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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뱅크런 급한 불은 껐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전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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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뱅크런 급한 불은 껐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전이 우려

은행들 중소기업 대출 꺼려…벤처 30% 자금바닥 불보듯
개인도 소비줄여 침체 촉발…세계 경제성장 심각한 위협

실리콘밸리은행을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은행. 미국의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리면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실리콘밸리은행을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은행. 미국의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리면서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의 퍼스트시티즌스은행이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인수하면서 미국 금융권에서 모처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혼란 사태가 아직 진정되지 않았고, 중소 은행 예금 인출 사태가 계속되면서 신용 경색이 악화하고, 이에 따라 조기에 경기 침체에 빠지는 사이클이 이미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8일(현지 시간) “미국의 은행들이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꺼려 이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금융 혼란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 불안으로 확산해 세계 경제의 침체 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폭스비즈니스뉴스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면서 “경제 전문가들은 금융 혼란 사태로 인해 은행들이 향후 몇 개월 동안 대출 심사를 극도로 강화하거나 아예 대출을 제한해 신용 경색 사태가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SVB 붕괴로 실리콘밸리 전역에 걸쳐 불안과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벤처캐피털 회사 NFX가 최근 스타트업 창업자 870명을 대상으로 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SVB의 붕괴가 이미 어려운 자금 조달 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또 22%는 올해 어떤 기금도 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3500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투자회사 테크스타스의 마엘레 가벳 최고경영자(CEO)는 “여름에 스타트업이 문을 닫아야 할지, 매각해야 할지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라고 했고, 12개의 벤처캐피털 펀드에 지분을 가진 투자자 비잔 살레히자데는 지금은 벤처 자금을 조달하기에 최악의 시기이고, 우리가 지원한 회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향후 6개월 이내에 자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 경색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제때 빌릴 수 없어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뜻한다.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하면 기업들은 자금 부족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지고 무역업체들도 수출입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쇄 금리 인상으로 인해 그동안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SVB 사태가 발생했다. 예금주들은 지역 은행이나 중소 은행에 예치된 자금을 대량으로 인출해 대형 은행이나 머니마켓으로 옮기고 있다.

이언 셰퍼드슨 매크로 이코노믹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향후 몇 개월 동안 은행들이 대출심사를 대폭 강화할 것이고 이로 인한 신용 경색이 경제 성장에 치명상을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 혼란 사태 이전에는 미국이 경기 침체를 피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이제 그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가벼운 침체가 아니라 심각한 침체가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해 경제계의 주목을 받았었다.

LPL 파이낸셜의 제프리 로우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을 보면 신용 경색으로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인상되는 것과 같은 영향을 경제에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도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금융 조건 압박이 금리 압박과 같은 효과를 내고, 이것은 금리 인상 또는 그 이상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스 데긴도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신용 기준이 더 빡빡해질 것이고, 이는 경제에 저성장과 저인플레이션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이 가계와 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면 개인은 대형 내구재 등의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신규 투자를 하기 어렵게 되고, 고용을 줄인다. 폭스비즈니스는 “신용 경색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내려갈 것이나, 이는 경기 침체를 촉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면적인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 분야 약화와 신용 경색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 성장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씨티그룹은 은행 건전성 우려올해 세계 성장률이 1.5∼2.2%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7일 올해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세계은행(WB)은 이날 전 세계 평균 경제 성장률이 오는 2030년까지 연 2.2%로 떨어져 30년 만에 최저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더밋 길 W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