럼 언제나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준다.

어떤 빛깔을 오래 바라본 뒤에 갑자기 흰 종이로 시선을 옮기면 보색의 영상이 보이는 현상을 보색잔상(補色殘像)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듯 어쩌면 우리가 꽃을 보고 자연을 찾는 이유도 우리의 DNA 속에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했던 기억이 보색잔상처럼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좋아 어디로든 길 떠나고픈 가을, 멀리 갈 수 없다면 가까운 숲이라도 찾아 그 곳에 피어 있는 꽃들의 안부를 묻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운이 좋으면 우아한 가을 여인 같은 과남풀 보랏빛 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테니.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