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기업 소유자 신고 규정이 주마다 다르고, 뒤죽박죽 상태였다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지적했다. 델라웨어주에 등록된 기업은 소유주에 관한 사항을 거의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기업들은 다수의 모기업과 자회사 등을 설립해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해 놓고 있다. 또 탈세와 절세 등을 목적으로 역외 유령 회사를 두고 있는 기업도 부지기수이다. 이번 조처가 시행되면 미국 기업의 투명성과 관련해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올 수 있다고 AP 통신이 재무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정부에 기업 등록을 할 때 기업 소유자, 창업자, 지배 구조 등을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재무부는 기업 소유주의 이름, 나이, 주소, 운전 면허증, 여권, 사진 등을 제출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미자영업연맹(NFIB)은 지난 2월 발표한 성명에서 사생활 보호 침해 우려 등을 이유로 정부의 조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나치게 소기업을 겨냥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게리 칼만 미국 사무소장은 WSJ에 다른 나라들도 이와 유사한 조처를 하도록 미국이 선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불법 자금 유입 차단 등을 위해 3200만 개가량의 기업 소유주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이라고 AP 통신이 전했다. 미국 사법 당국과 정보 당국은 특히 러시아의 신흥 재벌과 크렘린궁 관계자들이 미국 내에서 실제로 소유한 수십억 달러의 자금 추적을 하고 있어 재무부의 이번 조처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WSJ이 지적했다. 러시아의 신흥 부호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재를 피해 미국과 전 세계에 소유 자산과 자금 등을 은닉하고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규정은 범죄자, 범죄 조직 등 불법 행위자들이 금융 시스템을 이용해 자금 세탁을 하거나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어렵게 했다”고 강조했다. 옐런 장관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테러리스트, 글로벌 위험인물 등이 복잡한 법적 구조를 틈타 자금을 세탁하거나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를 하고, 다른 범죄를 저질러 미국인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뛰어난 회계사와 법률 전문가를 동원해 조세회피처 등에 유령 회사들을 세우고 금전 거래를 마구 섞는 식으로 자신들의 자산을 해외 곳곳에 숨겼다. 이들은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감독이 느슨한 역외 피난처에 유령 회사를 세우면서 실소유주는 따로 둔다. 그 이후 이 회사가 또 다른 유령 회사들을 소유하게 해 복잡한 지배 구조로 실소유주가 누군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유럽연합(EU)은 2018년에 권역 소속 기업이면 지배 구조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규제를 도입했으나 아직도 17개 국가에서 이런 조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자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당국에 실소유주를 밝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아직 이를 위한 예산 6억 3000만 달러를 집행하지 않았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