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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두리춤터 신진작가 육성사업의 의미있는 신작…김현우 안무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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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두리춤터 신진작가 육성사업의 의미있는 신작…김현우 안무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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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2019년 11월 25일(월), 26일(화) 밤 11시 두리춤터 포이어극장에서 포이어 융복합시리즈 공연 중 극장특성화사업의 목적으로 두리춤터 신진작가 육성사업 대상작인 김현우(임학선댄스위 단원) 안무의 <이명>(포이어프로덕션 제작)이 공연되었다. 무용 에세이 <이명>의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김현우이고, 황서영은 그림자극이 전개되는 후반부에 대형 천 속 그림자놀이(조명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 비주얼이 두드러짐)에 등장한다. 움직임은 녹음된 안무가의 나레이션과 함께 진행된다. 주제는 ‘유년의 폭력이 낳은 후유증’ 혹은 ‘폭력성에 관한 한 연구’에 해당한다.

안무가 김현우는 어릴 적 경험한 가정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관한 기억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이 시나리오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장면들을 채집하고, 그 장면에 필요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모아 실험하며 공연 장면들을 만들었다. <이명>의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음악은 숄티 로저스와 거인들(Shorty Rogers & His Giants)의 ‘블란도를 위한 블루스’(Blues For Brando)와 라비니아 메이저(Lavinia Meijer)의 에뜌드 2번과 5번이 사용된다. 극적 효과를 위한 조명(윤지영, 염광일)과 촬영(이경민)의 쓰임이 왜 중요한지가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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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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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이명>은 상처나 충격에 대한 후유증을 동인(動因)으로 삼는다. 어쩌면 귀를 잘못 맞아서 고막이 터진 결과인지도 모를 일이다. 안무가는 자신의 경험을 컨템포러리 춤의 중심축으로 삼고, 축성하듯 촘촘한 구성으로 무대화한다. 안무가 김현우는 자신과 주변을 아주 낯설게 만듦으로써 일상의 이질화 작업을 특화한다.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나레이션은 안무가가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회고조로 솔직하게 진술한다. 아리면서도 슬프게 다가오는 가정폭력은 유사경험을 소지한 자들의 공감을 얻고, 춤은 진정성을 얻어 간다.

막이 열리면 무대는 온통 하얀 대형 천으로 덥혀있다. 위태로운 전등, 안락과는 거리가 먼 침대, 사다리 등이 위치한 구조가 허름한 스테인리스 공장 정도로 비친다. 사내(김현우)는 거대한 알을 깨고 나오듯, 대형 천을 비틀어 모으고 비집고, 낙하산을 걷듯 천을 걷어 올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상체 탈의와 팬티만 입은 상태로 분주히 공간을 오간다. 절박한 심정의 강박감이 부르는 반복적 동작은 일반인들과 달리 자신에게는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도 들어가 있다. 세탁을 마친 빨랫감들이 널려지고 사내는 대형천이 가림막이 되도록 집개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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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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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김현우는 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이제는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됨으로써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진 폭력성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이명>을 만든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이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사내의 과거는 IMF 경제 전쟁이 스쳐 간 후유증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들이라고 하기에는 침묵한 다수는 사내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나레이션은 1. 대부분 불유쾌한 소음을 끼고 살던 시골집에 대한 기억 2. 불면의 밤을 만드는 돈에 얽힌 싸움 3. 해체에 근접한 가족의 붕괴와 단절을 스쳐 간다.

백색 대형천이 가림막으로 세워지면 술병, 소음, 싸구려 책이 지배했던 공간은 꿈의 공간으로 변한다. 만화적 느낌이나 사진으로 비친 공간에 여인이 나타나고, 그림자극이 전개된다. 여인은 소주병을 든 채 술을 마신다. 진청색이 감돌면 유희는 낭만이 되거나 판토마임이 되기도 한다. 빨랫감을 잡고 서로 당기는 만화적 장면이 지나고, 여인은 사라진다. 사내는 다시 사다리를 어깨에 메고 이동한다. 긴 해설이 끼어든다. 이명에 이르자 영상이 도입되고 복사기와 팩스 전송음 등의 소음이 지속해서 일어난다. 그다음 영상은 부감으로 잡힌 수영장이다. 해설이 끝날 무렵 천은 다시 깔리고, 사내는 재생을 바라는 듯 그 천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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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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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안무의 '이명'

긴 나레이션을 3인칭 시점으로 축약, 환치한다. 「그에게는 홀로 길을 걸어가는 이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눈물과 흐느끼는 자신의 숨소리를 숨기기 위해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고 있으면 어느새 소음과 기억은 어둠에 휩싸여 희미해졌다. 집앞 일차선 도로를 걷고 있던 도중 귓속에 삐-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일 차선 도로는 신비로움과 즐거움의 대상이 아닌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기분 나쁜 소음이 들리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그와 가장 멀리 지내고 있다. 아직도 가족끼리 외식하는 모습을 보면 결핍을 느낀다. 아직 마음속 한쪽에는 미움과 원망이 자리 잡은 듯하다. 언젠가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통해 미움과 원망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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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임학선댄스위 단원으로 자신의 안무작을 양산하기보다는 군무팀의 일원으로서 공동 작업의 중요성을 터득해오고 있는 춤꾼이다. 전통무용 수련에 소홀하지 않았고, 창작무용에도 관심이 많은 창의력 충만의 차세대 춤꾼이다. 그는 묵묵히 자신을 연마하면서 자신과 주변에서부터 무용화할 소재를 찾아 왔다. 어려운 한국무용 환경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방법을 찾는 것은 신진작가의 몫이다. 두리춤터는 묵묵히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가는 예술가들의 뜻을 존중해왔다. 두리춤터의 극장특성화사업 차세대안무가 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해온 김현우는 11월 한 달 동안 포이어프로덕션 제작팀과의 융복합워크숍을 통해 참가작 <이명>을 완성시켰다. <이명>은 번득이는 창의력으로 한국창작 무용의 새로운 돌파구를 개척한 수작이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