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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인텔과 7년 만의 '적과의 동침'…트럼프 달래기 위한 '미국산 M7' 카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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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애플, 인텔과 7년 만의 '적과의 동침'…트럼프 달래기 위한 '미국산 M7' 카드 꺼냈다

궈밍치 "애플, 인텔 파운드리와 비밀유지협약(NDA) 체결…2027년 보급형 M7칩 美 생산 유력"
TSMC 의존도 낮추고 '메이드 인 USA' 압박하는 트럼프 행정부 코드 맞추기…고성능 칩은 여전히 TSMC 몫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애플이 자사 컴퓨터(Mac)의 두뇌인 CPU 시장에서 인텔을 퇴출시킨 지 7년 만에, 다시 인텔의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는 설계 파트너가 아닌, 철저한 '하청 생산기지(Foundry)'로서의 역할이다. 애플이 2027년 출시 예정인 보급형 'M7' 칩의 생산을 인텔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에 맡길 것이라는 유력한 관측이 제기됐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 압박을 피하기 위한 팀 쿡(Tim Cook) 애플 CEO의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승부수이자, TSMC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설계'는 애플, '제조'는 인텔…뒤바뀐 甲乙 관계


저명한 애플 공급망 분석가인 궈밍치가 지난 28일(현지시각)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은 인텔과 파운드리 제조 공정 기술 공유를 위한 비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애플이 인텔의 차세대 공정인 '18AP(18옹스트롬·1.8나노급 파생 공정)' 노드를 활용해 2027년경 'M7' 칩을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시뮬레이션과 초기 연구 프로젝트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애플은 현재 인텔이 양산 수율과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단계다.

주목할 점은 애플이 인텔에 맡기려는 물량이 '엔트리 레벨(Entry-level)', 즉 보급형 칩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아이패드나 맥북 에어 등에 탑재되는 기본형 M7 칩은 인텔의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되, 고성능을 요하는 'M7 프로'나 'M7 맥스' 등 상위 라인업은 여전히 대만의 TSMC가 전담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인텔 파운드리의 기술력이 아직 TSMC의 선단 공정을 완벽하게 대체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는 애플의 냉철한 판단이 깔려 있다.

이번 협력이 성사된다면 애플 칩은 여전히 암(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되지만, 생산 주체는 인텔이 되는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2020년 애플이 "전력 효율이 떨어지고 발열이 심하다"며 인텔의 x86 CPU를 버리고 자체 칩(Apple Silicon)으로 독자 노선을 걸은 지 7년 만에, 인텔은 '두뇌'를 제공하는 파트너에서 애플의 주문을 받아 칩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위상이 바뀌어 재회하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의 '관세 칼춤' 피하기 위한 보험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의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공급망 다변화 차원을 넘어선 '지정학적 리스크 헤징(Hedging)'으로 해석한다. 그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부터 애플에 "해외가 아닌 미국 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라"고 압박해왔다. 특히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을 예고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로서는 트럼프를 달랠 확실한 명분이 필요했다.

궈밍치 분석가 역시 "애플이 인텔의 미국 공장을 활용하려는 핵심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appease)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애플 입장에서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일부를 '메이드 인 USA(Made in the USA)'로 전환하는 것은 백악관의 규제와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 기제다.
애플은 과거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맞춰 맥 프로(Mac Pro) 등 일부 제품의 조립 라인을 미국에 유지하는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이번 '인텔 파운드리 활용안' 역시 실질적인 기술적 필요성보다는, '미국 기업 인텔 살리기'와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이라는 트럼프의 정치적 구호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실리를 챙기려는 고도의 대관(對官) 전략으로 보인다.

벼랑 끝 인텔, '애플'이라는 동아줄 잡나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인텔 입장에서는 애플의 합류가 절실한 '구명줄'이다. 립부탄 CEO가 주도하는 'IDM 2.0' 전략의 핵심인 파운드리 사업은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며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하고 있다. 퀄컴 등 잠재 고객사들이 인텔 공정의 기술적 결함을 지적하며 등을 돌린 상황에서, 세계 최대의 팹리스(설계) 고객인 애플을 유치한다는 것은 인텔 파운드리의 기술력을 시장에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반전 카드다.

애플이 요구하는 물량이 비록 '보급형'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인텔로서는 애플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통과했다는 레퍼런스(이력)만으로도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수령하고,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한다는 명분을 강화하는 데에도 애플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탈(脫)차이나·탈(脫)TSMC' 공급망 재편의 가속화


애플의 이번 결정에는 '차이나 리스크'와 'TSMC 의존증'을 동시에 해결하려는 공급망 관리(SCM)의 원칙도 작용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 공장의 셧다운으로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애플은 이후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조립 기지를 분산해왔다. 반도체 생산 역시 대만의 TSMC 한 곳에 100% 의존하는 현재 구조는 대만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 시 애플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다.

인텔을 '제2의 공급사(Second Source)'로 확보하는 것은 TSMC와의 가격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가 될 뿐만 아니라, 유사시 안정적인 칩 수급을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다만, 인텔이 2027년까지 애플이 요구하는 1.8나노급 초미세 공정의 수율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 계획은 전면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2027년 등장할 '미국산 M7 칩'은 기술적 혁신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미·중 패권 전쟁과 보호무역주의라는 거친 파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플이 선택한 '가장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타협'의 산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트럼프라는 변수가 7년 전 헤어진 연인(인텔)을 공장 노동자로 다시 불러들이는 기막힌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