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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여성독립운동가에 '생명의 魂' 불어넣기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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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여성독립운동가에 '생명의 魂' 불어넣기 13년

[스페셜]'민족시인'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詩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재정난에 3권내고 중단 위기


한민족 정신은 '독립정신' 자료·후손 없다고 외면 안 돼


국어대사전 일제잔재 청산 우리말 '말글살이' 운동 펼쳐


생활 속 일본말 찌꺼기 완전 몰아내야 진정한 독립국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된 지 68년이 지난 지금도 독립운동을 펼치는 한 여성이 있다. 시인이자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의 이윤옥 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겉으로는 나라를 찾은 모양새이지만 아직도 우리 일상생활 속에 남아 있는 각종 일본 찌꺼기를 보면서 이를 청산하기 위해 그는 오늘도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이 시인은 한 손으로는 조국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항일 여성독립운동가의 혼과 얼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이 활동했던 중국땅과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찾고 후손을 인터뷰해 시를 지어 독립운동가들에게 바치고 있다. 또 다른 한 손으로는 국립국어원이 10년 간 100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 속에 남아 있는 일본어 찌꺼기를 조사해 그 유래를 밝혀주고 가능한 한 우리말로 순화하는 말글살이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다. 주변에서는 그를 가리켜 ‘민족시인’이니 ‘독립운동가’니 하고 치켜세우지만 정작 그가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잔치가 아니라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서간도에 들꽃 피다’(얼레빗)를 펴내는 데 필요한 출판 비용이다. 발로 뛰며 자료조사에 들어간 비용을 도와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집 1000권이라도 지속해서 찍을 수 있는 ‘작은 소망’ 조차 말잔치로 끝날 뿐 필요한 도움은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 손발이 다 닳을 때까지 하긴 해야겠지만….”이라며 속이 상하고 답답해하는 이윤옥 시인을 만났다. <편집자 주>

-최근 항일(抗日)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화전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열었습니다. 시화전을 연 소감은 어떻습니까?

“언론이 조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편으론 고무되었지만, 전시회가 끝난 뒤 풀어야할 과제(전시장 대관료, 시화 제작에 들어간 비용 등)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해요. 지난해 광복절에는 안국역 쉼터에서 판넬 전시회를 했는데 그때에 견주어 이번에는 인사동의 전시장을 정식 대관하고 이무성 화백이 그린 그림을 족자로 만들어 벽에 걸었으니 큰 발전을 한 셈이지요.”

한국문화사랑협회가 주관한 이번 시화전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영어, 일본어, 한문으로 된 번역본이 준비되어 전시장을 찾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수많은 잔 다르크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영어번역은 미국 보스턴에서 한국문화 홍보프로그램 ‘대한민국문화알리미’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박혜성 박사와 미래의 주역인 교포 자녀들(렉싱턴 고등학고, 브룩스 고등학교 외 학생들) 그리고 뉴저지 드류대학(Drew University)의 이광유 유학생과 고려대 대학원생인 최서영 씨가 도와주었고요. 일본어 번역은 교토 재일한국문인협회 외국인 정회원 1호로 인정받을 만큼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조예가 깊은 중견시인 우에노미야코 씨가 맡아주었습니다. 또한 도다이쿠코 작가가 교정에 참여 해주었으며 한시번역은 남원고전문화회 소병호 한학장(漢學長)이 맡아 손수 한자 한자 시를 쓰고 해설을 붙여주었는가 하면, 큐레이터 한명 없이 회원들이 직접 작품을 벽에 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요. 사실 다른 미술 전시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그 흔한 전시작품 도록은커녕 전단하나 초대장 하나 변변히 만들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개막전에 지불해야 할 대관료도 다 내지 못한 채 마련된 전시회였어요. 그래도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고 여러 곳에서 이 의미를 알고 찾아 주신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납니다. 특히 개막식 때 연로하신 애국지사들께서 자리를 해주셔서 든든했으며 멀리 광주대학에 계시는 김순흥 교수를 비롯하여 제가 안중근 어머니 심정이 되어 지은 시에 손수 작곡해서 노래해준 김동규-김구미(듀오아임) 팝페라부부의 공연 등 시화전 개막식에 힘을 실어 준 점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시화전을 준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경비 마련이 가장 어려웠어요. 종로구청에서 경비의 일부를 지원 받았지만 전시회 비용에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칭찬은 하면서도 선뜻 성금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구요. 국가보훈처라든가 광복회 등에 초대장을 보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지요. 그래도 방송을 보았다며 허리가 굽은 여든 살의 할머니나 초등학생 손을 잡은 평범한 시민들이 와서 눈물겨운 성금 한두 푼을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 이윤옥 시인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 226명의 삶을 조명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화전을 구상 한 것이다.

“제가 큰 욕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시화전에 그림을 그려준 이무성 화백에게 최소한의 예도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제 뜻에 동참했다고는 하지만 족자제작비나 그림물감 값도 못드리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화전의 바탕이 되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20명씩 조명하고 있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역시 이번에 3권 발간을 해놓고 인쇄비도 못내고 있는 형편입니다.”

-책을 직접 찍는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기증본만으로도 500부나 나간다면서요?

“처음 원고를 써서 출판사를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어 직접 찍게 되었어요. 책이 나오면 언론사나 지인들 학교나 심지어는 의식이 있다는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일일이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책값이 1만원이니까 1권 값만 보내와도 다음 책을 찍을 인쇄비는 모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책값도 그렇지만 여성애국지사들이 국내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하와이, 사할린 등 여러 곳에서 활약했지만 상해, 광주, 남경, 유주, 기강, 중경 같은 중국 땅만 찾아다니기도 벅찬 실정이라 하와이나 사할린 등지에는 경비 문제로 가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학 강의 첫날마다 학생들에게 빈 종이를 나눠주고 퀴즈 아닌 퀴즈를 냅니다. ‘유관순을 제외한 여성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적어라’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20년째 학생들이 백이면 백, 백지로 제출해요. 광복 후에만 해도 ‘북 동풍신, 남 유관순’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한 사람은 북쪽에서, 한 사람은 남쪽에서 독립운동을 했어요. 그러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연구는 대단해 단행본 17권, 논문 150여 편에 이르지만, 유관순 열사와 똑 같은 나이인 17세에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부모님을 여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죽어간 동풍신 애국지사는 논문 한 편, 기사 한 토막은커녕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일본어를 전공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지켜본 제가 여성독립운동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요.”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13년 3‧1절 훈‧포장 수여 대상자를 포함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모두 1만3393명. 그 중 여성은 전체의 1.69%인 226명뿐이다. 최근 5년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2216명 중에서도 여성은 32명(1.44%)에 불과하다. 당시 여성들도 남자들 못지않게 광복군·의병 활동에 가담했는가 하면 독립자금 모금 운반을 비롯하여 첩보 수집 등 남성들과 거의 같은 수준의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윤옥 시인은 이러한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나마 기록이 있거나 후손이라도 남아 있는 분들은 유공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수원만세운동을 이끈 기생출신 김향화 같은 독립투사는 2009년에야 그 행적이 인정되었지요. 이처럼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진주, 해주, 안성, 통영의 기생들은 누가 기억해줍니까? 저라도 서도홍, 김향화, 이금희, 손산홍, 신정희, 오산호주, 손유색, 이추월, 김연옥, 김명월, 한연향, 정월색, 이산옥, 김명화, 소매홍, 박능파, 윤연화, 김앵무, 이일점홍, 홍죽엽, 김금홍, 정가패, 박화연, 박연심, 황채옥, 문롱월, 박금란, 오채경, 김향란, 임산월, 최진옥, 박도화 등 3‧1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수원 의기(義妓) 33명의 이름을 불러주고 영혼을 위로해주어야지요.”

-언제부터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작업을 하셨는지요?

“일본어를 전공한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일본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 때문에 같은 한국인이라도 일본 역사왜곡에 더 민감한데다가 일본사를 공부하면서 왜곡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어요. 그러다가 2000년부터 친일문제를 다루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여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10여 년간 일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항일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지요. 공부를 해가면서 일반인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단행본 한 권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벌써 13년 전 일입니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인 고은의 ‘만인보’처럼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모아 놓은 책 한 권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이들을 과연 어떤 형식으로 엮을까 고심하기 시작했어요. 평전 형식으로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유관순과 같은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동풍신 애국지사의 경우 종이 반장 정도 밖에 자료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줄곧 고민하던 중에 평소 존경하던 고은 시인의 만인보(萬人普)를 떠올렸습니다. 1986년부터 만인보를 꾸준히 읽어오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한 편의 시로 정리해보는 것도 의의 있는 일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어요. 고은 시인의 시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삶을 시로 쓴 기록이잖아요? 고은 시인의 만인보 가운데 ‘홍래란 놈이라든지’, ‘목수 동렬이’(5권 22쪽, 30쪽)같은 시를 읽으며 그렇다면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다루되 이분들께 드리는 헌시를 쓰고 그 일생을 적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중국 현지나 국내의 경우 윤희순 의병장의 시댁이 있는 춘천으로 찾아가 서울에서 시집와 살던 마을과 홍천강이 바라다 보이는 관천리 무덤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구하는지요?

“신문에 1단 기사라도 나면 그걸 토대로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작년 8‧15 광복절 처럼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출신 7명 애국지사 기사 같은 경우에는 직접 달려가서 취재를 하기도 하고 더러는 국가보훈처에 후손들 연락처를 받아 연락을 취해보지만 거의 잘 응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후손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먼저 국가의 보훈정책이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당시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들은 집도 절도 다 팔아서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는데 광복이 되자 결국 자신들에게 돌아온 건 교육도 못 받고 매일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는 거예요. 애국지사의 후손이라는 당당한 권리를 못 찾고 남은 건 고생 밖에 없으니 냉소적일 수 밖에요.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조선시대 유교 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추적하다보니까 그분들 혼자서 독립운동을 한 게 아니라 집안사람 모두가 독립운동 한 걸 알 수 있어요. 이병희 애국지사의 아버지는 ‘지금은 공부보다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가르쳤다고 해요. 이병희 애국지사의 할아버지는 동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이끈 이원식 독립지사이고, 아버지는 1925년 9월 대구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으로 활약한 이경식 애국지사지요. 또한 춘천의 윤희순 의병장도 시아버지(유홍석), 남편(유제원‧팔도창의대장 유인석의 조카)이 모두 의병장 집안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생존 애국지사인 경기도 용인 출신의 오희옥 애국지사 집안도 그렇습니다. 오 여사의 아버지는 처음에 성묵(性默)이란 이름을 썼으나 조선의 광복을 바란다는 뜻에서 이름을 광선(光鮮)으로 바꿀 정도로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광복을 위해 뛰었고 어머니 정현숙 여사와 언니 오희영도 중국 유주(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들어가 일본군의 정보수집, 한국인 사병에 대한 초모와 연극‧무용 등을 통한 활동을 했으며 1940년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자 제3지대에 간부로 활약한 분이지요.”

이처럼 항일여성독립운동가의 집안은 대부분 가족 전체가 팔을 걷어붙이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신했다. 한결같이 올곧은 집안의 후손으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선 조국을 위해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 반면에 친일파의 경우는 일단 뿌리가 없는 게 특징이다. 설사 당시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해도 뿌리가 없는 가문은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대개 친일에 나섰고, 뿌리가 있는 가문은 배웠든, 못 배웠든 상관없이 저항의 몸부림을 쳤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자료가 거의 소실되었을 텐데요….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워요. 대표적인 예를 들면 북에는 동풍신 애국지사와 남에는 유관순 애국지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유관순 열사가 부각되면서 동풍신 열사는 단지 북쪽에서 활동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부가 외면했어요. 이 분들은 남북이 분단 되기 이전의 사람인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요. 동풍신 열사의 자료는 전부 합해도 A4 한 장 반 밖에 되지 않아요. 지금 서대문 형무소 자리에 있는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위패 봉안관에 동풍신 애국지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만세운동을 부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어간 두 순국소녀는 오늘날 천양지차가 날 만큼 한국인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른 여성애국지사도 동풍신 애국지사 같이 잊힌 존재지요.”

국가보훈처 등 정부 당국에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부 당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독립운동가 발굴작업을 펼쳐야 해요.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굴 속도가 느리고 그 실적이 거의 미미하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유공자로 인정한 분들을 널리 알리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보훈처 파일 속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분들의 생을 이해하고 지금 우리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부족해요. 사실 제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형식만 시집이지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역사책에 가깝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화전도 그렇고 이러한 일을 개인에게만 맡기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제 시집의 경우 출판비용이 어려워 한국출판물산업진흥원의 1인 출판사지원 프로그램을 노크해보았으나 ‘시집거절’이라 신청도 못해보았고, 국가보훈처 역시 문헌지원프로그램에서 ‘단순 시집’으로 분류한 탓인지 심사대상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을 보지 않고 형식이나 껍데기를 보고 심사를 하고 있는 이들 기관의 출판지원 시스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 지원 조건도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물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 예산을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생색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일들에는 눈을 감는 행정은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독립운동과 관련된 저서는 시집이든, 평전이든 시장성이 떨어진다. 이런 점을 감안해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윤옥 시인을 보면 지금도 한창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남들은 민족시인이다, 신독립군이다고 하는데 과찬의 말씀입니다. 한국문화사랑협회 회원들이 저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지요. 지방의 모 대학 교수는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시집을 수업교재로 사용하고 있어 그나마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그런 분이 계시니 조국을 되찾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윤옥 소장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한편 우리말과 문화에 남겨진 일본 찌꺼기를 청산하는 작업도 하고 계신데….

“일본어를 전공한 덕분에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 가운데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을 쉽게 알아보지요.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우리말과 글의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너무나 많은 일본어 찌꺼기가 있다는 사실이에요. 한 나라의 말과 글은 국민을 이끌어가는 혼(魂)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표준국어대사전에 일본어 찌꺼기가 수두룩하니 한심한 일이지요. 우리가 요즘 자주 사용하는 달인, 택배, 노견, 국민의례, 정로환, 서정쇄신 등은 모두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이에요.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그 어디에도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이 없어요.”

시인이자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인 이 소장은 틈만 나면 국립국어원에 어휘의 유래에 대해 질의를 한다. 그러나 번번이 내용을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와 그는 작심하고 『사쿠라 훈민정음』을 펴내며 신랄하게 비판을 하기도 했다.

“서정쇄신(庶政刷新)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국어대사전은 ‘서정쇄신을 여러 가지 정치상의 폐단을 말끔히 없애고 새롭게 함’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한 말이에요. 그럼에도 국어대사전에는 그러한 설명이 전혀 없이 사용되고 있어요. 또 배탈설사약으로 유명한 정로환(正露丸)도 일본이 1905년 러시아를 정벌하러 갈 때, 러시아 풍토병(배탈설사병) 때문에 병력이 약해지는 상황을 이겨내고자 일본에서 만든 약이에요. 크레오소트를 주성분으로 해서 일본군에 먹이니까 배탈설사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해서 처음엔 ‘征露丸’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그런데 러시아가 이를 괘씸히 여기고 항의하자 정복하다(征) 대신에 바르다(正)로 바꾼 것이지요. 우리는 그런 유래도 모른 채 동성제약이 배탈설사약으로 정로환(正露丸)을 수입해 팔았어요. 배탈설사에 잘 듣는 약이라는 의미에서 우리는 정로환(正露丸) 대신에 정일환(征日丸)이라는 이름으로 썼다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이윤옥 소장도 국민의 입에 익은 말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의 유래를 안다면 두 번 쓸 걸 한 번 쓰고, 한 번 쓸 걸 안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런 비유를 들고 싶어요. 우리가 밥을 먹는 도중 벌레가 나오면 그 밥을 계속 먹으려고 하지 않잖아요? 벌레가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밥을 먹는 내내 기분이 언짢아서 숟가락을 놓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음흉함이 들어 있다면 쓸까 말까 한번쯤 망설이게 되고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용하지 않게 되겠지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이런 것이에요. 말의 정확한 유래도 밝히지 않고 일본사전을 번역한 표준국어대사전이라면 마땅히 불태워야 하지 않을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일본어 찌꺼기는 무수히 많다고 한다. 콩꽃은 총상화서(總狀花序)로, 벼꽃은 수상화서(穗狀花序)로, 토란꽃은 육수화서(肉穗花序)로 핀다고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윤옥 소장의 설명을 들으니 모두 일본사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탓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가 되었던 것이다. 어휘 형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 시각으로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로 그는 이날 인터뷰를 끝냈다.

/노정용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