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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세배 받을 자격 없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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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세배 받을 자격 없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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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세배하러 오는 사람 가운데(歲時來拜人)/ 절반은 수염이 허옇구나(半是鬚眉皓)/ 내 스스로의 나이를 잊고 있다가(不知已年高)/ 늙어버린 나 자신에게 깜짝 놀라네(還驚少年老).”

90세까지 장수를 누린 조선 때 선비 허전(許傳·1797∼1886)은 세배를 받다가 새삼스러워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가 허연 늙은이들이 찾아와서 세배를 하는 게 아닌가. 허전은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나이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허전은 그만큼 ‘어르신’ 예우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늙은이들이 세배를 하겠다고 더 늙은 자신을 찾아오고 있었다.

이승만 정부 때 내무부 장관과 민의원 등을 역임한 조병옥(趙炳玉·1894∼1960)도 그랬다. 머리가 허연 늘그막에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세배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조병옥은 이승만과 별로 좋은 사이라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러면서도 조병옥은 연초가 되면 세배만큼은 빠뜨리지 않았다.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이승만을 찾아가 세배를 하곤 했다.

그런 조병옥에게 비서가 물었다.

“선생님이 대통령을 싫어하고, 대통령도 선생님을 반기지 않는데, 어째서 꼭 세배를 하러 다니는 겁니까.”

그러면 조병옥은 대답해줬다.

“그런 게 아닐세. 싫든 좋든 우리나라 대통령인데 세배는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조병옥은 이승만을 ‘나라의 어르신’으로 깍듯하게 예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나이도 조병옥보다 19세 연상이었다.

이랬던 조병옥이 어느 해에 갑자기 세배를 하러 가지 않고 있었다. 비서가 이상한 듯 그 이유를 물었다.

조병옥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제는 세배를 그만두려고 해. 그 양반 너무 심했기 때문이야. 세배를 받을 자격도 없어졌어.”

조병옥이 세배를 그만두게 된 것은 이른바 ‘보안법 파동’ 때문이었다. 보안법 파동은 여당인 자유당이 ‘무술 경찰’을 동원, 반대 농성을 벌이는 야당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사건’이었다.

명분은 ‘국가보안’이었지만, 실제로는 정부 비판 세력과 민심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1958년 연말의 ‘사건’이었다.

조병옥은 이 사건 이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듬해인 1959년 정초에는 ‘세배 받을 자격’도 없다며 이승만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 ‘자격 상실’ 기간마저 오래 갈 수 없었다. 곧 이어 4·19 혁명과 대통령 하야였다. 민심을 무시한 대통령은 정권을 유지할 자격까지 상실하고 있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