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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오르겔'이 시골동네를 관광명소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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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오르겔'이 시골동네를 관광명소로 만들다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3)]필리핀 라스피나스성당의 파이프오르간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2004년 필리핀에 기념비적인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라스 피나스’라는 조그마한 동네의 성당에 세워진 ‘파이프오르간’이 필리핀 국가 보물로 공식 지정되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라스 피나스. 필리핀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마한 동네이름이다. 성 요셉성당 이외에는 별 다른 볼 것이 없는 곳이다.

우리는 필리핀 하면 휴양지를 생각하느라 놓칠 수도 있겠지만 필리핀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는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찾아간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한 지금도 라스피나스를 찾아가기란 수월치 않다. 그만큼 시골 하고도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은 이곳 마을을 기필코(?) 방문해 성당을 찾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100여 년 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건축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보기 위해서다.

라스 피나스에 건축된 파이프오르간은 순전히 대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다. 전면의 설치된 파이프 모습도 똑바르지 않고 구불구불하다.

▲필리핀의시골동네인라스피나스성당에100여년전에건축된대나무파이프오르간
▲필리핀의시골동네인라스피나스성당에100여년전에건축된대나무파이프오르간
우리가 생각하고 보아왔던 그런 유럽식의 파이프오르간 하고는 이름만 비슷할 뿐 모습이나 소리는 전혀 다르다. 도대체 100여 년도 훨씬 전에 필리핀에서 대나무로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할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필리핀 사람 어느 누구도 오르겔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그곳에서, 오르겔 제작을 그것도 순전히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재료인 대나무로 만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히 문화적 충격이다.
이를 실현에 옮긴이는 1795년부터 1830년까지 필리핀에 선교사로 있었던 자연과학자요, 건축가요, 화학자요 그리고 오르가니스겸 오르겔 제작가이기 했던 ‘디에고 세라’라고 하는 스페인 신부였다.

오르겔을 짓고 싶어 했던 디에고 세라 신부는 이곳 필리핀에서 오르겔을 제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거의 체념에 젖어 있다가 마침 그 동네를 둘러싸고 장대처럼 쭉쭉 뻗어있는 대나무를 보고나서 무릎을 쳤다. 라스 피나스는 주변 산에 대나무가 갖가지 형태로 숲을 이뤄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것으로 파이프를 만들자!”

흥분한 디에고 세라 신부는 교회가 세워지기도 전에 제일 먼저 파이프오르간을 만들기로 작정을 하였다. 세상에 처음으로 대나무로 이루어진 파이프오르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결심을 한 순간 지체하지 않고 그곳 원주민들과 함께 낫 하나씩을 들고 소리에 적합한 대나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라 거둬들인 대나무는 다시 굵기와 크기를 구별하고 키 높이로 잘라내 정리하고 파이프소리가 날 수 있도록 대나무 속살을 파내고, 가지치기로 다듬고 밑둥을 막아 바람틈새를 만들고 뚜껑을 만들어 씌우고 바람조절 개폐기를 하나하나씩 만들어 붙이는 등 나름의 방법을 강구해 소리를 빚어냈다. 소리는 소리이되 대나무 소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기도 훨씬 전인 1816년부터 오르겔 제작을 시작해서 1821년 교회가 그 사이에 완성되고 나서도 3년이 지난후인 1824년에 지금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완성되었다. 제작기간만도 횟수로 8년이 걸린 셈이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190년 전의 일이다.

‘유럽의 오랜 전통의 문화’가 ‘필리핀의 고유문화’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유럽에서의 메탈파이프처럼 매끄럽고 날렵한 소리가 아닌 대나무 특유의 허스키하고 토속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따뜻하고도 흙 냄새같은 소리로 바뀌었다.

필리핀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악기였던 것과 같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도 남을 완벽한(?) 악기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 유일한 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부식과 작동불능으로 연주가 불가능해졌다. 거의 수명을 다하게 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필리핀정부는 파이프오르간을 되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독일로 보냈다.

1973년부터 시작한 재 복원작업은 3년에 걸친 1975년 초에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하는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로써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다시 새 생명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재도약의 시기를 맞았다.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라스 피나스는 여태까지 동네가 생긴 이래 한 번도 이 만큼의 손님들을 맞이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겪게 된다. 더욱이 400여석 조금 못 미치는 성 요셉성당에는 필리핀 대통령 영부인과 전 각료들로 꽉 찼다. 1975년 5월9일의 일이다.

사라질 뻔했던 필리핀의 문화가 다시 소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정부 고위관료뿐만 아니라 각국의 유명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조그마한 시골 동네 라스 피나스에 집결한 것이다.

전기와 수도 시설조차 없었던 라스 피나스는 그후 이 ‘작은 오르겔’ 하나로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세계인들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몰라도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버티고 있는 시골 마을 라스 피나스는 기억하고 있다. 라스 피나스는 더 이상 작은 시골마을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음악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로 이루어진 유산임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이 오르겔은 성 요셉성당과 박물관 그 옆의 수도원까지 덩달아 지금까지도 필리핀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행선지로 북적일 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매해 이곳에서는 ‘뱀부오르간페스티벌(BAMBOO ORGAN FESTIVAL)’이라는 국제적인 오르간 축제가 열린다. 그 페스티벌과 더불어 오르겔과 관련된 고전에서부터 현대적이고도 실험적 연주 등 많은 앙상블 연주회가 이 작은 도시에서 다방면으로 수도 없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과 음악가들은 이 ‘音’이 살아있는 듯한 뱀부오르겔(BAMBOO ORGEL)을 눈과 귀로 감동을 경험해 보기 위해 필리핀의 라스 피나스를 지금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