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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조리명인 김용중의 인생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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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조리명인 김용중의 인생유전

[한국의 맛]조리명인 김용중 SC컨벤션센터 조리이사
'조리명인 1호'의 자부심에 남다른 책임감


레시피 100권, 상장, 기념사진 사무실 한 가득

"봉사활동하며 인생의 참 맛 느껴요"


"'빨리 빨리' 외치면 맛있는 음식 못 먹어"



▲ 김용중 김포공항SC컨벤션센터 조리이사

김포공항 내 SC컨벤션센터의 김용중(60) 조리이사에게는 ‘조리명인 1호’란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그 영광스런 타이틀 때문에 그는 한식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만 남다른 책임감도 느낀다. 그는 한류 바람을 타고 김치, 비빔밥 등 한식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커지면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요리와 봉사활동을 통해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는 그는 요즘 대단히 흥분해 있다. 자신의 요리인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함초 냉면소스 특허가 곧 나오기 때문이다. 호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 야채깎기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배운 그는 조리명인이 되기까지 요리인생 40년 동안 남모를 눈물도 많이 흘렸다. 무엇보다 가난 탓에 맘껏 공부할 수 없어 늘 배움에 목말랐던 김 명인은 만학도의 길을 걸어 내년이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받게 된다. 요리와 봉사활동을 천직으로 여기며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김용중 명인을 만났다. <편집자 주>

-올해 회갑이셨는데, 회갑연을 안 하고 대신 기부하셨다니 놀랐습니다.


“창피한 일인데요, 뭐. 5년 전 제게 계획이 있었어요. 회갑이 되면 5년 동안 일정 금액을 모아 반은 기부하고 반은 평생 내조하느라 고생한 집사람을 위해 돈을 쓸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올해가 용이 승천한다는 흑룡의 해인데다가 제가 적십자로부터 ‘1000시간 봉사상’을 받아요. 그래서 요즘 나이 60은 펄펄나는 청춘이니 회갑연을 여는 대신에 모두 기부하게 된 것이지요. 집사람이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며 허락을 안 해주다가 며칠 후 동참해줘 너무나 고마웠어요.”

-언제부터 봉사활동을 하셨나요?


“1985년 63시티에 있으면서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강원도 인제에 일어난 수해복구를 계기로 적십자 회원으로 가입해 봉사활동을 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요. 여름이면 수해 현장을 찾아가 복구도 하고, 주로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 등에게 수시로 식사를 대접합니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설날에는 떡국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지요. 얼마 전 시흥에서 가양7단지로 이사를 왔는데, 이곳은 정말 저보다 어려운 이웃이 더 많아요. 요리사로서 요리기술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니 어렵다기보다 봉사의 매력에 빠졌어요. 지금까지 적십자를 통해 봉사활동을 한 시간이 1300시간을 넘어섰는데, 이번에 ‘1000시간 봉사활동상’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 봉사활동 하는 게 어렵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집사람이 이해를 못해 ‘당신은 쉬는 날마다 왜 나가느냐?’고 구박을 했는데, 이젠 집에서 쉬면 ‘오늘은 봉사활동 갈 데가 없느냐?’고 채근을 해요. 참 보람이 있고 봉사활동 자체가 중독성이 강해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해요. 추운 사람은 따뜻하게, 배고픈 사람은 배부르게 해주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어려서 하도 많이 굶고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심정을 잘 알지요.”

-어린 시절의 지독한 가난이 조리의 명인으로 만들었네요.


“결과적으로 가난이 인생의 훈장을 만들어준 셈이지요.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를 중퇴한 후 남의 집 머슴살이를 시작했지만 늘 배가 고팠어요. 어느 날 가난한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길래 버스기사 조수로 일하다가 차만 타면 멀미를 해 그만두고 서울에서 간장 장사를 했어요.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면서 간장을 팔아야 하는데, 말주변이 모자라 이번에는 간장 장사를 그만두고 다방 종업원으로 취직했어요. 일한 만큼 돈도 벌고 숙식도 해결해주니 그만한 곳도 없었어요. 그런데 다방 주인이 성실하게 일하는 저를 보고 ‘호텔에 들어가 일해보면 어떻겠느냐’며 제안을 했어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천직인 요리와 인연을 맺게 됐으니 그 제안이 제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지요.”

-호텔에 입사한 후 일이 술술 풀렸습니까?


“충무로 라이온스호텔에 입사해 식당 한 켠에서 잠을 자면서 4년 동안 주방에서 하는 일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며 일을 배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요리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군대에 가서 장교식당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하고 제대를 한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때서야 제가 가진 게 요리기술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이온스 호텔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 한복판의 프라자 호텔에 입사했어요.”

-프라자 호텔 생활은 어땠습니까?


“프라자 호텔이 일본 프린스 호텔의 체인이었기 때문에 각 섹션마다 일본인 주방장들이 주방을 이끌었어요. 그런데 어찌나 엄하게 굴던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나 그 엄격함 속에서 요리사로서의 ‘장인 정신’을 배웠어요.”

프라자 호텔에서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배운 그는 비행기 한 번 타고 싶어 이라크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16개국 감독관들의 식사를 도맡아 담당하며 그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했다. 이후 63시티와 인천송도비치호텔을 거쳐 현재의 SC컨벤션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40년 요리사 생활을 하면서 양식과 한식을 다해보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요?


“프라자 호텔에서 일본인 주방장에게서 프랑스 요리를 배웠고, 63시티에 있으면서 프랑스 빼르디 호텔로 3개월 동안 연수를 갔다왔어요. 양식은 근사해보이지만 사실 좀 단조롭고, 한식은 간단해보이지만 깊은 맛이 있고 복잡해요. 양식은 한 끼의 식사로는 좋아도 두 끼를 계속 먹으면 느끼하기 때문에 질리게 되요. 프랑스 빼르디 호텔에서 연수할 때 프랑스는 음식문화 선진국으로 칭송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식만 훌륭한 게 아니라 국민들의 정신자세가 선진국이 될 만한 틀이 되어 있었거든요. 무얼 하나 버리지 않는 절약정신과 느긋하게 좋은 음식을 기다릴 줄 아는 정신자세가 너무 좋았어요. 한국인처럼 식당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면 절대로 맛있는 음식은 먹을 수 없어요.”

-곧 함초 냉면소스 특허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함초 냉면소스를 개발해 변리사를 통해 특허를 출원한 상태입니다. 변리사로부터 곧 특허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제가 특허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제 요리인생의 결정체라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이익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음식을 대접하자는 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요즘 돈은 있는데 기술이 없어 문을 닫는 식당이 많아요. 그런 식당에 제 노하우를 전수시켜 활성화 시킨 다음 훗날 조리명인 1호라는 상호가 들어간 함초 냉면집을 하고 싶습니다.”

-요리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제겐 한 가지 습관이 있어요. 손님들이 다가고 난 후 요리가 담겼던 메인접시를 보는 거예요. 손님이 음식을 남겼는지, 깨끗이 먹었는지를 관찰하고 제 요리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는 것이지요. 접시가 깨끗이 비워졌을 때 그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특히 손님이 제 요리가 너무 멋있고 맛있게 보여 먹기 힘들다고 할 때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주방에 딸린 사무실에 상장, 기념사진, 레시피가 담긴 상자가 가득한데


“프라자호텔과 63시티를 거쳐 대한생명 계열사인 인천송도비치호텔에 조리책임자로 갔는데, 노조가 턱 버티고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현장일이 최우선인데 노조와 부딪혀 일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솔선수범했지요.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일을 하니까 노조원들도 서서히 따라와요. 그때부터 요리 레시피가 가득한 노트를 1년에 두 권씩 만들었어요. 송도비치호텔에서 12상자, SC컨벤션센터로 옮겨와서 8상자, 지금은 20개 상자에 100권의 레시피가 가득 들어있어요. 레시피는 평생 쌓아놓은 제 아들딸 같은 자산이에요. 돈보다도 더 소중해요.”


-후배들에게 레시피를 다 공개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공개하지요. 전에는 선배들에게 어깨너머로 어렵게 배웠던 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저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모든 걸 공개해요.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는 완성한 요리 사진까지 첨부해서 후배들에게 전해줘요.”


-조리명인에게 요리는 무엇입니까?



“사랑이고 열정입니다. 요리는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야 하고, 입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하고, 귀로도 바삭바삭 먹는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충 요리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사랑과 열정을 쏟아붓고 최대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자주 강의를 하십니까?



“저는 강사이자 학생이에요. 공부에 대한 한(恨)이 남아 있어 조리사관학교에 입학에 공부를 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배우는 동시에 저도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주 특강을 나가고 있지요. 후배들에게 요리사로서 갖춰야 할 자세, 인생 이야기, 조리명인이 되기 위한 노력 등에 대해 강의합니다.”


김용중 명인은 조리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전공분야 경력 25년 이상, 장관상, 봉사활동, 기부금, 각종 요리대회 출전 등 다양하고 많은 공적사항과 경험을 쌓는 등 갖출 것은 다 갖춰라고 주문한다. .


-조리명인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1호 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조리명인 1호이니까 남들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름 자부심이 있어요. 그런데 조리명인 1호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게 요리도 1등 해야 하고, 그에 걸맞는 책임도 져야 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하고 쉽지는 않아요.”


-요리인생 40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후배들이 저 보고 ‘독재자’(?)라고 해요. 모를 심을 때 못줄을 당기듯이 제가 일을 빡빡하게 시키고 빈틈을 안 주거든요. 참새도 부지런해야 굶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실력이 부족하면 대신 땀으로 보답하라고 강조해요. 저도 그렇게 살아왔어요. 학벌이 없으니까 부족한 부분은 열심히 몸으로 때웠어요.”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



※집에서 따라해 보는 김용중 명인의 비법 2제(題)



♠ 건포도 잣을 곁들인 쇠고기 안심





■ 김용중 명인의 건포도 잣을 곁들인 쇠고기 안심 레시피


안심 150g, 건포도 10g, 잣 10g, 파슬리 0.1g, 토마토 소스 30㏄, 마늘 0.2g, 소금 약간, 후추 약간(이상 주재료), 건포도 10g, 잣 10g, 엔다이브 3조각, 올리브오일 10㏄, 마늘 으깬 것 0.5g, 아스파라거스 약간


■ 건포도 잣을 곁들이 쇠고기 안심 조리법



1. 안심은 비닐로 싸서 망치로 납작하게 한다. 프라이팬에 잣을 넣고 센 불에서 색깔이 나도록 익힌다.

2. 쇠고기에 잣, 건포도, 마늘 등을 잘게 썬 파슬리와 배치한 후 돌돌 말아서 나무꼬치로 고정시킨다.

3. 프라이팬에 약간의 올리브오일을 붓고 고기말이를 노르스름하게 굽는다. 절반쯤 익혔을 때 고기를 끄집어내고 토마토 소스를 부어 끓인다.

4. 엔다이브를 데쳐서 잣, 건포도, 마늘과 함께 볶는다. 접시에 소스를 깔고 잣, 건포도, 마늘 볶음을 놓고 고기를 얹는다. 실파와 아스파라거스로 장식한다.



♠ 오렌지를 곁들인 훈제연어말이





■ 김용중 명인의 오렌지를 곁들인 훈제연어말이 레시피


훈제연어 60g, 새우 2마리, 날치알 5g, 오렌지 1/5조각, 엔다이브 10g, 올리브 1g, 허브 약간, 양념된 무 10g, 레몬 10g, 무순 10g


■ 오렌지를 곁들인 훈제연어말이 조리법



1. 훈제연어를 적당하게 잘라서 양념된 무를 놓고 무순을 넣어 말아서 준비한다.

2. 오렌지와 올리브, 그리고 엔다이브와 무를 준비한다.

3. 새우를 적당히 썰어서 야채와 오렌지 소스에 무쳐서 준비한다.

4. 접시에 매쉬드포테이토를 짜주고 위에 엔다이브, 새우무침 위에 허브를 올려놓고 옆에 오렌지와 올리브, 훈제연어말이를 놓고 그 위에 호스레디쉬 크림을 짜주고 날치알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