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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가을 안은 화가들의 삶 조망…여류 화사(畵師)들의 '함께 가는 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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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가을 안은 화가들의 삶 조망…여류 화사(畵師)들의 '함께 가는 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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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열정', 40x40cm, 동판, 아크릴, 에폭시, 2019
9월 2일(월)부터 10월 1일(화) 까지 인사동 수도약국 2층 AP갤러리에서 네 명의 여류 화가들(강명자, 김지언, 채영주, 김영자)이 공동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명은 여류 화가로서의 유대나 동행을 뜻하는 '함께 가는 길'이었다. 가을이 한창 진행 중인 나이의 여류 화가들은 동판회화, 유화, 아크릴로 비기적 열정과 내공의 붓끝으로 작품들을 그려내었다.

그들은 한련화, 한복, 발레리나, 책가도를 소재로 자신의 내재미와 추억에 얽힌 사연을 화려하게 표현, 현재적 삶에 대한 초월성, 자신에 대한 깊숙한 성찰, 삶의 예찬 등의 주제적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여성 특유의 지적 사유는 아름다웠다. 자칭 청년작가들은 서정적 터치로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이 없이 들뜬 마음을 자정시키는 가을의 전설을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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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향수', 40x40cm, 동판, 아크릴, 에폭시, 부식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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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자의 '향수', 40x40cm, 동판, 아크릴, 에폭시, 부식액, 2019

강명자(7점 출품)의 대표작은 '나 어릴적'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동판화 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고향에 대한 향수가 주류를 이룬다. 2호에서 30호에 이르는 작품들은 장지에 석채와 분채를 사용한 한국화의 기법을 아크릴 물감으로 동판에 적용한 것이다. 매끄러우나 물감 흡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포로 동판의 바닥을 한참 갈아서 가는 요철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다. 동판의 부식 면은 창세기의 혼돈이거나 변화무쌍한 현대의 군상을 보는 것 같다.

작가의 작품들은 불교적 윤회, 시제 공존의 역사, 신구의 조화와 재탄생, 사랑과 평화를 지향한다. 특히 한련화는 작가의 유년의 뜰 안에 늘 피어 있었기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련화의 둥근 잎에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잎맥을 그려넣으면 힘이 솟아 순간적으로 연화세계의 기상을 느낀다. 항아리는 선조들의 오천년 역사를 지켜온 끈기와 장인정신, 한련화의 뿌리와 줄기에 영양을 공급하는 등 삶의 원천을 제공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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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언의 '하고 싶은 이야기 부분', 90.9x60.6, mixed media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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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언의 '다르지만 같은 부분', 90.9x60.6, mixed media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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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언의 '반가사유상', 25.8x17.9, Acrylic on canvas

김지언(7점 출품)의 대표작은 '하지 못한 이야기'. 작가의 주테마는 '길'이다. 아크릴 작업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은 이 땅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사유적 이미지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그녀에게 삶은 화사한 봄날의 나들이이기도 하고,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절제의 늪이기도 하다. 빨간 장갑을 끼고 나선 아침 풍경과 해질녘에 떨어지는 우울은 낙차가 있다. 일상에서 찾아낸 소소한 발견은 작가를 소녀적 감흥의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그녀는 작품들을 통해서 이제는 '입으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자유를 향한 질주를 하고 싶다고 말을 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부지'에게 그림 그린다는 작업 자체도 미안해하면서 고백한 것처럼 조금만 더 용기를 낸다면 가을이 가기 전에 낙엽을 밟는 소리를 들으며, 디아스포라적 삶의 실타래를 풀어낼 것만 같다. 그녀의 작품들은 여성적 아름다움, 초월적 이미지 이면, 변주적 여성심리와 함유량을 모를 찬란한 슬픔의 유전자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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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주의 '화가의 서가', oil on canvas 40.9X53.0 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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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주의 '화가의 서가', oil on canvas 45.5X53.0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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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주의 '화가의 서가', oil on canvas 45.5X53.0cm

채영주(8점 출품)의 대표작 '화가의 서가'는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책가도로, 삶의 지혜를 일깨운다. 읽는 그림을 추구하는 작가는 사람을 읽고 싶어 한다. 채영주는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유화로 발산하며 책가도를 그리는 서양화가이다. 작가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책, 그 자체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해서 책을 그린다. 주기율표와 분자식을 헤아리는 작가는 분자식을 그리듯 책가도를 통해서 사람들이 삶의 지혜와 인생의 즐거움을 찾기를 소망한다.

요즈음 작가는 책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읽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녀가 좋아하는 모딜리아니 같은 화가나 올빼미・고양이 등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진정한 작가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이성적 화가의 일상이다. 책가도로 특화된 작가는 책을 통한 상상으로 우주를 두루 여행한다. 작가가 사이즈와 색깔이 다른 표지의 책에 위치와 원근, 명암 등을 조율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면 세상은 작가의 지휘를 받는 교향악단이 된다. 읽는 그림에 소리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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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김영자의 'Lively', 45.5 ×53.0cm oil on canv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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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김영자의 'Lively', 50×50cm, oil on canv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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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김영자의 'LIVELY', 72.9x60.6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김영자(6점 출품)의 대표작은 'Lively'다. 작가는 삶의 역동성을 유화로 그려낸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여울지는 생기(生氣)가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그 기(氣)는 향기 작가의 삶과 깊이 연계한다. 작가의 삶 자체가 작품으로 투영된다. 작가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형상을 물방울(생명력을 상징)과 다양한 삶의 이야기(역동적이고 생기발랄한 이미지로 나타남) 로 풀어낸다. 작가는 곳곳에 포진해있는 발랄한 삶의 소스를 찾아내어 축복한다.

작가의 작품들은 작품 속에 용해되어 삶의 활력을 느낌과 동시에 암울한 시대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데 대한 응원의 메시지로 재탄생된다. 작가는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도모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기를 함께 느끼고 감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면서 진행시키는 작업이다. 작가 김영자는 아이들이 활기차게 성장하기를 응원하며 어두운 곳에 빛이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매사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역경을 이겨내기를 간구한다.

세상을 달관한 여류 화사(畵師)들의 '함께 가는 길展'은 깊어가는 가을 날, 울림을 주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서로가 게을러지거나 지칠 때, 격려하고 보다듬어 줄 공식 장치가 생긴 것이다. 조금 느리지만 깊이가 있는 작가들의 행보가 디지털 시대의 속도전과 조급성을 깨는 계기가 되었다. 함께 길을 가며 세상의 빛이 되고자하는 나이 지긋한 작가들의 전시회에 존중을 표한다. 다음 전시회에서는 보다 과감한 주제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