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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국의 쿠르드 배신에서 동맹국들이 배워야 할 교훈 “공짜안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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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미국의 쿠르드 배신에서 동맹국들이 배워야 할 교훈 “공짜안보는 없다”

쿠드드인을 버리고 시리아에서 철수하고 있는 미군차량 행렬.이미지 확대보기
쿠드드인을 버리고 시리아에서 철수하고 있는 미군차량 행렬.


자국의 안전보장을 미국을 의지하는 나라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미군철수를 부추기면서 불합리한 요구를 걸어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이 시리아로부터의 미군철수를 결정하고, 미군과 함께 IS(이슬람국)와 싸워온 쿠르드인 세력을 버렸기 때문에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 인들은 이제 터키의 맹공에 노출되어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사는 시리아의 국경지대에 폭 30㎞정도의 완충지대를 설치할 생각이다. 터키군의 공습이나 포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경의 거리에서는 도망치지 못한 주민이 터키민병의 잔학행위의 희생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박해의 역사를 견뎌오면서 또다시 배신당한 쿠르드 인들은 이런 속담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친구는 산뿐이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1년부터 계속 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에서 떠돌고 있는 난민을 이 완충지대로의 추방을 계획하고 있다. 시리아와 터키 국경지대에 사는 쿠르드인을 내쫓고 동시에 짐이 된 시리아난민을 내팽개치는 ‘일석이조’의 묘안이라는 것이다.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의 중동 전략에 괴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는 미군과 함께 IS 소탕작전을 담당해온 쿠르드 인들을 늑대무리 안으로 내팽개쳤다. 미군은 의지할 맹우를 저버렸을 뿐만 아니라 포로가 된 유럽출신 IS전투원의 신병을 보호할 책임도 포기했다. 본래는 유럽 각국이 인수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거부해 온 것이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번 주 “IS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모게리니의 후임으로 지명된 스페인의 호세프 보렐 외무장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기자가 몰리자 난처한 얼굴로 “우리에게는 마법의 힘은 없다”고 대답했다.

■ 쿠르드인의 비극을 세계의 교훈으로 삼아야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분쟁의 교훈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마법의 힘’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한 침공을 저지하고, 침공한 경우 바로 반격할 수 있는 군사력이다.
미군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터키의 시리아 침공은 불가능했다. 보렐은 “미군 철퇴가 공격의 전제 조건이었다”라고 말했지만,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럽에는 철수하는 미군을 대체할 군대가 없다는 것, 트럼프를 만난다고 해도 그를 움직일 정치적 의사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힘의 공백을 즉석에서 메우는 수단도 의사도 갖지 못한 채 유럽은 무력한 방관자가 되었다. 덕분에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그 공극을 메우려 하고 있다. 이들은 ‘쿠루드인의 수비자’ ‘지역안정의 청부인’을 표방하며 쿠르드인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IS에서 탈환한 영토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시리아 철수가 유럽에 가져온 안전 보장상의 대미지는 IS 부활의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트럼프가 미군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지키길 원하면 말을 들으라”며 동맹국들에까지 압력을 가하게 되는 위협이다.

안전보장에서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개인적인 기획(예를 들어 미국대선의 경쟁자가 될 것 같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아들의 부정 비즈니스 의혹을 파헤치는 것)에 협력하지 않으면 자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밖에 없게 될지도 모른다.

동유럽 여러 나라에 있어서 이것은 궁극의 공포다. 옛 소련의 국가였으나 지금은 EU와 NATO회원국인 발트해 3국은 미군이 지키지 않는다면 당장 러시아에 잠식될 수 있다. 우파인 ‘법과 정의’당이 이제 막 정권을 되찾은 폴란드도 자력으로서는 도저히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할 수 없어 이젠 필사적으로 트럼프의 눈치를 보고 있다.

■ 미국 동맹국들 ‘공짜안보는 없다’ 깨우쳐야

폴란드는 국내에 ‘트럼프의 요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미군 기지를 불러와 어려운 재정사정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비용부담을 자청했다. 기지에는 미군 3,500명이 주둔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폴란드 정세가 어려워지면 트럼프는 철수를 막으려면 돈을 더 내라고, 말하지 않을까?

미군의 시리아 철수는 냉전 종식 후 30년간 유럽 국가들이 ‘공짜안보에 편승한 벌’이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미소냉전이 종결되면서 미국은 유럽을 지킬 전략적인 필요성을 잃었다. EU는 경제적으로는 초강대국이다. 천하의 GAFA에 엄격한 규제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그 증거다.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초강대국과 거리가 멀다.

부는 재산권이나 자유무역, 시장경제시스템을 지지하는 국제질서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이룬다. 다시 말해 아무리 가치 있는 황금도 총칼의 위협에 빼앗겨 버리면 끝장이다.

■ 유럽연합도 독자적 군사력 보유 필요성 대두

EU가 경제 초강대국인 것도 회원국이 단결하여 움직이는 것이 이익이 되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회원국이 아닌 통일행정기관인 유럽위원회다. 회원국은 이해에 관한 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인수될 걱정은 없다. 또한 EU 전체라면 그야말로 덩치가 너무 커 인수는 무리 다.

같은 구조를 유럽의 방위에도 짜 넣어야 한다. 늦기 전에 늦기 트럼프가 쿠르드인들을 버렸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공통의 안전보장정책, 공통의 군대, 공통의 전투 독트린이 없으면 유럽대륙의 동쪽을 지키고 싶어 취약한 채로 방치되어 버린다. 발트 3국과 폴란드는 늘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EU는 영국의 이탈 후에도 5억 인구와 15조 달러의 GDP를 가진다. 게다가 완전히 통합된 방위전략을 갖추면 국제적인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당황하기보다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하면 그것을 대신할 부대를 보내 그 군사력을 배경으로 평화협상을 중개할 수 있는 EU가 될 것이다. 그 힘을 가지지 못하는 한 유럽은 날개가 뜯기기를 기다릴 뿐인 뚱뚱한 거위에 불과할 뿐이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