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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TSMC 생산기지 다변화에 대만 반도체 패권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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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TSMC 생산기지 다변화에 대만 반도체 패권 '흔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오는 2024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완성도. 사진=TSMC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오는 2024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완성도. 사진=TSMC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로 인해 유럽이 직면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계기로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을 고수하며 대만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대만에 대한 무력 도발 가능성을 최근 들어 시사하고 나서면서 양안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진 상태라서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양안 갈등의 고조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사실상 지배해온 대만의 위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대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중국과 대만의 갈등 격화로 높아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자국에 있는 생산기지를 미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로 옮기는 공급망 다변화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TSMC의 이 같은 행보는 기업 입장에서는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TSMC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방패 삼아 국익 유지와 확대를 도모해왔던 대만의 국가전략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만의 속앓이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TSMC ‘생산기지 다변화’ 행보로 대만 반도체 패권 상실 우려 확산


홍콩의 유력 영문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TSMC가 미국과 일본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는 행보에 나선 가운데 대만의 글로벌 반도체 패권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대만 정치권에서 커지고 있다고 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TSMC가 일개 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대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약 90%를 책임지고 있어 대만 입장에서는 국익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인 전략 자산에 속하기 때문이다.

SCMP는 “TSMC의 생산기지 다변화로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인 위상을 방패 삼아 국익을 확장해온 대만의 이른바 ‘반도체 방패 전략’이 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SCMP에 따르면 이 과정에는 이율배반적인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보 측면에서 미국은 중국의 무력 도발이 있을 경우 민주주의 체제의 수호를 위해, 아시아 지역의 안보질서를 보호하기 위해 대만 방어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 분야에서 핵심적인 글로벌 공급망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도발을 막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미국-대만의 이율배반적 관계…안보 측면에선 동맹국, 경제 측면에선 경쟁국


반면 TSMC의 탈중국화 행보는 미국이 추동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대만, 미국, 한국, 일본 사이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의 결성을 주도해온 나라가 미국이란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동안 독자적으로 걸어온 대만을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로 끌어들임으로써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행사해온 절대적인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칩4의 결성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속셈이라는 것.

실제로 SCMP에 따르면 대만 제1야당인 국민당 소속의 리구이민 의원은 지난달 열린 입법원(국회) 회의에서 TSMC의 공급망 다변화가 중국의 국익에 미칠 영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TSMC는 그동안 대만 입장에서 ‘반도체 방패’로, 대만의 국익을 담보하는 주요한 축으로 인식돼 왔다”면서 “대만에 몰려 있는 TSMC의 생산기지를 대부분 다른 나라로 옮기게 된다면 어떤 불행한 사태가 닥칠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리 의원은 “TSMC는 공장만 외국으로 옮겨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 공장에 대만 엔지니어들을 파견할 계획이기 때문에 인재 유출 및 인재 공백에 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TSMC의 생산기지가 다른 나라도 대거 이동할 경우 대만의 반도체 패권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우려인 셈이다.

◇대만 정부 “생산기지 외국으로 이전하더라도 핵심기술은 대만서 지속 개발”

그러나 대만 정부는 TSMC의 생산기지 다변화로 대만 반도체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TSMC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대한 대만 정치권의 우려에 대해 왕메이화 경제부 장관은 “TSMC의 전체적인 생산과정은 설계에서 제조공정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게 구성돼 있어 생산기지를 다른 나라로 옮긴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왕 장관은 “TSMC가 생산기지를 미국이나 일본 등으로 이전하더라도 TSMC가 자랑하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은 이곳 대만에서 개발이 계속 이뤄질 예정이며, 대만 정부도 이를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