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서울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이 사실상 막히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기존 지방 건설사들의 수주 텃밭이었던 지방 재건축‧재개발사업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한제 회피 수단으로 후분양을 선택하는 정비사업 조합들이 늘어날 경우 재무 구조가 안정된 대형 건설사와 그렇지 않은 중소 건설사 간 ‘실적 양극화’가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에서 진행 중인 다수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이번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사업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일반분양 물량의 분양가가 낮아지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은 오히려 늘어나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이에 따라, 서울 일부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은 일반분양가를 높이기 위해 사업을 늦추거나 후분양을 선택하는 등 분양가상한제 회피 방안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서울 주요 정비사업 진행에 차질이 생기면서 건설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해외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수익성 높은 서울 재건축‧재개발 수주 기회마저 줄어들면서 대안 찾기에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특히, 중견‧지방건설사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시공능력평가 10위권 내에 드는 대형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물량 감소가 예상되는 서울 지역을 벗어나 지방으로 수주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19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도권과 지방의 재건축·재개발 수주 격전지에서는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권을 독식했다. 권역별로는 경기 1곳, 인천 1곳, 대전 2곳, 부산 1곳, 대구 1곳, 제주 1곳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시공권 깃발'을 꽂았다.
중견건설사 한 관계자는 “물량난이 극심하다 보니 지방 소규모 사업지에 대형사들이 몰리며 중견사 간 출혈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하며 “지방자치단체 주도로 용적률 인센티브 등 지역건설사 참여를 높이고 있지만, 대형 건설사와 경쟁할 경우 중견사는 ‘들러리’에 불과할 정도로 경쟁력이 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업계에서는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을 선택하는 조합이 늘어날 경우 대형사와 중견사 간 실적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공사대금을 분양자가 먼저 내고 그 돈으로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필요한 자금을 건설사가 직접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금 조달력이 떨어지는 중견건설사에겐 사업 참여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후분양을 위해선 프로젝트 파이낸싱(PF)와 같은 방법으로 돈을 조달해야 되지만 중소건설사의 경우 보증이 없어 받기 힘든데다 승인된다 하더라도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뒤 “대형·중견 건설사가 각자의 사업 영역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하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