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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 "아베는 일본 재도약 이끈 정치인"…추모 열기 이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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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 "아베는 일본 재도약 이끈 정치인"…추모 열기 이어가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이미지 확대보기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가 피격으로 사망후 일본 언론들은 아베 전 총리가 세계에 '일본이 돌아왔다'를 보여주며 일본의 재도약을 이끈 정치 지도자라고 아베의 업적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8일(현지시간) 연설 도중 피격으로 사망한 후, 일본에서는 그의 사망이 일본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면서도 아베 전 총리의 업적을 평가했다. 일본의 한 매체는 묘한 우연의 일치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부친인 아베 신타로 외무상과 같은 나이인 67세로 별세했다고 전하며, 잃어버린 30년으로 평가받으며 장기침체에 돌입한 일본을 부흥시킨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아베는 전후 일본 최장수 총리로서 기록을 세웠고, 헌법 체계 하에서 총리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그는 또한 능숙한 정치 운영을 통해 7년 8개월 동안 재임하면서 두 번의 임기동안 일본 정치를 변화시켰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들이 해외에서 다시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원한다"며 '국제 사회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나라'를 추구했다.

아베의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투옥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병에 걸려 죽기 전에 총리가 될 유력한 경쟁자였다. 이러한 가족사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여전히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고 38세의 나이로 첫 선거에서 승리했다.

아베 전 총리는 총리직에서 처음으로 물러난 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며 자신의 지역구 주변을 돌며 선거운동을 벌였다. 자민당이 과반수를 잃은 뒤 2011년 3월 지진과 쓰나미 이후 일본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을 야당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권력 부족을 한탄했다.

총리 취임 후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의 주력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3개의 화살'로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12년 12월 부임 직후 미국 연설에서 "일본이 돌아왔다"고 선언했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높였다.

특히, 그는 일본의 외교와 안보 정책의 진로를 바꾸기 위해 확고한 정치적 지지를 활용했다. 그는 2015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 법안을 통과시켜 국방력 강화를 꾀했다.
외교정책 측면에서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긴밀한 개인적 관계를 맺어 일본의 외교적 안정을 가져왔다. 트럼프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던 외국 정상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2016년 아베가 제안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개념은 일본을 세계의 많은 다른 나라들보다 한 발 앞서게 했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확장을 염두에 두고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칭했고, 유럽 주요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아베는 2020년 총리직에서 다시 물러난 후에도 정치적 행보를 이어나갔다. 그는 여전히 자민당 내 정책 논의에 적극적이어서, 주저 없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베는 헌법 개정과 국방비 증액을 주장했고,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이러한 목표를 실행해 나갔다.

아베 총리는 이달 들어 언론 여론조사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파가 득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거리 구석에서 목이 약간 쉬면서 "선거가 끝나면 더 바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할아버지, 전 총리 기시 노부스케처럼, 그는 이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실제로 그가 총격을 받고 사망한 나라시로의 여행은 그의 당 소속 당원을 지원하기 위한 막판 일정 변경의 결과였다. 그는 "친애하는 계파원이 힘들다는 소식을 듣고 도우러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ngy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