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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서양 할머니가 놀란 ‘기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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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서양 할머니가 놀란 ‘기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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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영국 할머니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 사람들의 ‘기부문화’를 보고 감탄하는 글을 적었다.

“최근에 창간된 서울 크리스천 뉴스지가 인도의 기근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평양 관할 지역의 기독교 신자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나라의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84달러를 모금했다. 몇몇 부녀자들은 순금 반지를 팔아 모금에 보태기도 했다. 서울의 장로회교회들은 60달러를 모아 보탰다. 이 가운데 20달러는 순수 한국인으로 구성된 신자들이 모금한 돈이었다. … 우리보다도 훨씬 앞서가는 감동에 젖었다.”

비숍 할머니는 이렇게 놀라고 있었다. 서양 사람의 우월감 비슷한 냄새를 약간 풍기는 글이지만, 우리는 그들도 감동할 만큼 훈훈한 ‘기부문화’를 갖추고 있었다.

비숍 할머니의 글처럼 기독교 신자만 그랬던 게 아니었다. 얼마 후 벌어진 ‘국채보상운동’에서 우리 기부문화는 또 빛을 내고 있다.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2000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매달 20전씩 내면 나랏빚 1300만 원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하는 기사가 실렸다.

즉시 온 나라가 호응하고 나섰다. 골초들이 담배를 끊은 것은 물론, 부녀자들은 애지중지하던 가락지를 선뜻 내놓았다. 장안의 기생들까지 빚 갚는 데 보태라며 노리개를 가지고 왔다. 목숨처럼 소중한 머리채를 내놓는 사례도 있었다.
우리는 사람까지 기부(?)한 ‘과거사’가 있다. 고려 말 학자 안향은 유교를 진흥시키기 위해 자신의 녹봉을 희사, 대성전(大成殿)을 지었다.

대성전은 오늘날의 성균관이다. 봉급을 털어서 성균관을 만든 것이다.

안향은 그러고 나서 ‘노비 100명’을 추가로 기증했다. 당시에는 노비도 재산이기는 했지만, ‘사람’을 기부한 것이다. 왕조가 바뀌어서 조선 때 성균관에서 종사했던 노비들은 당시 기증한 노비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우리 기부문화는 이 정도로 유서가 깊다.

잘 알다시피, 우리 국민은 이른바 ‘IMF 위기’ 때에도 나라를 망친 정부를 욕하는 대신,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1998년 1월 5일부터 3월 15일까지 70일 동안 349만 명이 225t, 21억7000만 달러어치에 달하는 금을 모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외국 언론이 자신보다도 국가와 사회를 더욱 아끼는 국민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랬던 기부문화가 시들해졌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집값이 뛰고, 청년실업률이 치솟는 등 먹고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25.6%에 불과했다. 2011년 조사 때에 비해 10.8%포인트나 줄었다고 했다. 기부하지 않는 이유는 51.9%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이런 가운데 건물 매각 차익을 통째로 기부하겠다는 ‘과감한 기부’가 나오고 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작년 7월 25억7000만 원에 매입했던 서울 흑석동 상가주택 건물을 34억5000만 원에 판 차익 8억8000만 원을 죄다 기부하겠다는 것이다. 김 전 대변인 불과 1년 5개월 만에 엄청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부동산 고수’이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