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인터뷰]"목표 향해 달리기만 하는 교육은 위험"

공유
0

[인터뷰]"목표 향해 달리기만 하는 교육은 위험"

커뮤니케이션 능력‧고생체험 시키는 日국제교양대학 롤 모델


전문학교 활성화 해 인재 양성…교육의 위기 극복에 숨통을


수학능력만 있으면 일본어 몰라도 가나가와 치대 입학 가능



▲ 커리어교육 전문가 신현정 교수(가나가와 치과대학)는 “일본 시골 구석의 작은 단과대학인 국제교양대학이 설립 8년 만에 100% 취업률, 100% 영어 강의, 해외 유학 의무화, 도쿄대와 교토대 수준의 입시 성적으로 일본 교육계와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면서 “국제교양대학의 예에서 보듯이 ‘나는 왜 공부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고 글로벌 시민이 되는 교육을 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사진=홍정수 기자

■ 커리어교육 전문가 신현정 교수(가나가와 치과대학)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30년 뒤면 대학의 커다란 캠퍼스는 유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대학은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오늘날의 대학 교육이 어떠하길래 미래학자의 눈에는 이렇게 절망적으로 비쳤을까. 단순한 기술과 스펙을 키워주는 대한민국 대학교육의 현실로 볼 때 우리 대학도 예외 없이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커리어교육 전문가로서 취업교육과 교양교육을 조화시킬 것을 역설하고 있는 신현정 가나가와 치과대학 교수. 지난 10여 년 동안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사회에 나가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거나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직업을 갖게 하는 교육을 최고의 목표로 생각해 왔던 그다. 하지만 100%에 가까운 제자들의 취업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의 마음속은 왜인지 허전하기만 했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무엇을 위한 취업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해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공부를 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성이다.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놓고 고민하던 신현정 교수에게 새로운 빛이 보였다. 취업이나 학력 취득을 위해 다니는 대학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주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강인한 자생력을 키워주는 대학을 만드는 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통’이기도 한 그는 최근 일본의 아키타현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실험한 ‘국제교양대학’이 성공한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가나가와 치과대학의 한국 위탁교육기관인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신현정 교수를 만나 커리어교육, 교양교육, 한국과 일본 문화, 그리고 가나가와 치과대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교육의 최종 목표를 직업을 갖게 하는데 두었다가 최근에 방향을 바꾸신 이유는….

“지금의 대학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취업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스펙 쌓기 교육에만 몰두하는 대학과 대학 교육의 자율성과 교양의 습득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의 취업은 나 몰라라 하는 대학이 그것이죠. 그러한 대학의 모습을 보면서 제 교육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제 교육엔 전문지식이란 이름하에 철학이 빠진 기술의 전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배움의 근본인 ‘왜’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무엇을 위한 취업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과 해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공부를 시킬 작정입니다.”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일본 아키타현의 단과대학인 국제교양대학을 소개해주시죠?

“일본의 작은 시골구석에 동경대학 총장을 지낸 나카지마 미네오가 그동안 공립학교에서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대학을 만들었어요. 거리로 보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거제도 정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지난 2004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전문화 교육이라고 해서 모든 대학들이 전문인 양성에 힘쓰고 있는데, 국제교양대학은 이름도 그렇고 시대에 약간 뒤진다는 느낌을 주었지요. 그런데 대학의 역사로 볼 때 설립한 지 8년 밖에 안 된, 새내기의 이 대학에 일본과 전 세계의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진학담당 교사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대학, 학교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교육 관계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대학으로 유명해졌지요. 국제교양대학을 둘러본 저는 한국에도 이 같은 대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명 대학에서도 영의강의가 실패했는데, 시골구석에서 어떻게 글로벌 교육에 성공했을까요?

“국제교양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특히 영어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떻게 성적을 올리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로 수업을 하기 위한 준비수업을 한다는 점입니다. 본격적인 영어수업에 앞서 영어능력을 갖추고 영어권 문화를 익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하는 등의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로 대학에서 곧바로 영어로 수업을 들으라고 하니 문제가 생긴 겁니다. 입시용 영어와 수업용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국제교양대학은 커뮤니케이션 영어를 하는데 한 학기 이상 준비해서 토론하고 자기의 글을 쓰게 합니다. 게다가 독특한 유학제도도 성공의 한 원인이지요. 유학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국제교양대학은 4년 중 1년은 외국 대학의 정규 과정에 들어가서 그 나라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받고 학점을 이수하여 돌아와야 합니다. 유학생을 위한 특별코스가 아니라 1년 동안 그 나라 학생과 똑같은 기준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한 마디로 고생하는 수업을 하는 것이지요. 1년 안에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가기 전부터 갈 나라를 정하고, 독일‧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이 아니라 세네갈‧베트남 등 잘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에 가서 ‘고생’하고 옵니다. 유학을 갔다 오면 인생에서 힘든 고생체험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국제교양대학의 독특한 커리큘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교양대학의 학생들이 전 세계(110개국)로 유학을 가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 110명의 유학생이 온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하고 있어 110개국 학생들이 자연히 어울려 살게 됩니다. 수많은 인종, 수많은 나라 사람과 생활하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이 대학의 첫걸음이지요. 세계를 배우는 것도 열정적이면서 시골 작은 마을의 축제 문화를 전 세계 학생에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일본을 사랑하게 세뇌를 시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전문학교 시스템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의 전문학교와 우리 전문대학의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의 기술발전이나 국가성장은 전문학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도제수업 방식이, 자신의 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려는 장인정신이 전문학교를 통해 전수되어 온 것이지요. 일본 전문학교의 수준이 올라가 이제 전문대학을 따라잡은 수준입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전문대학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전문학교가 차지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입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문학교를 얼마나 발전시키느냐가 해법의 실마리가 될 수 있어요.”

-가나가와 치과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문학을 전공한 제가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가나가와 치과대학의 교수로 있어요. 인연은 뜻밖의 곳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다른 대학에서 대외협력처장을 하면서 가나가와 치과대학의 박물관을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었어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다르게 방문객이 모두 경건하고 엄숙해 하길래 처음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분이 하는 대로 인사하고 들어갔는데, 그곳엔 포르말린에 담긴 시신이 놓여져 있었어요. 엄청 충격을 받았지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니 박물관에는 해부학용 교재로 가나가와 치과대학의 교수와 선배들의 시신이 보관‧전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후학들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해부학 교재로 내놓는 그 정신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얼마 후 제게 교수직을 제의해왔을 때 이 장인정신의 문화가 흔쾌히 수락하는 동기가 되었어요.”

-한국 유학생 유치를 위한 독특한 프로그램이 있다면서요.

“가나가와 치과대학은 일본 최초로 수학능력시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어요. 학생이 수학능력이 있는지만 보고 영어와 일어의 실력을 보지 않겠다는 선언이지요. 대신에 1년간 학교에서 어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어요. 한국인으로서는 치대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한국대학에 붙으면 한국에서 대학에 가면 되고, 또 하나의 선택지로 가나가와 치과대학을 지원하면 됩니다. 별도의 준비기간이 필요치 않다는 게 엄청난 장점입니다. 게다가 인생의 긴 기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가나가와 치과대학을 나오면 일본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한국 국가시험에 응시하여 바로 치과의사로 활동할 수 있고요.”


-‘1더하기 5’ 교육의 장점이 있다면….


“국내에서 유행하는 ‘1더하기 5’와는 약간 차이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가나가와 치과대학의 ‘1더하기 5’는 수학능력이 있는 학생을 뽑아서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일본캠퍼스로, 어학실력이 조금 부족한 학생은 서울의 캠퍼스에서 1년 동안 지내며 학점과목과 일본어를 공부한 다음, 2학년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게 하는 제도이지요. 물론 서울의 캠퍼스에 있을 때부터 가나가와 치과대학에 학적을 두고 있어 일반인의 신분이 아니라 학생의 신분이 보장됩니다.”


-그동안 가나가와 치과대를 나온 한국인 학생은 몇 명인가요?


“103년의 역사 동안 70명 정도 됩니다. 졸업생 중 70~80%가 재일교포였습니다. 일본 국적이 아니면 일본에서 개원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순수 한국 국적의 졸업생이 적었지만, 2년 전 외국인이라도 일본 대학을 나오고 국가고시에 합격한 경우는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된 후 한국 유학생이 도전하기 시작했어요. 현재는 30명이 재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