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셰프 강경갑의 남극일기(5)]
[글로벌이코노믹=강경갑 남극의 셰프] 그렇게 가장 큰 손님을 떠나보냈지만 이별의 아쉬움도 그날 저녁으로 끝내야 했다. 하계 대원들의 연구 활동과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일들을 하루라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계대원(3개월 정도 하계에 들어와서 연구 활동을 하고 철수하는 연구원들)은 날씨가 좋을 때 조금이나마 더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 바빠진다.잠수팀(문혜원, 라승구, 조운찬)은 안전을 위해 작살을 들고 추운 바다에 들어가 세종기지 앞바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해상생물들을 채집해 사진과 함께 박제 만들기에 정신이 없고, 임정환 박사를 주축으로 한 바이오 팀은 다른 섬으로 이동해서 식물채취에 여념이 없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돌아오면 자외선에 얼굴이 익어 마치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 연구원들은 덜 하겠지만 여자 연구원들은 심리적으로 많은 걱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단 한 명밖에 없는 남극 조류 박사 김정훈 연구원은 매일 일본 조류 학자와 함께 펭귄 마을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지내다 온다. 얼마나 열심히 연구를 했는지 기지로 돌아오면 닭똥 냄새 비슷한 것이 온 기지를 뒤덮는다. 씻어도 씻어도 그 냄새는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일본 펭귄학자 고쿠부와 김정훈 박사는 이 냄새 때문에 연구를 다녀와서는 항상 식당 맨 끝자리에 앉아 본의 아니게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대원들의 고생은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였다. 시설을 고치기 위해 들어온 유지 보수팀들도 밤잠 없이 공사하기가 대부분이고, 모두가 힘들게 일하면서도 누구 하나 불평없이 자기 분야의 일들을 해 나갔으며, '영원한 남극의 셰프' 강경갑은 이분들의 먹거리와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매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저녁 10시까지 쉴새없이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울라치면 기지에 있는 많은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 할 수 없기에 잽싸게 몸을 놀려야 했다. 그래야 밖으로 나가는 연구대원들의 먹거리를 만들어 하나라도 더 챙겨줄 수가 있으며, 고생하는 공사팀들을 위해서는 간식도 준비해야 하기에 손발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다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도 필자는 셰프로서 내일 식사 준비를 위해 다시 움직여야 했고, 공사팀들도 필자와 비슷한 시간에 하루일과를 정리하곤 했다. 이렇게 바쁘게만 돌아가던 세종기지에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 왔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사실 일정이 꽉 잡혀 있었지만, 블리자드로 인해 바깥 일정은 모두 취소되고 조촐하게나마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필자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 외에 세종기지에 있는 모든 식구들이 참여할 수 있게 다과 상차림에 들어갔고, 준비가 다 되어서 사람들을 불렀지만 강한 눈보라에 옆 동의 기숙사에 있는 분들은 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쩌면 좋으랴! 그래서 남극 아니겠는가! 밖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생활동 안에서는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며 한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낭만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이때 대원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시간도 있었다.
평소 전미사 대원(우리나라 첫 월동 여자 연구원)이 선물을 준다고 약속을 했다가 준비를 못했다고 주지 않자 주위 대원들에게 필자가 전미사 대원에게 결투 신청을 하면 어떻겠냐고 놀렸다. 전미사 대원의 체격으로 봐서는 여성스럽지만 태권도에 복싱까지 해서 알고보면 무지 무서운 사람이다. 이를 알고 있는 닥터는 괜히 맞아 가지고 의무실 신세 지지 말고 눈물 삼키면서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또 한번의 세종기지에서 특별한 밤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