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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회장님의 두 가지 ‘통 큰’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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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회장님의 두 가지 ‘통 큰’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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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창업자 조홍제(趙洪濟∙1906∼1984) 회장은 두 가지가 남달랐다.

하나는 환갑을 바라보는 56세의 나이에 효성그룹을 창업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조 회장은 애초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李秉喆∙1910∼1987) 회장과 ‘동업 관계’였다. 두 회장이 삼성그룹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재계의 두 ‘거물’이 한 그룹에서 오래 사업을 계속하기는 힘들었다. 갈라서기로 했다. 조 회장은 회고록 ‘나의 회고’에 이렇게 썼다.

조홍제가 이병철에게 말했다.

“현재의 내 지분이 전체의 3분의 1선이니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 3사 중 규모도 크고 사업성이 좋은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 함께 이 시장이 가지고 나는 제일제당을 갖는 것이 좋겠다.”
이병철도 동의했다.

“오늘날 삼성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조 사장의 공헌이 지대했으니 3사 중 어느 회사를 가져도 오히려 모자람이 있겠지만 굳이 조 사장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바로 기업을 나눠서 갈라설 수가 없었다. 당시는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데다, 기업을 나누는 ‘금전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따질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조 회장은 ‘나의 회고’에 계속 적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억 원 정도를 찾는 것으로 매듭짓고 잔여 재산을 찾는 일은 포기하고 말았다.… 잔여 재산을 포기한 그 결단은 내가 오늘날까지 7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수많은 결단 가운데서도 가장 현명하게 내렸던 결단이 아니었나 싶다.”

이랬었다. 조 회장은 효성그룹이라는 ‘큰 것’을 위해서 잔여 재산이라는 ‘작은 것’을 버린 것이다.

조 회장은 계속 밝혔다.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분배받을 그 재산에만 연연했더라면, 내 독자적인 사업은 시작해 보지도 못하고 재산은 재산대로 찾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으리라. ‘때로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요, 버리지 않는 것이 곧 잃은 것이다’ 하는 이 역설적인 교훈은 내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조 회장은 1962년 9월 ‘임직원 총 15명의 조촐한 무역 회사’인 효성물산으로 새 출발을 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은퇴를 했을 56세였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해서 자신의 호(號)도 ‘만우(晩愚)’라고 지었다. 늦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효성물산은 창립 이듬해인 1963년 5월에 자본금을 1500만 원에서 10배인 1억5000만 원으로 늘릴 수 있었다. ‘15년 동안의 동업’을 청산한 조 회장은 ‘작은 재산’을 버리고 효성이라는 ‘거대한 그룹’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효성그룹이 14일 경남 함안에 있는 조 회장의 생가 개방식을 가졌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뒤져본 조 회장의 회고록이다. 조 회장이 늘그막에 ‘큰 것’을 추구하는 ‘통 큰' 결단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효성그룹은 없었을 것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