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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영화속 성별 캐릭터 편향성 정량 분석 성공…컴퓨터 비전기술 기반 새 지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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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영화속 성별 캐릭터 편향성 정량 분석 성공…컴퓨터 비전기술 기반 새 지표 활용

이병주 KAIST 교수의 영화속 성별 캐릭터 편향성 분석을 위한 이미지 처리 과정. 자료=KAIST이미지 확대보기
이병주 KAIST 교수의 영화속 성별 캐릭터 편향성 분석을 위한 이미지 처리 과정. 자료=KAIST
최근 영화 소재와 연출 방식이 사람들의 성(gender)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컴퓨터 비전으로 상업영화의 남성과 여성 간 캐릭터 묘사의 편향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 이 교수팀은 자체 개발한 여덟 가지 지표를 통해 기존의 ‘벡델 테스트(Bechdel Test)’ 통과한 영화를 포함한 국내외 영화 40편 대부분이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KAIST는 14일 이 대학 이병주 문화기술대학원 교수팀이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상업 영화를 대상으로 한 이같은 정량적 편향성 분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2017년과 201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 40편을 대상으로 이미지 분석 시스템을 통해 8가지 새로운 지표들을 제시하고 분석해 상업 영화들의 성별 묘사의 편향성을 밝혀냈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특정 성(젠더,gender)를 편향적으로 표현할 경우, 관객은 각 젠더의 역할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인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영화에 존재하는 편향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하여 현재는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널리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벡델 테스트는 영화의 스크립트만을 분석하기 때문에 영화라는 시각 매체에 내재하는 넓은 범위의 편향성은 고려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교수팀은 더욱 포괄적인 분석 시스템을 통하여 상업 영화에서의 여성 또는 남성 캐릭터에 대한 시각적 표현의 편향된 정도에 관한 정량적 분석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의 8가지 지표는 과거 다양한 매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성별 묘사 편향성에 관한 연구 결과에 기반해 영화 내 편향성을 판별할 수 있는 정량적 지표로서 여기에는 ▲감정적 다양성(Emotional Diversity) ▲공간적 역동성(Spatial Staticity) ▲공간적 점유도(Spatial Occupancy) ▲시간적 점유도(Temporal Occupancy) ▲평균 연령(Mean Age) ▲지적 이미지(Intellectual Image) ▲외양 강조도(Emphasis on Appearance)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Type and Frequency of Surrounding Objects)가 포함된다.

반면 기존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는 영화, 소설 등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에 대한 묘사 편향의 여부를 판단하는 테스트로서 3가지 조건을 통과하면 성편향성이 없는 것으로 분류한다. 3가지 조건은 ‘▲영화 스크립트나 소설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등장한다 ▲해당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 ▲여성 캐릭터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 캐릭터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다.

이 교수팀은 영화의 시간적, 시각적 특성을 반영해 ‘성별 묘사 편향성’을 측정하기 위해 이미지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효과적 분석을 위해 24프레임(fps) 영화를 3프레임으로 다운 샘플링한 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얼굴 감지 기술(Face API)로 영화 캐릭터의 성, 감정, 나이, 크기, 위치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물 감지 기술(욜로 9000, YOLO 9000)로 영화 캐릭터와 함께 등장한 사물의 종류와 위치를 확인했다. YOLO 9000은 워싱턴대의 조지프 레드몬과 알리 파라디 연구진이 만든 실시간 사물 인식 시스템으로서 영상내 9000종류의 사물을 인식해 제시한다. 이 교수의 연구에서는 캐릭터 주변 물체의 종류를 인식하기 위하여 사용했다.

이 교수팀의 8가지 새로운 지표 가운데 감정적 다양성(Emotional Diversity)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더 획일화된 감정표현을 보였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슬픔, 공포, 놀람 등의 수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하는 반면, 남성 캐릭터는 분노, 싫음 등의 능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다.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Type and Frequency of Surrounding Objects)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가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남성 캐릭터 대비 55.7%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123.9%를 보였다. 여성 캐릭터의 시간적 점유도(Temporal Occupancy)는 남성 캐릭터 대비 56% 정도로 낮았으며, 평균 연령(Mean Age)은 79.1% 정도로 어리게 나왔다.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지표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됐다.

이 교수팀은 “기존 벡델 테스트가 여성 캐릭터의 대사만으로 판별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시각적인 묘사를 고려할 수 없으며 여성 캐릭터 혼자 극을 이끄는 영화들에 적용이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했다”며 “여성 캐릭터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으며, 테스트에 통과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분법적 잣대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별 묘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충분히 대변하기 어려운 점도 해소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가자가 영화를 보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는데 따른 오류 발생 가능성도 줄였다고 보았다.
이병주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1인당 연간 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4.25회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영화를 즐겨보는데, 이는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나라 대중들의 잠재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뜻한다”라며 “따라서 영화 내 묘사가 관객들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진행돼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영화는 더욱 신중하게 제작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지윤, 이상윤 석사과정이 주도한 이번 연구 결과는 소셜 컴퓨팅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컴퓨터 기반 협업 및 소셜 컴퓨팅 학회(CSCW, Computer-Supported Cooperative Work and Social Computing)’에 11월 11일 자로 발표될 예정이다. 논문명은 ‘이미지 분석에 의한 상업영화에서의 성표현 편차의 정량화(Quantification of Gender Representation Bias in Commercial Films based on Image Analysis)’다.

이 연구는 KAIST 인문사회과학부에서 추진한 석박사모험연구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이재구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k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