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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6)]예술가 고상우와 시인 조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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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6)]예술가 고상우와 시인 조기영

작가와 시인 부부의 만남…동반자이자 정신적 후원자



작가는 시인에게 영감 주고, 시인 부부는 작업 모델 겸 후원

네거티브 필름, 색채와 빛의 반전 통해 내면의 아름다움 들춰내


아름다운 동행, “예술은 위대하고 대단하다”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6)-예술가 고상우와 시인 조기영


▲ 고상우 작 '태양이사랑을할때빛은무엇을꿈꾸는가II'[글로벌이코노믹=김민희 예술기획가] 화가와 시인. 그림과 글이라는 다른 언어로 예술을 표현하는 두 아티스트를 만났다. 화가 고상우 씨(1978~, 이하 고상우)와 시인 조기영 씨(1968~, 이하 조기영). 필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고상우를 최근 서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후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갤러리를 제외하고는 친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재정적 후원자는 아직 없지만 ‘정신적인 후원자’가 있다고 했다. 바로 조기영 시인이다. 생뚱맞을지 모르겠지만 시인 모델과 아티스트로 만나게 되어 어려운 상황을 함께 겪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 가면서 서로의 우정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 들어 표현했던 고상우 작가의 예술세계가 조기영 시인의 가치관과 삶이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하면서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작품의 주제와 소재 선택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가 깃들여 있을지 깊이 들어가보고 싶었다. 보다 직접적으로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자리였다.

▲ 예술가 고상우(왼쪽)와 그의 후원자인 시인 조기영그들의 첫 만남은 키아프(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에서였다. 고상우가 조기영과 고민정 아나운서(1979~, 이하 고민정) 부부를 초대했다. 고상우가 부부의 결혼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은 2007년쯤이었다. ‘가난한 시인과 인기 아나운서의 결혼’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모델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민정에 대한 기사를 몇 번 더 접하고 나서, 언론인으로서의 가치관이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아나운서는 연예인이 아니다. 사회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고민정의 곧은 생각을 보며, 아름다운 그의 마음을 작품에 담고 싶어 메일을 보내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2008년 부부는 키아프에 전시된 고상우의 작품을 보고 맘에 들어 바로 모델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고민정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고상우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고, 그가 진행하려던 작품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다. 부부는 고상우가 모델료가 없다고 제안한 것이 오히려 더 기뻤다고 한다. 대신 작품을 한 점 드리겠다고 했으나 그마저도 부부는 안 받겠다고 했다니 참 욕심 없는 부부다. 그러나 후에 작가는 관례라며 끝내 한 점을 전했다.

고상우는 사진을 통해 회화, 오브제, 퍼포먼스가 섞인 종합예술을 하며,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세상이 말하는 미(美)와는 다른 내면적, 정신적 아름다움이다. 자유와 꿈, 여성의 욕망, 슬픔, 사랑…. 네거티브 필름, 색채와 빛의 반전으로 완성되는 그의 작품은 우리를 초현실적인 세상으로 안내한다. 그 곳에서는 보여지는 것만이 아름다움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 고상우 작 '꽃들의 대화'석 달간, 세 번의 작업 끝에 부부를 모델로 한 작품들이 완성되었다. 조기영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대중목욕탕에도 가지 않는데 이 프로젝트 작업 중에는 상의를 벗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한다. 네거티브 필름을 보게 될 때 평범한 사람들은 신기하다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자신의 방식으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고상우를 보고 “예술가는 참으로 다른 눈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조기영은 말한다.

이 작품들로 2009년 서울에서 ‘돈과 조건보다 사랑이 소중하다 믿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오프닝 며칠 전 문제가 발생했다. 모 신문사 기자의 잘못된 보도로 고민정이 곤란해지게 된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방송국에서는 보도 내용을 보고 전시를 열지 말 것을 요구하는데, 이로 인해 작가와 모델 모두 예상치 못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원래는 모델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같이 신비로움 속에 두어, 작품을 작품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갤러리 측에서 누군지는 밝히지 않되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자고 권유했고, 그 과정에서 왜곡된 기사가 나갔다.

이 때 조기영은 아내에게 대응하지 말고 버티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현실과 타협하기 보다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물질과 마음이 있는데 물질이 힘든 것은 지나가면 잊혀지지만 정신적인 것을 저버리면 마음에 남는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실적인 것을 꺾고 회사 입장에 선다면 결국은 마음에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힘들고 어렵겠지만 버티라고 했던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본인에게 자부심이 될 것이라고 여겼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 고상우 작 '버닝플라워 II'보통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작가와 모델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 때문이었는지 고상우와 조기영-고민정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조기영은 일반적으로 자기 세계에 갇혀 있고 까칠한 성격의 다른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모델을 먼저 배려해주는 고상우의 성품이 좋았다고 한다.

고상우도 당시 조기영이 고민정에게 버티라고 하게 된 속뜻을 알게 되고 그것이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잘못 보도된 기사는 당일 세 번에 걸쳐 수정되었고 고민정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전시는 무사히 열렸다. 맞서 싸우기로 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 후 고상우는 미국과 유럽의 여러 비중 있는 전시회에 초대되어 열심히 활동했고, 유수의 전시회에서 많은 인정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기존 관념이나 보수적 이념에 도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품으로써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작가의 결실이었을까. 그 작품은 얼마 전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그리고 올해 10월 19일부터 앙평 군립미술관에서 부부가 모델로 한 ‘태양이 사랑을 할 때 빛은 무엇을 꿈꾸는가’란 제목의 작품이 그룹전에 초대되어 대중에게 다시 선보이게 된다. 이 제목은 고상우가 조기영에게 부탁하여 지어지게 된 것이다. 예술품에 시인이 지은 제목의 만남, 재미있는 협동작업이다.

▲ 고상우 작 '피어나다 II'전북 정읍 모악산이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조기영은 3남 1녀 중 둘째다. 모악산 주변에 토속종교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종교를 보고 자라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전주에서 다녔고, 어렸을 때부터 시를 좋아해 시를 외우고 다니는 멋을 아는 소년이었다.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했기에 형제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주말에는 논밭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시는 농사를 짓고 싶지 않다고 한다. 도시사람들은 귀농을 꿈꾸지만 일주일 내내 일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허나 나중에 소설을 쓰고 글을 더 쓰게 된다면 시골로 가고 싶다는 것을 보니 그 시절이 그립고 좋은가 보다.

경희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다닐 때도 시를 좋아했고 또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독서토론 동아리’ 출신이지만 아내 고민정이 같은 학교 ‘민중가요 동아리’ 에서 회장으로 활동을 하는 것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나라사랑 청년회’에 가입하여 보다 나은 세상,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열심히 활동했지만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현실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남들처럼 회사에 입사했는데 자신이 술과 접대가 빠질 수 없는 회사 문화에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결국 어려서부터 쭉 시를 좋아했기에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인생 모토를 ‘가난을 무서워하지 말자’로 정했다. 가난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웬만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집안 분위기였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에서 왔을까. 그의 시는 참 맑고 순수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나고 시에 스며들게 된다고 한다.


▲ 고상우 작 '피어나다1'고상우는 어느 조각가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될 쯤 자연스럽게 예술가를 꿈꾸게 되었다. 감성적인 성향의 소년이었던 그는 다른 남자아이들이 총싸움을 할 때 그림을 그리고, 미술관에 가고, 음악회에 갔다. 열네 살 때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미대생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의 미대 입시교육과 다른 포트폴리오 시스템에 매력을 느꼈다.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기를 원했으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데 결국은 대학교 학비까지만 도와주신다는 전제로 승낙을 얻었다. 그런데 미국비자가 나오지 않아 문제가 되자 비자 면접관에게 “백남준은 열다섯 살에 한국을 떠나 결국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고 설득해 결국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막힌 상황을 뚫고 나가는 용기가 대단했다. 미술교육이 좋은 고등학교를 선택했고, 미국에서 최고의 미술대학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입학했다. 물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직접 벌어야 했다, 4학년 때 뉴욕에 있는 뉴 스쿨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며, 후에 뉴욕에 정착하여 진정으로 원하던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디지털시대의 최첨단 기구를 이용하지만 고상우의 제작방식은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긴 시간을 들여 모델과 관계를 쌓아가고 그 내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전문직 모델보다는 일반인을 모델로 써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을 담고자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오브제를 직접 세팅하고 모델의 몸에 페인팅을 한다. 화려한 색체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 내면은 매우 순수하다. 보면 볼수록 고상우와 조기영은 닮았다. 조기영이 고상우를 처음 봤을 때 따뜻함을 느꼈다고 한다. 작품 가격을 측정할 때도 인기에 따르지 않고, 나이에 걸맞게 올라가는 것이 맞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올바른 사람이라 여겼다.


▲ 고상우 작 '태양이 사랑을 할때 빛은 무엇을 꿈꾸는가'부부와의 만남을 통해 고상우 작가는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 부부와 함께 고아원 봉사도 하게 되고 남을 위한 삶,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장애인, 한센인 등을 모델로 하면서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고상우와 조기영은 이제 서로의 작품을 제일 먼저 보여주는 사이다. 고상우에게 조기영은 작업을 격려해주고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힘들 때 고민을 얘기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을 의논할 수 있는 고마운 정신적 후원자다. 또한 조기영에게 고상우는 유일한 미술가 친구이자 또한 그의 문학세계 후원자이다. 그들은 문학과 예술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고 시를 쓰는 시인도 있는 것처럼. 조기영이 출판할 소설 『달의 뒤편』 표지에 고상우의 작품이 실릴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보는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창조하고자 한다. 또한 작품 그대로가 예술성과 영원성을 갖게 되는 것을 꿈꾼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두 아티스트는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예술의 힘은 위대하고 대단하다.”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을 보고 인생이 바뀌고, 아픔이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민희 예술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