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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8)] 최북단 노르카프홀 완전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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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8)] 최북단 노르카프홀 완전정복

6월22일, 드디어 대망의 노르카프 곶에 오르다

북위 71도10분21초, 크니브스셸로덴(Knivsekjelodden)이라는, 걸어서만 갈 수 있다는 외진 마을을 제외하고는 유럽 최북단이다. 이곳을 상징하는 지구본 모양의 철제구조물이 있는 절벽 끝을 향하는 버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오른다. 산의 움푹 파인 곳들에는 지난 겨울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고 있다.
오후 1시30분에 호닝스버스 관광안내소 앞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45분간 갔는데, 귀가 먹먹해지는 지점이 있는 것을 보니 꽤 올라가나 보다. 일단 캠핑카들과 버스들이 서있는 지점에 내리면 정면으로는 넓직한 노르카프홀이 보이고, 오른쪽 앞에는 1988년 세계 7개국에서 온 어린이들이 1주간 머물면서 만들었다는 둥근 단면을 한 반구 동상 7개가 보인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모자 동상. 홀 왼쪽으로 돌아가는 절벽쪽에는 1895년 노르웨이 국왕이 다녀간 것을 기념해 세운 돌 기념비가 있다. 절벽길을 따라 홀 뒤쪽으로 돌아가면 북위 71도10분21초를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가 올려져 있는 돌무덤이 있는데, 북극권 각지에서 가져온 돌들로 쌓은 것이라고 한다. 그 화살표 방향 끝쪽에 지구본 모양의 조형물이 서있다.

초속 22㎞의 강풍에 밀려 진짜 날아갈 것 같다. 오리털파카는 물론이고 스카프 하나 걸고 목도리도 했는데 바람에 날려 벗겨지기 일쑤다. 날이 좋으면 북극이 바라다보인다는 얘기도 있던데 오늘은 날이 흐려 그냥 뿌옇다. 307m 절벽 아래에서는 사나운 파도가 치며 물안개가 피어올라 수평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그나마 날씨가 많이 나아졌다는 건데, 사미족 원주민들은 이곳에 뭔가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고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고 한다.


◇지하 깊숙한 노르카프홀의 볼거리들

지붕 위에 희고 둥근 구가 올라있는 노르카프홀은 거대한 단층의 널찍한 건물이지만 역시 땅이다. 암석을 파고 들어가는 데 세계적인 수준인 노르웨이인들은 지하에 갖가지 전시관들과 극장까지 갖춰놨다. 5시간 반을 이곳에서 보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의미있는 것들이 많다. 이곳 지자체와 갤러리 등의 홍보의 장이기도 하다. 하루를 꼬박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상층에는 리카호텔 예약까지 받는 안내소와 기념품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있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는 이 홀을 짓기 전부터 있었다는 바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놨는데 거기에 돈을 던져넣게 해놨다. 주머니에 한국동전 10원짜리가 있어서 나도 하나 던져넣어봤다. ㅋㅋ. 커다란 트롤(노르웨이 전설의 도깨비) 모형물도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다.

곳곳에 돈벌이용이 많다. 엽서는 9 크로네부터 팔고, 여기 우체통에 넣으면 이곳 소인을 찍어 세계 어디든 보내준다. 기념품점에서 우표를 사면 유럽지역 17 크로네인데 지하 2층 우체국까지 내려가면 유럽지역 13 크로네, 그외 지역은 15 크로네를 받는다. 노르카프 DVD는 55 크로네, 노르카프 도달증명서는 55크로네에 판다. 벨기에에서 왔다는 할아버지 사이클러는 이를 하나 사들고 스티커까지 붙이며 진짜 좋아한다. 175 크로네를 내면 1984년 설립된 로열 노스케이프클럽 회원이 돼 이곳을 평생 무료입장할 수 있단다.

지하 1층에는 화장실과 함께 2차대전때 독일군에 맞서 싸우다 이곳에서 사망한 연합군을 기리는 기념석판이 있다. 지상 2층에는 우체국과 함께 이 지역에 사는 조류들의 모형을 바위 절벽을 그대로 살려 전시해놓았다. 새 우는 소리까지 틀어주는데, 이 강풍에 조류 사파리를 가느니 여기서 구경하고 그치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런 날씨에 배타고 나가서 제대로 새 구경이나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하 3층에는 노르카프의 4계절을 담은 20분짜리 파노라마 필름을 보여주는 극장(정오부터 자정까지 매시 정각 하루12번 상영)이 있다. 오로라까지 꽤 볼만하다.

거기까지 구경하고 나자 날도 계속 찌푸려있는 데다가 피로 때문인지 졸음이 몰려와 커피 한잔 마시고자 지상층으로 다시 와 카페에 앉아 카페라테를 시켜놓고 하염없이 창밖의 노르카프곶을 구경했다. 40 크로네(약 8000원)짜리 양도 얼마 안 되는 카페라테는 어찌나 밍밍하고 싱거운지. 그러나 튼튼한 나무 격자로 이뤄진 전면창을 내다보며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 만은 좋았다.

진짜 볼거리들은 지하 3층 이하에 있었다! ‘킹스 뷰’까지 내려가는 긴 나선형 복도 벽면에는 노르카프곶을 발견한 영국인 배와 이곳을 방문한 유명인들의 인형 모형을 전시해놨는데 아주 그럴 듯하다. 1553년8월 중국에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에드워드보나벤처라는 탐험선의 선장이 영어로 ‘노스캅’(북쪽곶)이라고 명명하면서 노르카프라는 이곳 지명이 생겼다고 믿어진다는 그런 얘기다.

조금 더 내려가면 푸른색 타일 조각으로 입구를 발라놓은 세계 최북단 예배당인 ‘세인트 존스 채플’이 있다. 암석벽면을 촛불로 장식해놓았고 좌석 16개인 아주 작은 방이다. 주일 예배는 따로 없고 세례식이나 결혼식이 열리기도 하는데 1990년 6월24일 미드서머데이인 세인트존스데이에 봉헌돼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예수, 십자가, 비둘기 등 기독교의 3가지 상징을 살린 건축이라는데 노르웨이 재즈뮤지션이 만들었다는 배경음악은 신비롭긴 하나 전혀 성스럽지 않다. 사미인들이 살던 때부터 급변하는 날씨 때문에 이곳에서 종교적 체험을 한 이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뜬금없이 타이 박물관도 나타난다. 기나긴 이름(Chulanlongkom)의 타이 왕이 1907년 노르웨이를 방문했다는 사진과 타이 공주가 커팅식을 할 때 사용했다는 가위, 각종 타이 기념품들이 전시돼있다. 직원에게 문의하니 “오래 전 이곳을 타이 왕이 딸과 함께 방문했는데 그 공주가 여길 무척 좋아해서 이곳에 돈을 많이 희사해서 지어지게 됐다”고 한다.

땅 속 마지막 기착지는 커다란 홀 식당.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없다. 굵은 통나무 속을 파서 쿠션을 얹어 만든 듯한 의자들이 신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국내 번역타이틀은 ‘상실의 시대’)은 사실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지언 우드’에서 왔는데 노르웨이산 가구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괜히 멋져 보이려 별 의미도 없는 제목을 달았나본데, 노르웨이의 통나무 가구들은 진짜 끝내준다.

식당 홀 옆의 문으로 나가면 있는 킹스뷰라는 테라스 전망대, 문이 안 열려 고생하며 문에 나있는 동그란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타난 직원 한 명. 그가 여니 쉽게 열린다. 나, 뭐한거야. “눈이 녹지 않아 창을 열지 못해 식당을 오픈 못한다”고 한다. 굵고 거대한 나무 블라인드를 내려놔 깜깜했던 것이다.

이곳의 압권은 ‘킹스 뷰’다. 왕의 전망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끝내준다! 홀 주변을 돌아다니며 보니 암석을 파내 들어가 절벽 한쪽까지 뚫어 거기에 이런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그늘진 이쪽은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는데 적어도 내 키의 배 만하다. 식당의 전면을 완전히 다 가리고 있다. 폭력적인 눈보라가 몰아치는 곳이라는데, 겨울이면 얼마나 눈이 많이 올 지 상상이 안 간다.

마지막으로 홀 밖으로 나와 캠핑카들이 몰려있는 벌판에 나가보니 거기에 집짓고 사는 이도 있다. ‘프라이비트 홈’이라고 이제는 낡아 희미해진 쪽지를 붙여놨는데 하지축제 주말을 맞아 거기서 파티라도 하는지 먹을 것을 잔뜩 든 한 떼의 현지인들이 들어간다.

멀찍히 보이는 산 쪽에는 노르카프홀 지붕에 있는 것과 같은 하얀 구가 올려져 있는 건물이 보인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기상대라고 한다. 샅샅이 뒤지고 다니고 나니 더 볼 게 없다. 또다시 몰려오는 생각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약간 슬픈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떠나야한다. 왕복표를 끊어온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호닝스버그 중심가의 아이스 바

북유럽 곳곳에는 아이스 바가 대유행이라는데, 호닝스보그 타운 중심에 있는 아이스바도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었다. 하다못해 도로교통 표지판에도 써있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 두고 내린 광고지를 보니 4~10월에 문을 여는 아티코 아이스바에서 북극체험을 하라고 광고하고 있다. 2004년 오픈한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북극스럽고, 가장 추운 아이스바’라며 사진도 실었다.

라플란드 호수에서 채취한 순수한 얼음으로 이글루를 지었다는데, 이 지역이 이글루에 사는 에스키모가 거주지도 아니고, 장삿속 같다.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니 더 한 게 들어서도 뭐라 할 건 아니다. 노르카프 지자체는 올해로 151년이 됐다. 호닝스보그에도 작은 방 하나에 박물관이랍시고 꾸며놓고 꽤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대형 크루즈 후티루텐이 서는 앞에서 2차대전때 두 명 이상의 목숨을 구했다는 대형견 세인트버나드 ‘밤세(Bamse)’ 동상이나 구경했다.

노르카프곶에서 떨만큼 떨었다. 아이스바에서까지 추운 걸 더 경험하고 싶지도 않다. 이곳은 아이들도 들어갈 수 있는 ‘건전 바‘이긴 하다. 입장료는 135 크로네, 12세 이상 어린이는 40 크로네를 내면 따뜻한 옷들과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두 컵 준단다. 두 컵 중 하나는 아이스 샷.

호스텔에 묵는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노는 건지 자정에 노르카프곶에 올라가는 건지 밤늦게까지 안 들어온다. 어디선가 젊은 애들끼리 모여 나이트 라이프를 경험하는 건가 조금 궁금하기도 한데, 내가 잠에서 깨는 새벽녘에는 다들 자고 있으니 물어볼 수가 없다.

버스가 중심지로 들어가기 전 내려달라고 해 마을 초입에 있는 호스텔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노르카프홀을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