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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433)]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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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433)]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17세기 조선에 표류하여 13년간 살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갔던 헨드릭 하멜은 '하멜 표류기'를 쓴다. 이 책을 읽던 중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멜 일행에게 경위를 추궁하던 관리 중 박연(朴淵)이라는 백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이 사람은 음악가 박연(朴堧)이나 박연폭포와는 무관하다.

푸른 눈의 조선 관리 박연은 본래 네덜란드인으로 하멜처럼 우리나라에 표류한 뱃사람이다. 원래 이름은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Jan Jansz Weltevree). 그는 본국으로 귀환하길 소망했으나 인조가 허락하지 않자 결국 조선에 귀화하여 훈련도감에서 관리로 재직한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여성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낳았다고 하는데 그 후손은 추적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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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2009년에는 MBC 드라마 '탐나는 도다'에 등장하기도 했고, 2013년에는 서울예술단이 가무극 '푸른 눈 박연'을 공연한 바 있다.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 홍순목의 '조선인 박연'이 다룬 인물이 바로 이 벨테브레이였다. 그의 고향 네덜란드 Graft-De Rijp에는 그를 기린 동상이 서있고, 1996년 KBS 다큐멘터리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협조로 박연을 생생하게 소개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던 히딩크 감독과 더불어 그는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관계 인연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자료를 찾다보니 문뜩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와 교류한 서양인의 기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박천홍이 쓴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다. 각주를 제외하고 740여 쪽에 이르니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쭉 살펴보면 거론된 자료나 소개한 사건이 방대하고 다채로워 읽기 나쁘지 않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일방적 시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조선 해안에 닿은 외국인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뿐만 아니라 우리 조정의 논의 내용을 함께 다룬다. 그래서 조선과 외국의 관점을 비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을 읽다보니 '잘 차려입고 품격이 돋보이는 조선 관리'와 '누더기를 걸친 백성'이 대비되는 대목과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우려해 백인과의 접촉을 감추려는 조정의 행태에 주목하게 된다. 아울러 낯선 외국인이라고 해도 끝까지 인간적 배려를 다하는 우리 조상의 휴머니티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김우영 경기 안양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