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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시장·기술로 못 막는다”… 리처드 쿠, 中의 ‘日 장기 침체’ 진입 강력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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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시장·기술로 못 막는다”… 리처드 쿠, 中의 ‘日 장기 침체’ 진입 강력 경고

노무라 연구소 학자, “1.7%대 낮은 국채 금리는 경제 주체들이 빚만 갚고 있다는 증거”
1997년 日과 판박이… 정부가 민간 저축 흡수해 직접 지출하는 ‘시간과의 싸움’ 나서야
“수출 통한 탈출구는 서방 제재 장벽 부를 것”… 돈 찍어내기 식 통화 정책은 해결책 아닌 착시 효과
중국 베이징 중심업무지구(CBD)의 사무실 건물들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사람들이 서 있다, 2025년 11월 12일.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베이징 중심업무지구(CBD)의 사무실 건물들을 바라보는 전망대에 사람들이 서 있다, 2025년 11월 12일. 사진=로이터
1990년대 일본의 자산 거품 붕괴와 장기 불황을 설득력 있게 규명한 ‘대차대조표 불황(재무구조 악화로 인한 침체)’ 이론의 거두 리처드 쿠(Richard Koo) 노무라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가 오늘날 중국 경제를 향해 매서운 경고등을 켰다.

중국이 아무리 거대한 내수 시장과 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더라도, 민간 경제 주체들이 소비를 멈추고 빚을 갚는 데만 집중하는 구조적 침체에 진입했다면 과거 일본이 걸었던 잔혹한 장기 불황의 전철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9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프리미엄 뉴스 플랫폼 ‘SCMP 플러스’에 게재된 인터뷰에 따르면, 리처드 쿠 수석은 현재 중국이 발표하는 5%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지표의 착시 현상을 꼬집으며, 중국 경제가 이미 1997년 금융 시스템 붕괴 직전의 일본과 매우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다고 정밀 진단했다.

“1.7% 국채 금리는 거짓말 안 한다”... 1997년 일본의 재판 우려


리처드 쿠 수석은 거시경제 생산 지표보다 시장의 실질적인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금융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7~1.8% 수준으로 터무니없이 낮게 형성되어 있다.

쿠 수석은 “투자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선전하는 나라에서 이토록 이자율이 낮다는 것은, 민간 기업과 가계가 돈을 빌려 투자하는 대신 오직 빚을 갚는 데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민간이 대출을 외면하면서 금융기관으로 흘러든 저축은 결국 유일한 대출처인 정부 국채로 몰리게 되고, 이는 국채 금리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과거 일본 역시 1990년 거품 정점 당시 8%였던 국채 수익률이 1997년 1.7%까지 추락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며 긴축 정책을 펼쳤다가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과 은행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맞이했다.

쿠 수석은 “오늘날 1.7%대 금리를 보이는 중국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일본 총리가 치명적인 정책 실수를 저질렀던 1997년의 일본과 판박이”라며 “중국 정부가 이 소소한 채권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긴축이나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의 깊은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거대 시장과 첨단 기술의 착시… “수출 위주 탈출구는 서방의 장벽 부를 것”

중국 내부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압도적인 시장 규모, 도시화율, 전기차 및 인공지능 등 높은 기술 강점 덕분에 일본과는 다르다는 자강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쿠 수석은 “1990년대 일본 역시 전 세계 자동차, 컴퓨터,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글로벌 기술 1위 국가이자 세계 2위의 거대 경제 대국이었다”며 기술력과 시장 크기만으로는 대차대조표 불황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재무구조 악화 국면에서는 가계와 기업이 소득의 일정 비율(예: 10%)을 무조건 부채 상환에 쓰기 때문에 실물 경제로 도는 자금이 매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 내 하이테크 기업 간의 치열한 단가 인하 경쟁(인볼루션)은 결국 이 좁아진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소모전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미시적으로는 잘 나가는 중국 기업이 보일지 몰라도, 거시적으로는 매년 소득 흐름의 거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중국이 이 위기를 매서운 무역 흑자를 통한 ‘수출 확대’로 돌파하려는 전략은 극도로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과거 일본 역시 전 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했으나, 서방 국가들의 거센 무역 보복과 인종차별적 장벽에 부딪혀 결국 수출 중심 노선을 포기해야 했다.

쿠 수석은 “중국이 부유한 선진국 시장에 물건을 마구잡이로 밀어내면 결국 서방의 철저한 차단막에 막혀 마진이 극도로 얇은 저가 시장만 남게 될 것”이라며 “어느 순간 국제 사회가 ‘더는 안 된다’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자에게 바우처 주는 것은 무용지물”… 정부가 직접 돈 써야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중국 소비자 대상 소비쿠폰(바우처) 지급’이나 ‘세금 감면’ 정책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무 상태가 망가진 소비자들은 정부가 돈을 주면 소비를 늘리는 대신 가장 먼저 빚을 갚는 안전판으로 삼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은 개선될지언정 실물 경제로 유동성이 돌지 않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쿠 수석은 “지금은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직접 돈을 써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민간 부문이 다시 돈을 빌릴 의향이 생길 때까지 정부가 대출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드시 거대 인프라나 건물을 지을 필요는 없으며, 국채 금리(1.7%) 이상의 사회적 이익을 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업(예: 공교육 혁신 프로그램 등)이라면 무엇이든 과감하게 자금을 투입해야 시진핑 행정부가 장기 불황의 족쇄를 풀 수 있다고 조언했다.

중동 전쟁 반사이익과 미국 달러 무기화의 나비효과… 문제는 ‘외국 기업의 이탈’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혼란 속에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배경도 언급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유가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했으나, 중국은 서방과 달리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이 없어 가성비 높은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대량 수송(중국 소비량의 15~20%)해 완충 지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과 10월 한·미·중 정상 간의 만남을 통해 미국이 중국에 도움을 청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통상 갈등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측면이 있다.

미국이 국제 결제망 등 ‘달러를 무기화’하면서 역설적으로 각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보며 중국 위안화 결제 비중을 늘리는 등 위안화 국제화가 반사이익을 얻는 징후도 포착됐다.

그러나 쿠 수석은 이 같은 대외적 이점보다 내부의 ‘외국 기업 이탈’ 현상이 중국 경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10년 전만 해도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으나, 현재는 공급 과잉과 시장 침체, 외교적 마찰 펜스를 견디지 못하고 자산을 철수해 떠나고 있다.

그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중국 영토를 떠나기 시작하면, 그들이 남긴 공백과 해고된 노동자들을 과연 누가 고용할 것인가” 반문하며, “중국 기업들마저 극도로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외국 자본의 이탈은 침체된 내수 심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최악의 도화선이 될 수 있으므로 중국 당국은 시장을 개방하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최종 제언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