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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곰순대와 멧돼지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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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곰순대와 멧돼지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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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겸 작가로 활동하다가 2017년 별세한 김왕석의 ‘사냥꾼 이야기’에 기 막히는 요리가 나온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곰순대’ 요리다. 사냥터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즉석요리’다.

알다시피, 곰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겨울잠을 잔다. 가끔 발바닥만 핥을 뿐이다. 따라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이른 봄이 되면 곰의 창자는 텅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곰순대는 이때 잡은 곰으로 만드는 요리다.

요리방법은 아주 쉽다. 우선 곰의 창자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물로 씻어낼 필요도 없다. 창자 속은 기름기만 자르르 흐를 뿐이다.

그 창자 속에 곰의 허벅다리에서 베어낸 살과 피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창자 양쪽을 묶은 뒤 나뭇가지에 둘둘 말아 모닥불에 굽는 것이다. 기름기 때문에 적당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익는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곰순대는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이라고 한다. 소주 한 잔까지 곁들이면 사냥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잊지 못할 요리라고 했다. 시장이나 음식점에서 파는 ‘돼지순대’ 따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요리다.

더 좋은 요리는 따로 있다. ‘멧돼지구이’다. 곰순대는 이른 봄에 맛볼 수 있지만, 멧돼지구이는 한겨울에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이 요리도 간단하다. 사냥터에서는 손 많이 가는 요리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넓적하고 평평한 돌을 구해서 모닥불 위에 올려놓는다. 돌이 적당히 달궈지면 눈을 한 삽 퍼서 그 위에 뿌린다. 그러면 눈과 함께 돌에 묻어 있던 지저분한 것들이 ‘칙’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사냥터에서는 이런 식으로 ‘멸균’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깨끗해진 돌 위에 얇게 저민 멧돼지고기를 올려놓기만 하면 그만이다.

다만, 완전히 익히면 안 된다고 했다. 절반쯤 익은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다. 그 맛은 수십 리 밖에 있던 맹수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들 정도라고 했다.

멧돼지고기가 ‘짱’인 이유는 집돼지고기와 달리 지방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생짐승이기 때문에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는다.

육질도 부드럽기 때문에 이가 신통치 않은 늙은이에게도 무난한 게 멧돼지고기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멧돼지고기만큼은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멧돼지가 이제는 도심에도 나타나고 있지만, 사냥터에서 뛰어다니며 잡은 멧돼지의 구이는 땀을 흘린 후에 먹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좋을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앉은자리에서 몇 근쯤은 거뜬하게 ‘냠냠’한다고 했다. 음식점에서 ‘사육한’ 멧돼지고기를 팔고는 있지만 그 맛이 같을 수는 없다.

김왕석은 곰 순대가 천하의 ‘별미’라면, 멧돼지구이는 천하의 ‘진미’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네발 달린 짐승고기 가운데 멧돼지구이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우려, 일부 지역에서 멧돼지의 총기 사냥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멧돼지구이가 ‘천하진미’라고 알려지면, 멧돼지고기 수요도 어쩌면 적지 않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멧돼지는 이제 야단났다.

그런데 ‘황금돼지의 해’가 다 저물도록 기다리는 황금돼지는 나타나주지 않고 멧돼지 소식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