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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거트루드 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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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거트루드 스타인



무명의 세잔, 마티스, 피카소 발굴 세계적 작가로 육성


인적 네트워크 활용해 자신의 스타인 살롱을 파리의 중심으로

20세기 초 파리 모든 예술가들의 친구


컨템포러리 아트의 흐름에도 큰 영향 끼쳐




▲ 거트루드 스타인<사진 칼만 배쳐텐>, 1935■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1회)-거트루드 스타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소설가인 주인공 ‘길’을 살펴보고 냉정하고도 따뜻하게 비평해주는 걸걸한 여인이 나온다. 바로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1874~1946)이다. 그녀는 미국인으로 파리를 사랑한 아트 컬렉터이자 창조적 작가였으며, 20세기 초 파리의 모든 예술가들의 친구였다.

거트루드는 미술가들, 특히 당시의 무명 시절을 보내고 있던 세잔, 마티스, 피카소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현대미술 컬렉션은 뛰어난 가치를 지니게 되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흐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그녀가 아끼고 후원한 큐비즘과 아방가르드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도 돈독한 친분을 가졌던 이 여인을 만나러 가보자.

나는 당신을 파리의 27 뤼 드 플로레(rue de Fleurus)에 위치한 스타인 살롱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거트루드는 그녀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와 그녀가 아끼는 코랄 브로지에 갈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살롱에 들어서면 앤티크 가구와 조각들과 벽에 걸린 여러 종류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당신의 시선을 끌 것이다. 당신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그녀와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 스타인 살롱그녀는 인적 네트워크를 천부적으로 활용하는 기술로 이 살롱을 파리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20세기 미술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은 대표화가 마티스와 피카소를 서로 소개시켰으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녀의 조언은 진지했고 거침이 없었다.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매섭게 비평하고 논쟁했으며, 때로는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였다. 헤밍웨이도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이는 거트루드뿐이라고 했다. 그녀가 작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는 발언이다. 필자는 그녀의 성품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녀의 강한 성품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필자는 뉴욕에서 유학할 당시 그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피카소가 그녀를 그린 초상화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궁금증을 자극했고 초상화 속의 그녀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 알고 보니 센트럴 파크에도 그녀의 동상이 있을 정도로 아트 컬렉터로서 또 작가로서 조국 미국에 끼친 그녀의 영향력은 컸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도 아방가르드한 그녀의 작품을 표현해주는 ‘거트루드 스타인’(1990)이라는 비디오 조각을 만들었다.

거트루드는 1874년 펜실베니아에서 독일에서 이주한 부유한 유태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5명의 아이를 낳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2명이 사고로 죽게 된다. 그래서 그 수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아이가 거트루드와 레오다. 이들은 함께 독서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고 특별히 친했다. 레오는 버클리에서 편입하여 하버드 법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1년 만에 법이 지루하다고 느껴 학업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유럽의 미술을 접하며 단숨에 매료되어 그는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이탈리아 미술을 보고 배우며 몇몇 작품을 구매했고, 세잔의 작품을 만나 새로운 시도의 작품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거트루드는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1842~1910)의 제자로 심리학을 전공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의학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중간에 포기하고, 1903년 레오가 있는 파리로 와 함께 머물며 글을 쓰고자 결심한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그들은 함께 아트 컬렉팅을 시작한다. 레오는 유명한 미술감정가 버나드 버렌슨(Bernard Berenson‧1865~1959)과 친구였다. 그들의 첫 번째 컬렉션인 세잔의 풍경화도 버나드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아트 딜러인 앰브로이스 볼라드(Ambroise Vollard‧1866~1939)의 파리 갤러리에서 무명 세잔의 작품을 전시한 후 그들은 여러 작품을 구입했다. 고갱과 르누아르의 작품도 구입했다.

그 당시 세잔은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도 잘 모르던 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미술 작품을 컬렉팅 했고 필요한 돈은 첫째 오빠 마이클이 후원했다. 1904년 첫째 오빠인 마이클과 사라 스타인 부부가 파리로 옮겨와 가까이에서 살게 된다. 레오와 거트루드의 집 스타인 살롱은 파리에서 유명한 토요일 살롱이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그들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예술 혁명에 강한 애정을 보인 첫 번째 미국인들이었다.

▲ 마티스의 '모자쓴 여인', 1905세잔의 작품에 이어 ‘야수파’ 마티스(1869~1954)의 작품 ‘모자쓴 여인(Woman with a Hat)’(1905)을 봤을 때 그의 독특한 색채의 사용을 보고 작품성을 인정해 구입하게 된다. 이 작품은 1905년 파리 아트쇼에 선보였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적 가치를 짓밟았다고 비난을 받은 작품이다. 이 두 컬렉터도 구입을 결정하는데 5주라는 시간이 결렸지만 결국 마티스의 파격적인 작품을 선택했다. 마티스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보다는 주관적인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마티스와 이들은 친밀한 사이가 되고, 마티스의 많은 작품들을 구입하여 살롱에 걸어놓았다. 마이클과 사라부부는 마티스의 그림을 매우 좋아해 여러 작품을 컬렉팅 했고, 그 컬렉션은 후에 발티모아 뮤지엄에 기증되었다. 사람들은 이 토요일 살롱에 세잔과 마티스의 작품을 보러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집은 대중을 위한 갤러리처럼 사용되었다. 그녀의 살롱은 뤽상부르 박물관(Musee du Luxembourg) 근처에 있었는데, 그 박물관은 파리에서 유일하게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타인 살롱에 있는 1000점 이상의 작품들은 그 박물관에 전시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스타인 살롱은 현대미술을 위한 하나의 대안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레오가 새로운 작가를 찾던 중 모던 가구샵에서 피카소의 작은 드로잉을 보고, 큰 두 작품을 사서 거트루드에게 보여줬다. 그들은 피카소의 천재성과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때부터 거트루드와 피카소의 깊은 인연은 시작된다. 그들의 예술적 감성은 매우 잘 통했다. 그녀의 조언은 피카소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고, 피카소의 큐비즘은 그녀의 글에 영향을 끼쳤다. 마티스와 피카소도 이 살롱에서 만나 예술적 동반자로서 함께 어울리며 영감을 주고받거나 작품을 교환하기도 했다. 상부상조하는 이런 관계가 참 아름답지 않은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그들의 후원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지만, 레오와 거트루드는 후원자와 예술가라는 상하의 관계보다는 같은 예술가로서, 또는 친구처럼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모습이 한 시대의 예술과 문화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리라.

1913년, 레오와 거트루드는 컬렉션을 분리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취향에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레오는 클래식, 거트루드는 아방가르드를 추구했다. 레오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거트루드는 연인 알리스와 토요 살롱을 유지한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작가와 비평가들이 북적대며 예술에 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20세기를 여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예술가들과 조각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그렸지만 그녀는 피카소의 초상화가 가장 자신을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큐비즘 시작을 열어주었다.

▲ 파블로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 1905~1906최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스타인 가족 컬렉션에 관한 전시가 열렸다. 2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The Steins Collect: Matisse, Picasso, and the Parisian Avant-Garde’란 제목의 전시였다. 거트루드, 레오, 마이클과 사라 부부가 함께 만든 스타인 가족의 컬렉션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을 보여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고, 여러 언어들을 구사할 수 있었으며, 지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망했다. 이 가족은 낮은 가격의 무명작가의 작품들을 수백 개나 컬렉팅 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큐레이터들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파리의 뮤지엄이 협력하여 이 전시를 위해 8년 동안 30권이 넘는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했다고 한다. 한 전시를 위해서 8년 동안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

거트루드에 대해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도 예술을 사랑하는 그녀의 자신감과 도전정신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예술가의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으며, 그들의 친구로서 집을 살롱으로 개방해 새로운 예술의 장을 열었다. 1968년 뉴욕타임즈는 그녀의 살롱을 첫 번째 현대미술관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투자를 목적으로 했다면 파리로 이전했을 때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구입했을 것이다. 물론 레오는 처음에 이름이 알려진 인상주의 작품을 컬렉팅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재정 상태로는 계획을 이루기가 버거웠고 더 젊고 덜 알려진 작가(마티스, 피카소)를 후원하기로 변경한 것이다. 이 변화가 오히려 그들의 컬렉션을 역사에 길이 남을 한 시대를 아우르는 컬렉션으로 남아 전시가 되지 않는가.

예술가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예술가의 작품은 빛이 나게 되고 더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이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으로 인해 주변과 사회가 변하고 후대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형편에 맞는 그림을 구입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보는 것은 어떨지.

/김민희 예술기획가




필자 김민희는 뉴욕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문화예술기획을 하고 있다. 시리즈 「예술가와 후원자 친구들」은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 컬렉터들을 중심으로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