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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안보 무감각증’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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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안보 무감각증’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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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아나운서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오전 2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에게 알린다”며 울먹이고 있었다.

남한의 TV 화면에서는 ‘1994. 7. 8 오전 2시 김일성 사망’이라는 자막과 함께 아나운서가 계속해서 김일성의 사망을 알리고 있었다.

이 시각, YS는 청와대에 여성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대담하고 있다가 비서실장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로 전군 경계경보를 지시하였다.

온 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TV에서는 모든 장병의 귀대명령을 알리고 있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거리에는 사람의 발길이 줄었고 사무실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서성거리고 있었다.

실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그 자체였다. <가상 제2의 한국전쟁, 이장호 지음>

김일성 사망 당시, 우리는 이렇게 ‘안보 무감각증’이었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90년대의 ‘먼 과거사’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고 하자. ‘가까운 과거사’ 때에는 어땠을까.

2016년 1월 6일.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시간은 10:30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조선중앙TV가 ‘특별중대보도’를 한 시간은 12:30이었다.

청와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한 시간은 12:00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NSC가 열린 시간은 13:30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보다 빨랐다. 일본이 NSC를 연 시간은 11:44였다. 아베 총리는 16:58에 NSC를 다시 한 번 열고 있었다.

‘바다 건너’ 일본은 북한의 발표시간인 12:30 ‘이전’에 안보회의였는데, 북한의 ‘코앞’인 우리는 그보다 늦고 있었다. 발표시간 ‘이후’에 박 대통령이 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당시, 군과 정보 당국의 해명은 “은밀한 준비활동으로 임박 징후를 포착할 수 없었다”였다. 해명이 아니라 마치 ‘변명’이었다. ‘안보 무감각증’이라는 말을 들을 만했다.

최근에는 또 어떤가. 북한 중앙통신은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초대형 방사포 무기체계의 기습적인 타격으로 적의 집단목표나 지정된 목표구역을 초강력으로 초토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일본의 고노 다로 방위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일련의 발사를 통해 여러 미사일 관계 능력을 취득하려 하고 있다”며 “그런대로 능력이 향상된 것은 틀림없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느긋했다. 청와대는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가 안보에 위중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은 ‘안보 무감각증’에 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잊을 만하면 북한이 ‘불화살’을 쏘아대는 바람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발’이 있었는지 헤아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무감각증’이면, 국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모병제’ 얘기가 시끄러워지고 있다. 안보보다 어쩌면 선거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