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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4)] 300명 언어와 핀란드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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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4)] 300명 언어와 핀란드 사우나

6월19일, 이나리 사요스와 시다

이나리쯤 올라오자 확실히 식물 생태가 바뀐 것이 티가 확 난다.
툰드라 지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이끼류 같은 것들과 키작은 식물들이 가득 자라있어 밟으면 양탄자라도 되는듯 푹신푹신해 느낌이 좋다. 여름을 맞아 밥풀만한 크기의 노랗고 하얗고 보랏빛인 꽃들이 펴 별처럼 흩어져있는 것도 아름답다.

툰드라를 온라인 사전으로 찾아보니 “최고온의 달이 10℃ 이하이고, 식물의 생육기간이 60일 이하로 짧고 제한된 요인에 의하여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곳, 즉 삼림한계보다도 북쪽의 극지(極地)에 해당한다. 주로 지의류(地衣類)·선태류(蘚苔類) 등이 무성하고, 방동사니 등의 초본(草本), 버드나무류 등의 왜성(矮性)의 낮은 나무가 혼재한다”고 설명돼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툰드라 지역에 들어선 것이다.

북극권 초입인 로바니에미에선 요즘 낮기온이 영상 22도 정도까지, 소단퀼라에서는 18도 정도까지 올라가 따뜻하다. 이나리는 영상 9도 정도다. 도착한 첫날인 6월18일은 바람이 불지 않고 비도 멈춰 전혀 추운 줄을 몰랐다. 내복과 오리털파카까지 챙겨왔는데, 왜 안춥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19일 비바람이 치자 진짜 추워서 오리털파카만 빼고 내복부터 가지고 온 옷을 입을 수 있을 만큼 껴입었다. 체감온도는 7도라는데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더 춥게 느껴졌다.

북극권 날씨는 습기 차는 장마가 있는 한국에서 온 나로서는 희한하게 느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많고 여기저기 호수인 데도 건조하다. 청바지를 빨아 말렸더니 하룻밤새 마른다. 피부도 건조함을 느끼는지 가렵다. 또 겨울에는 영하 30, 40도씩 내려간다고 하니 건물은 단열을 최우선에 둬서 따로 난방을 하지 않는 듯한데도 내부로 들어오면 훈훈해서 갑갑할 정도다. 지어진지 오래된 호텔들은 아무래도 환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하는 듯 답답하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니 오래된 나무의 찌든 냄새가 배어들어 숨이 막힐 것 같다. 창문도 죄다 고정돼 열 수 없고, 귀퉁이에 덧문을 열 수 있는 조그마한 창이 달려있을 뿐이다. 방안에서는 벌거벗고 있어도 추운줄을 모른다. 그러니 옷맞춰 입기가 참 어렵다. 일단 얇은 옷들을 이것저것 껴입었다가 안에 들어와서는 하나씩 벗어야한다.

이중창이라 방음까지 완벽하다. 벽이 두꺼운 만큼 바깥창과 안쪽창 사이의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 나는 이곳을 냉장고 대용으로 썼다. 이나리 호텔에서 내가 쓰는 방은 냉장고가 없어 사놨던 과일을 넣어 놨다. 창문을 열어야 바깥소리가 들리는데 밤 10시가 훨씬 지난 시간인데도 새들 우는 소리가 들려 웃음이 났다. 얘네들도 하늘이 훤하니 시간을 잊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건가?

◇4월 개관한 사미 문화센터와 의회 ‘사요스’
아침을 먹고 어제 지나치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던 이나리의 주요 건물 탐방에 나섰다. 자작나무처럼 쭉쭉 곧은 목재를 외벽에 둘러놓은 멋진 건물은 사미족 문화센터인 사요스(Sajos)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은 비정형적으로 네개의 귀퉁이가 쑥 솟아나와 있는데 순록의 뼈모양을 따른 것이다. 지난 4월 개관한 최신 건물이다.

입구 창구를 지키고 있던 사미족 처녀 마린나 사오아(Marjinga Saoa)가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사미족은 통통한 몸매에 동글동글한 얼굴의 동양적인 생김을 가지고 있다. 23살이라는데도 무척 동안이다. 이 아가씨가 내부 안내를 해줬다. 3층 건물중 1층에 도서관과 수공예숍, 사미의회가 열리는 홀, 음향시설이 좋은 강당이 갖춰져 있다. 나머지는 사무실이란다.

마린나는 “사미족이 사는 곳에는 소속 국가에 따라 각각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의회가 있다”며 “사요스 의회홀에서는 선거로 선출된 핀란드 사미족 의원 21명과 일반인 대표 4명이 자치정부를 이끌어 간다”고 영어로 설명했다.

책들과 사미족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 판매도 하는 사미족 수공예품으로 둘러싸인 도서관도 아늑했다. 버스를 이용해 이동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사미족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곳곳에 전시해놨는데 의회홀의 벽면에 강물의 흐름을 표현한 금빛 반구를 늘어놓은 금속공예, 도서관 벽면에 사미족들의 얼굴을 촬영한 사진작품들을 모아 걸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소수민족인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해가고 있는 것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이곳 레스토랑에서 12 유로만 내면 점심 뷔페를 사먹을 수 있다. 나무가 흔하니 핀란드는 어디가나 나무 제품들이 흔한데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와 테이블에, 향긋한 나무냄새를 즐길 수 있는 야외 데크도 마련돼있었다. 천연 나무제품들은 질리지 않는 풍미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자연의 매력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은 변화에 있는 듯싶다. 뭐 하나 똑같이 생긴 것이 없고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곳에서 사는 이들은 자연에 영감을 받은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내는데 나뭇가지를 테마로한 옷걸이 하나에도 감탄하게 된다.

◇사미박물관 ‘시다’, 300명 사용 이나리 사미언어

핀란드 사미족의 삶과 북극권 동식물들의 생태를 전시한 ‘시다(Siida)’는 핀란드 우수박물관 중 하나라는데 역시나 세심하게 신경 쓴 각종 전시물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사미족들은 빙하시대 말기부터 이 지역에 살아왔다. 순록을 치며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의식주를 모두 순록으로 해결하며 살아왔다. 칼 손잡이도 흰 순록뼈이고, 순록 가죽을 온갖데 응용했다. 갓난아기를 담아 매달고 다닐 수 있는 순록가죽 요람과 역시 순록가죽으로 만든 북이 인상적이다. 상형문자같은 것들이 그려져있는 북은 17, 18세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샤머니즘의 상징으로 여겨져 파괴되고 남아있는 것들도 유럽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있다고 한다. 역시 전통문화를 지켜오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상설전시 외에 6월15일~10월14일 ‘인쇄된 사미언어’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백인들이 전달해준 알파벳으로 이들 언어를 기록하고 고유의 사미문학도 있음을 알려준다. 사미언어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지켜온 이들의 의지가 놀랍다. 사라질 뻔한 이 언어는 1960년대 지역문화에 대한 자각이 일면서 학교에서도 가르치게 됐단다. 우랄어에 속하는 사미언어는 10개로 구분되고 현재 총 2만여명이 사용하고 있다. 핀란드에는 노스 사미, 이나리 사미, 스콜트 사미 등 세 개의 사미언어가 있는데 이 중 이나리 사미어와 스콜트 사미어는 각각 300여명만이 사용하고 있단다. (시내 수공예숍과 호텔 등에서 이나리 사미어로 씌여진, 다람쥐가 들려주는 북극동물들에 대한 이야기책을 23 유로에 팔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약 350명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기록된 책을 기념품으로 사가라는 광고가 붙어있다)

박물관은 2개 층인데 순록지기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은 영상물을 틀어주는 데스크가 있어 의자에 앉아 들여다보니 어린 순록을 카우보이처럼 밧줄을 던져 잡아 칼로 귀에다가 자기네 소유임을 표시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영상에서는 순록 울음소리를 담은 음향도 나온다. 바로 앞에는 어린 순록의 실제크기 모형으로 이를 형상화 해놨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높이에는 벽에 구멍을 파 동식물 인형을 넣어놓은 것도 재밌었다. 순록뿔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게도 해놨다.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한 배려다.

하루 세 번 상영해주는 오로라 영상물도 볼만하다. 10분간 사미족 고유의 허밍을 담은 음악에 맞춰 겨울밤 하늘에 펼쳐지는 오로라 쇼를 촬영한 것을 보여준다. 무지개처럼 빨주노초파남보 각종 색채가 커튼처럼 펼쳐지는 것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널찍한 야외박물관에서는 사미족들이 유목생활을 접고 정착생활을 하게 된 후의 주거양식을 보여주는데, 목재가옥 안에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다.

내일 오후 핀란드를 떠나 노르웨이로 들어설 예정이다. 갑갑한 곳에 갇히는걸 좀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어 한국에서도 사우나는 잘 하지 않았지만, 핀란드 사우나가 유명하다는데 핀란드에서 마지막날 밤 사우나체험을 안 할 수 없다.

자동차보다 사우나가 많다는 핀란드에서 기본적으로 웬만한 호텔들은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1시간 사용 예약을 하고 작은 유닛을 통째 빌려야한다. 숙소로 돌아와 문의하니 예열시간이 30분 이상 필요하다고 한다. 숙박객중 사우나를 이용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우나에 익숙지 않아서인가, 직원이 집열판같이 생긴 열이 나는 곳에 물을 뿌려가며 증기욕을 하라며 물이 담긴 통과 국자를 보여준다. 자작나무를 매끈하게 다듬은 계단형 의자가 마음에 든다. 하지만 예열이 충분히 되지 않아서 인지 물을 뿌려도 증기가 나지 않는다. 땀을 좀 뺐다는데 만족해야했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