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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7)] 체험·의자, 핀란드디자인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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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7)] 체험·의자, 핀란드디자인 핵심

6월 7~10일 디자인 디스트릭트 위크, 12일까지 만난 헬싱키 디자인

잠이 오지 않기 시작한다. 헬싱키가 서울보다 6시간 늦기 때문에 초저녁이면 안대를 끼고 그냥 잠이 들곤 했는데 햇빛을 많이 받게 되자 점차 현지 시차에 적응이 돼가고 있다. 문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는 것. 시차적응용 멜라토닌을 먹지 않으면 잠이 너무 쉽게 깬다. 마감과 이동에 대한 지속적인 부담 때문인 것도 같다.
‘인썸니아’(불면증)라는 할리우드 영화는 본래 노르웨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더 웨더 채널’ 안드로이드 앱을 받아갔는데 확인해보니 12일 헬싱키의 일출시간은 오전 3시56분, 일몰시간은 10시45분이란다. 취침시간을 지나서도 날이 훤하다 보니 시계를 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깜짝 놀라곤 한다.

무선 인터넷 속도가 한국과 비교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니(좀 빠를 때도 있긴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 사이트로 접속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대한 노트북으로 메일 확인이나 검색 몇 번 하면서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있다.

나는 며칠 만에 ‘상거지’ 꼴이 됐다. 감고 제대로 말릴 새가 없어 부스스한 머리는 헤어밴드를 해 대충 위장하고 꼬질꼬질해진 옷을 그냥 입고 다니는 날도 있다. 패션의 어울림 같은 건 포기한 지 오래. 다행히 공기가 맑아 오염이 덜하고, 날씨가 서늘할 때가 많아 땀이 많이 나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 12일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13일 오전 핀란드의 옛수도 투르쿠(Turku)로 기차 이동을 할 예정이다. 짐을 좀 줄이고 싶은데 지금으로서 버릴 수 있는 것은 옷가지밖에 없다. 최소한의 옷으로 버텨야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림새가 가능한 건 ‘익명성’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속옷, 양말 등을 쉽게 손빨래 할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를 밝히자면 샤워를 하면서 내 몸을 ‘빨래판’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빨래거리에 보디클렌저를 잔뜩 묻혀 샤워볼을 대신에 몸에 문지르는 것이다. 임시방편으로나마 빨래도 내 몸도 동시에 깨끗해지는 거라고 믿으면서. ㅋㅋ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체험

핀란드에 왔는데 디자인 얘기를 빼놓으면 섭하다.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냈을 뿐이지만 이곳 디자인의 본질은 ‘일상성’과 ‘체험’이 아닐까 한다. 누구나 쉽게 접하고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 그저 삶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일부계층만 향유하거나 고이 모셔두는 게 아니다. 실제 디자인 박물관에서 의자 같은 가구들은 에스플라나디 거리에 있는 아르테크(Artek) 상점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 직접 다 앉아 봐도 되는데 그 편안함과 안락함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다.

핀란드 디자인 제품의 핵심 상품은 ‘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겨울이 길고 하루의 대부분이 밤인 흑야 때문에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의자는 필수인가 보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둥근 형태를 만들어 쿠션을 얹어 매달아놓거나, 역시 둥근 플라스틱 공을 파내어 쿠션을 설치한 형태의 의자 등은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도 될 만큼 안정감이 있다.

뮤지엄에 가도 전시만 해놓은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들이 층마다 있다. ‘체험’에 큰 가치를 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인 박물관에는 알바 알토 등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에 직접 앉아보고 가장 맘에 드는 의자를 고를 수 있는 코너가 있어 흥미롭다. 현대 미술관인 키아즈마에는 전시를 보고 나면 직접 자신이 느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들이 마련돼 있는데, 종이와 연필로 그리거나 써서 벽이나 설치물에 매달아 놓게 했다. 이곳들에도 편안한 의자들이 포진돼있다. 거의 드러누워도 되는 빈백(콩주머니) 의자도 있어 관람으로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다. 핀란드의 유명브랜드인 ‘팻보이’다. (특히 미술관 관람은 유의깊게 새로운 작품들을 보느라 시신경도 피로하고 많이 걸어야해서 쉽사리 피곤해지는데 이런 것들도 다 배려한 듯하다)

지난해 헬싱키 경제대학과 공과대학, 미술대학 등 3대 대학을 통합한 알토대학이 출범했는데(국민 건축가 알바 알토의 이름을 딴 듯하다), 이 대학의 팸플릿을 보니 내가 느끼는 이러한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디자인 디스트릭트 파빌리온에서 얻은 책을 보니 이들 아트·건축·디자인학과는 ‘리빙’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 학생들이 5월11일~9월16일 디자인 박물관 앞에서 하는 전시의 제목도 ‘시트 미(Sit me)’.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나무로 만든 다양한 디자인의 벤치들을 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도 기능적이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보여주는 제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얇은 플라스틱제형의 용기에 담긴 물비누를 짜내 쓸 수 있게 만든 간단한 철제 도구라든지, 종이컵에 날개를 달아 접어서 손잡이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든지, 모두 흥미롭다.

마켓광장의 천막시장에만 나와도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고 만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무명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꼭 유명매장에 있는 제품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멋과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와본다면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헬싱키 거리의 디자인 구역

헬싱키가 자랑하는 ‘디자인 디스트릭트’(http://www.designdistrict.fi)를 보면 체험과 일상성이 더욱 잘 보인다. 관광안내소에서 시내 중심가 이 구역내 200여개 장소를 표시해놓은 지도를 받을 수 있다. 박물관과 갤러리, 호텔, 식당, 카페, 바 같은 먹거리를 파는 곳을 비롯해 인테리어, 의류, 보석, 앤티크 물건들을 직접 접하고 구입도 할 수 있는 196개의 장소가 지정돼있다.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가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선정됐음을 알리는 검은색 둥근 마크를 창에 붙여 놓은 곳에 들어가도 된다. 관광객들을 위한 전시행정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항상 이용하는 곳들이다. 올해는 헬싱키가 세계디자인 수도로 선정되기도 했다(http://wdchelsinki2012.fi/en)

마켓광장, 디자인 박물관, 키아즈마 등의 앞에 이를 알리는 푸른색 둥근 마크가 박힌 대형 상징물이 서있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국제산업디자인 단체협의회가 디자인을 통해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에 2년마다 한번씩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인데, 이를 내게 알려준 헬싱키시의 에로 와로넨 커뮤니케이션 국장(Waronen Eero/ CHIEF COMMUNICATIONS OFFICER)은 2010 세계디자인수도였던 서울에 이은 것이라며 그 연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마침 6월 7~10일은 디자인 디스트릭트 위크라고 한다. 디자인 박물관과 핀란드 건축 박물관 사이에 가설된 파빌리온(대형 야외천막)에 들렸다가 알게됐다. 2012 헬싱키 세계디자인수도를 기념해 5월2일~9월16일 설치해놓은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워크숍, 디자인 벼룩시장, 영화상영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고 한다. 내가 간 날에는 NEROKO라는 애완동물 제품 브랜드의 프로모션이 있었다. 나도 개를 무척 좋아해서 검은색 푸들을 키우고 있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선보인 의자 겸용 개집 위에 자신의 개와 함께 포즈를 잡으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즉석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준다. 핀란드인들은 상당히 소극적이고 말이 없지만, 자신의 개를 끌고 나온 현지인들에게 개가 예쁘다고 말을 시키면 굉장히 좋아들 한다. 애완견을 사랑하는 마음은 만국공통!

◇나무가 많은 핀란드의 뛰어난 목공 제품

헬싱키가 수도로 지정된 날을 기념하는 6월12일 ‘헬싱키데이’를 전후한 2~17일은 ‘헬싱키 위크’ (http://www.helsinki200.fi/en/node/573/helsinki-week)로 지정됐는데 그 행사의 일환으로 7~9일 헬싱키 대성당 앞 원로원 광장에서 핀란드의 남쪽지방의 문화를 보여주는 페스티벌(South Ostrobothnia regional festival at Senate Square)이 열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공예. Koriste VEISTO라는 가구회사의 부스에서는 이러한 목공을 예술로 승화시킨 놀라운 제품들을 만들 수 있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나라인 만큼 나무가 흔한 재료고, 이를 이용하는 솜씨도 굉장히 뛰어난 듯하다. 아티스트가 직접 끌로 나무를 파내 장식품을 만드는 시연을 하고 있어 한참을 지켜보았다.

한국에서 북유럽제품을 수입해 파는 곳에서 처음 핀란드 쟁반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플라스틱 쟁반인줄 알았더니 나무를 성형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런 제품들은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6월 9~10일 핀란드 디자인의 본산지라는 피스카스 마을에서 열리는 ‘우드페어’에 가지 못하게 된 아쉬움을 여기서 달랜 셈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