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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설리의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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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설리의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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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광대가 있었다. 그의 아내도 광대였다. 부부가 광대였다. 옛날 표현으로 광대지만, 오늘날로 말하자면 '연예인 부부'였다.

부부는 나무로 만든 탈을 쓰고 손짓, 발짓, 몸짓을 공연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주로 한강 근처가 활동무대였다.

어느 봄날이었다. 얼음으로 덮여 있던 한강이 조금씩 녹고 있었다. 광대 부부는 공연하러 가기 위해 얼음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강을 건너고 있었다. 공연시간에 쫓기고 있었던지, 얼굴에 탈을 쓴 채로 건너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아내 광대가 물에 빠진 것이다. 아내 광대는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

남편 광대는 당황했다. 죽어 가는 아내 광대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인근에 살던 동네 구경꾼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구경만 할 뿐이었다. 누구도 구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를 죽이며 웃고 있었다. 웃지 않는 구경꾼은 없었다. 남편 광대의 울음소리만 높아지고 있었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에 나오는 얘기다.

구경꾼에게는 아내 광대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자체가 '광대놀이'였다. 아내 광대의 죽음과 남편 광대의 울음도 구경거리였고 흥밋거리였다.

구경꾼들에게는 안타까움이나 동정심이 없었다. 광대 따위는 '죽거나 말거나'였다.

구경꾼이나 자신의 가족 역시 한강을 건너다가 발을 잘못 디디면 물에 빠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안전한 '도강 대책'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다. 아내 광대의 죽음만 구경하면 그만이었다.

여자 광대는 애초부터 '성희롱'의 대상이었다. 구경꾼은 담벼락처럼(觀者如堵) 둘러서서 여자 광대의 손짓과 몸짓을 보며 야릇한 생각을 품거나 군침을 흘렸다. 그러다가 '수작'을 걸기도 했다.

"…일례를 들어보면 공연을 할 때에도 관중 속에서 어떤 자가 돈을 입에 물고 부르면, 쫓아가서 입으로 그 돈을 받았다. 그때에 접문(接吻)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접문'이란 입술(吻)을 접(接)하는 것이다. 요즘 말로 '키스'다.

짓궂은 구경꾼이 '관람료'를 준다며 '엽전'을 입에 물고 받아가라고 희롱하면 여자 광대는 그것을 입으로 받아야 했다. 입술을 쭉 내밀면 여자 광대의 입술과 닿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광대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도 구경꾼은 좋다고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아내 광대가 죽은 지 수백 년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그리고 어떤 여자 광대가 죽었다. 25살밖에 되지 않은 아름다운 광대였다. 직업은 '가수 겸 배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익사가 아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외력이나 타살 혐의점 없음’이라는 소견도 나왔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똑같았다. 애도보다는 흥미였다.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 누이, 또는 '여친'이 목숨을 끊었다면 어땠을 것인지 생각해봄직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 듯했다. '남의 불행'을 즐길 뿐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어떤 매체는 유족 측이 빈소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데도 장례식장을 밝히고, 또 어떤 매체는 경찰에서 확인되지 않은 유서 내용 일부를 올리기도 했다.

‘선배 광대’가 애통한 나머지 “악플러, 비겁하고 얼굴 없는 살인자”라며 누리꾼을 비판했지만, 못된 댓글 역시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