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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한국 명산해운 소유 선박, 어떻게 북한 선박 '와이즈어네스트'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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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한국 명산해운 소유 선박, 어떻게 북한 선박 '와이즈어네스트'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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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 억류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호가 지난 3월27일 발릭파판 인근 억류지점에서 예인선에 이끌려 이동하고 있다. 이 선박 당초 한국 산업은행 산하 산은캐피털이 손했다가 명산해운에 넘긴 '애니'호로 드러났다.사진=VOA
대북 제재 위반으로 미국이 몰수한 북한 선박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15년까지 한국 깃발을 단 한국 선박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해운사인 명산해운이 소유한 '애니'호였다. 한국 선박이 북한 선박으로 변신한 사례는 더 있으며 북한이 아시아 등지에서 한국 등의 선박을 사들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유엔 대북 제재 위반은 물론 한국과 미국의 독자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선박이 북한에 팔려나간 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미국의소리방송(VOA)은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정보 시스템과 '마린트래픽(MarineTraffic)' 등을 확인한 결과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애니(Eny)’ 호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화물선이라고 10일 보도했다.

이 선박은 당초 한국 국책은행 산업은행(KDB) 자회사 산은캐피탈이 2004년 소유권을 취득해 소유한 선박이었으나 2012년 리스계약이 종료돼 명산해운으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또 아태지역 항만국 통제위원회(도쿄 MOU) 자료에도 이 선박이 한국 선박으로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때는 다른 한국업체인 J쉬핑이 소유주로 표기됐다고 VOA는 전했다.

이번 사안에 정통한 선박업계 관계자는 VOA "산은캐피탈과 해운 업체인 명산해운이 공동으로 소유권을 가지고, 실질적인 운영을 명산해운이 맡은 것"이라면서 "J쉬핑은 선원 운영이나 기술부문 지원 등을 하는 회사의 역할을 했을 것"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선박이었던 애니호가 다른 나라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한으로 넘어갔느냐다.

VOA는 국제해사기구 등에 따르면 2015년 초 매각된 것으로 알려진 애니호는 소유주가 바뀐 직후 곧바로 캄보디아 깃발을 달게 된다면서 "언뜻 캄보디아 회사에 팔려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북한 회사로 곧바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주장했다.

애니 호가 매각된 직후 바꾼 이름은 '송이(Song I)'호였는데, '송이'라는 이름은 와이즈 어네스트 호를 소유했던 평양 소재 북한 회사 '송이 무역회사'와 이름이 동일하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고 VOA는 덧붙였다.
송이호는 2015년 8월, 선박의 이름을 지금의 와이즈 어네스트 호로 변경하면서 선적을 시에라리온으로 바꾸고 이어 탄자니아로 선적을 한 차례 더 변경한 뒤 2016년 11월 북한 깃발을 달았다.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선적을 자주 바꾼 2016년은 시에라리온과 탄자니아 등 편의치적, 즉 다른 나라에서 운영되던 선박의 자국 등록을 허용하는 나라들이 북한 선박들의 등록을 취소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 깃발을 달게 된 와이즈 어네스트 호는 2018년 3월 북한 남포항에서 유엔이 금지한 북한 석탄을 실은 대북제재 위반 선박이 돼 나타났다고 VOA는 설명했다.

이어 인도네시아에 억류된 와이즈 어네스트호는 최근 미국 정부에 의해 압류돼 강제 매각 처리됐다.

VOA에 따르면, 한국 깃발을 달거나 한국 해운업체가 소유한 선박이 북한 깃발을 달고 나타난 사례는 와이즈 어네스트 호 외에도 더 있다. 미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의 제재 대상에 오른 북한 유조선 백마 호는 2016년까지 파나마 선적의 '로얄 미라클'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는데, 실제 소유와 운영은 2011년부터 한국 업체가 맡았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대신쉬핑이라는 한국 업체가 운영한 '한국'호는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인 북한의 '금빛 1호'가 돼 있다. 신성하이 혹은 탤런트 에이스 호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석탄을 밀반입했다가 억류된 선박도 2008년부터 2017년까진 한국의 '동친해운'이 소유한 '동친 상하이'였다.

VOA는 확인 결과 보천호와 동산 2호 등 북한 선박 여러 척이 최근까지 한국 깃발을 달았다가 대북제재 위반 선박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 선박들은 한국에서 매각된 직후 편의치적으로 잘 알려진 나라의 깃발을 달았다가 이후 북한 선적을 취득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에서 해상 전문가로 활동한 닐 와츠 전 위원은 "와이즈 어네스트 호가 최초 한국에서 북한으로 매각됐다고 해도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닐 수 있다"고 해석했다.

와츠 전 위원은 8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유엔 안보리는 결의 2321호를 통해 북한에 선박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 결의 채택 시점은 2016년으로 선박의 매각 이전이었다고 설명했다. 2015년 당시 유엔 안보리가 제재 중이었던 북한의 원양해운관리회사(OMM)나 그 외 다른 제재 개인 혹은 기관과 이 선박이 연계돼 있다면, 이는 제재 위반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과는 별개로 한국과 미국 등 각국의 독자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 정부는 2010년 5·24 조치 등을 통해 북한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도 선박 등을 거래할 때 미리 재무부와 상무부 등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다른 제재 전문가는 한국의 업체들이 당시 이 선박이 북한으로 팔려갔는지 여부를 알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선박 업계 관계자는 한국 선박이 북한에 판매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캄보디아 등 다른 아시아 내 국가에 선적을 두고 한국 등 다른 나라의 선박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 다롄이나 칭다오 등지에 차려진 위장회사를 통해 선박을 구매하고 관리한다면 외부에선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