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17)]
불안감은 자아 성장의 힘뭉크 역시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내면의 불안감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고등학교의 마지막 방학을 치열하게 보내고 있을 그루를 생각하면서 안쓰러운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아직 겨울방학이 남아 있긴 하지만 진학 및 진로가 어느 정도 결정이 되고 또 졸업과 맞닿아 있어 어찌 보면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의미가 있기에 아마도 고교시절의 사실상 방학으로는 이번 여름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단다. 마지막 방학을 잘 보내고 있느냐는 안부인사는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누구는 국영수탐 모두 조화롭게 공부하여 내신도 좋고 수능 등급도 잘 나와 수시도 정시도 모두 잘 될 것 같은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내 성적은 정말 답이 없네.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어설픈 과목에 매달릴 바에야 시간도 없는데 수학을 포기하고 말까? ’수포자의 길‘을 걷기에는 그동안 많은 투자를 했던 과외와 학원 수강, 그리고 내신을 위해 기를 쓰며 책상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학교수업의 그 순간순간이 아깝지 아니한가. 아니야, 어떻게든 나는 수시에 목숨을 걸어야 해. 그렇다면 두 과목만 해도 되는데 재능이 없는 수학을 끝까지 붙들고 갈 수는 없어. 버려야 얻는 거야.’
혹시 그루가 이런저런 생각에 갇혀 어두운 숲을 걷는 것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는 요즘이다. 게다가 무더위까지 겹치니 차라리 어두운 숲속이 낫지. 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간 목숨마저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과한 상상도 해본다. 10대의 끝자락에서 고3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의 면죄부를 받고는 있지만 그루 또래의 청소년들이 얼마나 힘겹고 불안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보내야 하는지, 나도 청소년기를 그렇게 흔들리며 보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단다.
하지만 불안도 때로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너는 아는지? 나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것들로 인해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은 나를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게 하지. 그런데 내 삶을 뒤흔드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고 깨달으며 뭔가를 시도하게 만든단다.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내면화되면 나는 성큼 성장하게 되고 더 나은 곳으로 걸어가게 되지. 그것이 나의 길이 되고, 때로는 그 길 위에서 또는 그 길이 끝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 따르기도 한단다.
‘불안도 힘이 된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이란다. 그루야, 선생님이 편지를 쓰는 이곳은 네가 있는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라는 곳이야. 유럽 한가운데의 내륙에 위치한 이곳의 더위도 만만치 않아 시원한 곳을 찾아 북대서양을 끼고 있는 노르웨이에 가게 되었단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와 베르겐에서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의 작품을 여러 편 보게 되었는데 그 작품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바로 ‘불안의 힘’이었지. 물론 ‘불안’이라는 감정은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깊이 성찰하다 보면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다준단다. 즉, ‘불안’은 자기 자신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열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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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그루야, 아마 미술책이나 명화를 소개하는 책 등에서 뭉크의 ‘절규(The scream)’라는 작품을 여러 번 보았을 거야. 하늘은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을 섞어 파도가 일렁이듯 굵직한 곡선으로 색칠을 하고 다리 난간에 기댄 사람이 두 손을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며 불안감이 전염되는 느낌이 들지 않니? 그 밖에 ‘죽음의 침상 곁에서(By the deathbed)’, ‘칼 요한의 저녁(Evening on Karl Johan)’, ‘불안(Anxiety)’ 등 그의 많은 그림과 판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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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공허한 듯 또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인물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있어 기묘한 얼굴 표정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지. 다섯 살 때 엄마를 잃고 자신을 돌보아주던 누나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절망감과 불안감, 이러한 뭉크의 근원적인 불안이 낳은 인물들이 바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이란다. 뭉크는 말년에 불안감으로 인한 신경쇠약증상이 있었는데 병이 치료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해. 왜냐하면 이러한 불안증세가 그림을 그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루야, 내면이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해도 청춘이라는 너의 꽃은 참 아름답구나. 이 꽃을 피우기 위해 너는 때로는 좁고 구불거리며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을 거야. 그 길을 걸을 때의 불안과 대적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것이고 그 힘이 지금의 너를 만들었겠지. 마치 뭉크의 불안이 수많은 명작들을 만드는 힘이 된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현재의 불안을 즐기고 극복방법을 개발하거나 그 힘을 모아 너만의 무엇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수능 100일도 채 남지 않은 너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끝이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희망적이니? 이런 것이 희망고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지금 네게 수시로 엄습하는 불안은 뭉크와는 달리 끝이 있는 것이니 목표를 향해 더욱 젖 먹던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거야.
이미지 확대보기2015. 8. 12.
달빛로에서 터기쌤 예경순(그루터기 100년 학교 선생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