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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郵趣(우취)는 내 삶에 행복과 여유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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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郵趣(우취)는 내 삶에 행복과 여유를 주었다”

우편사‧테마틱 우표 45년간 수집…10만 여장 달해

우표 수집하고 연구하며 당시 생활사를 생생 복원
■ 송일호 사회과학대학장

▲ 사진=홍정수 기자[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취미는 우리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분야도 독서에서부터 우표수집, 낚시하기, 스포츠 활동, 캠핑, 사진찍기, 그리고 등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취미 분야는 더욱 늘어나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자우편의 발달로 사라질 것 같은 ‘우표수집’에 열광하는 대학 교수가 있어 화제다. 동국대 사회과학대 학장으로 있는 송일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송 교수는 우표를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 우표를 통해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자칫 거시사(巨視史) 속에서 놓칠 수도 있는 미시사(微視史)를 채워주는 귀중한 역할을 한다.

송 교수는 우표수집을 통해 이웃나라인 일본은 물론, 미국과 프랑스, 독일과 영국 등 해외 여러 나라와 문화교류도 갖는다. ‘희귀 우표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바로 시간을 내어 해외로 날아가 우표를 입수한 뒤 여행 같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바로 돌아오기도 한다. 대학강의는 직업, 우표수집은 취미, 여기에 여유와 행복을 덤으로 챙기는 송일호 교수를 만났다.

-각박한 세상에서 즐겁게 사는 방법이 없을까요?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일 주어진 일과 속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취미를 즐긴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 아닐까요. 저도 우표수집을 통해 제 삶의 품격을 높이고 여유로움을 찾고 있어요.”

송 교수는 이 대목에서 우표수집과 취미활동을 조합하여 ‘우취(郵趣)’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우표를 모으고 연구하는 취미활동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그는 열두 살 때부터 45년 동안 우표와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살아왔다. 한 장의 우표가 구해지면 그때부터 그 우표에 대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서핑하고, 그 정보를 우표와 함께 대지에 정리하여 보관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우표를 수집했습니까?

“저는 우표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봉투를 함께 수집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시의 생활상과 역사를 동시에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표와 함께 정리하여 만든 대지는 5000장이 넘고, 그 속에 붙은 우표는 적게는 10만장, 많게는 15만장이 될 것입니다.(일일이 우표 장수를 세어보지 않아 추정한다고 했다) 그 대지 한 장 한 장이 바로 제 삶의 기록이자 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닥쳐오면 저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모아 두었던 수집품을 꺼내 보면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표를 수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시절 열두 살 때부터 우표를 모았습니다. 그러던 중 스무 살 무렵 한국 최고의 우표수집가인 고 석산 진기홍 선생과의 만남이 평생 우표수집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지요. 석산은 당시 체신공무원으로서 우리나라 우정역사를 개척한 분이자, 단순한 우표수집가의 수준을 떠나 역사학자로서도 손색이 없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면 항상 답을 가르쳐주기보다는 답을 찾는 방향이나 방법을 제시해주셨지요. 이런 좋은 스승과의 만남은 저에게 행운이자 축복이었고, 저를 우취(郵趣)의 길로 들어서게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우표수집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입니까?

“우표수집을 하려면 그저 우표만 모아서는 안 됩니다. 우표연구를 하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요. 저도 우표수집을 위해 강화도 조약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열심히 공부했고, 전공인 경제학과 수집을 접목시킨 작품을 완성하여 세계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금메달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어요. 또 전국의 우표수집가들은 물론 전 세계 약 80개국 수집가들과 좋은 인연을 맺고 꾸준히 상호교류를 하고 있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우표라는 독특한 세계에서 여러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송 교수는 세계우표전시회에 대한민국 커미셔너 자격으로 참가한다. 해당국 조직위원회는 그에게 공항에서부터 귀빈대접을 하는데, 좋아서 하는 취미활동이 부수적으로 호사를 누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한국 우표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우표의 역사는 1884년(갑신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에 비해 60년, 일본보다 20년 뒤졌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이 1884년 11월 18일 금석 홍영식을 우정참판으로 하여 문을 엽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체국이 20일 만에 문을 다고, 정변의 주역이었던 홍영식은 청나라 군인에 의해 살해당하지요. 이러한 환경 탓에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20일밖에 사용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단기 사용기록을 남긴 셈이지요. 이처럼 짧았던 역사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세계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희귀한 우표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붙은 봉투가 지금 발견된다면 1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최고의 명품 우표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이 봉투를 찾기 위해 40여 년 동안 노력하고 있는데, 제게 행운이 온다면….”

-한국 우표와 해외 우표의 수준을 비교한다면….

“197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우표는 해외 우표에 비해 크게 낙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문화재 중심국에 서 있어요. 요즘은 우표 디자인, 인쇄 상태, 우표 속에 담긴 문화 상징성 등을 종합할 때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로 어떤 우표를 수집하나요?

“여러 종류의 우표수집 중에서 ‘우편사’ 부문과 ‘테마틱’ 부문을 집중해서 수집하고 연구를 해왔어요. 특히 우리나라 구한국시대(1884~1905)의 우표와 사용된 봉투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 역사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탓인지 국내에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대부분의 자료를 외국의 경매 사이트나 상인들로부터 사서 국내로 반입하는 경우가 다반사지요. 거기엔 막대한 외화를 지불해야 하고요. 유출된 문화재를 다시 환수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우표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어떤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테마틱’ 종목에도 관심이 많아요. 테마틱 종목의 작품을 위해서는 주로 외국의 자료를 중심으로 수집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장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합니다.”

송 교수는 우표를 통해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오랫동안 우표를 수집하면서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경제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학자로서 전공과 취미생활을 연계시킨 결과 지난 10여 년 동안 작품을 제작, 세계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표 수집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면요.

“개항기 초기 해외 우편경로(상해-체부-인천-나가사키-부산-원산-블라디보스톡)를 알게 되었고, 우표에 찍힌 소인과 편지 봉투를 통해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숫자가 급증했구나, 하는 역사적 사실도 새롭게 확인했어요. 사실 일본은 본격적인 조선 침략에 앞서 1894년 수많은 야전군사우편국을 조선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볼 때 일본이 얼마나 조선침략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우표 수집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우표 수집이 가벼운 취미생활일 때는 큰 비용이 들지 않지요. 그러나 전문가 수준의 우표 수집일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예컨대 우편사 분야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개항기로부터 시작되는 근대사 공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서적과 관련 자료 수집도 병행해야 하지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비용이 늘어나게 됩니다.”

-지난 2009년 12월에 ‘만해 한용운 탄생 130주년 기념우표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불교를 종단으로 하는 동국대에 근무하는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책무로서 ‘만해 한용운 탄생 130주년 기념우표전시회’를 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죠. 앞으로도 불교 관련 자료를 이용하여 불교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대작을 완성시키고 싶어요. 이를 위해 오랫동안 일제 강점기시대 국내 사찰자료를 많이 수집해왔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수집한 수집품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생각입니다. 제가 운이 좋게 수집한 자료들은 제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또 최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작품집 발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우취계를 대표하여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며 국위를 선양할 계획입니다.”

송 교수는 우표 수집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을 접목시켰는가 하면,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소망을 우표 수집을 통해 완성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송 교수가 우취(郵趣)를 통해 얻은 건 여유롭게 풍요로운 삶일 것이다. 우표를 공동분모로 하는 사람들과 교유하며 나눈 덕분이리라.

■ 송일호 프로필
▲ 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사회과학대학장‧행정대학원장‧경찰사법대학원장 ▲ 1967년부터 45년간 우표와 근대사 자료 수집 ▲ 2007년 대한민국우표전시회 국무총리상 수상 ▲ 2009년 서울 국제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 2010년 런던 세계우표전시회 대금은상 수상 ▲ 2011년 포르투갈 세계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 2011년 뉴델리 세계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 (사)한국우취연합 부회장 및 한국테마클럽 회장 ▲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우표발행심의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