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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2)]제1장 욕망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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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2)]제1장 욕망의 유혹

(2)

그리 생각한 그는 잠시 시야를 넓혀서 산야를 빙 둘러 살펴보다가 가만히 몸을 돌이켰다. 바로 곁의 싸리나무가지에 소복이 쌓인 눈꽃이 스치는 옷자락에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매서운 북풍이 소리 없이 얼굴을 활키고 지나갔다. 엉겁결에 오싹 몸을 움츠리게 한 칼바람이었다.
그제야 귀가 시리고 손발이 얼어붙는 매운 추위를 느낀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놓았다. 여남은 걸음 남짓 내디딘 발길이 닿은 곳은 석굴 앞이었다. 석굴은 그 옛날 원효대사가 수행 정진했다는 전라북도 부안의 한 높은 산꼭대기 밑에 전설을 면면히 간직해온 “부사의 방”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은 듯 다감했다.

언덕이 무너질까 저어해 등으로 버티어 선 거인처럼 산봉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어느 도인(道人)이 제 삶터인 양 심혈을 기울여 쪼아서 만든 방일까? 험악한 바위 안은 의외로 아늑했다. 그리 깊지 않은 석굴의 벽은 곰살궂지 못한 돌 더미처럼 울퉁불퉁 거칠거나 음습하고 칙칙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드나드는 좁은 공간을 내주고 사방을 에워싼 바위는 으슬으슬 냉기를 뿜어내 아무래도 마음을 시리게 했다.

“모닥불을 피울까?”

석굴 안에 들어와 잠시 서성이던 그는 장작개비를 힐긋 바라보았다. 못 견딜 추위에 혹여 몸을 상할까 우려해 쌓아놓은 장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혹한이 여러 번 몰려온 겨울 내내 한 번도 장작에 불을 붙이지 않았다. 얼어붙는 몸이 와들와들 떨릴 때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못내 그리웠으나 그때마다 도를 향한 의지의 불씨가 되살아나 끝내 지피지 않았었다.

그리고 따뜻한 온기의 유혹을 뿌리친 그 의지를 끝까지 지켜 제 몸을 태우는 불나비처럼 극한의 추위에 온 몸을 내 던져 명상에 집중했다. 오늘도 그리했다. 발가락이 떨어져나갈 듯 시려서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쥐었다가 얼른 놓았다. 그러고는 편함을 갈구하는 육신의 본능을 다잡아서 사그라들던 의지의 불씨를 되살려냈다.

“너는 영혼을 떠나보내고 싶었던 뒤안길의 고뇌를 그새 잊었나? 혹한이 살을 엔다 한들 그에 비할까! 육신의 고통쯤 인내 못할 의지라면 도에 이르고자 한 너의 삶의 몫도 없다!”
늘 자신을 향해 채찍질하던 불꽃같은 충고였다. 그리고 가끔 와신상담(臥薪嘗)의 심정으로 처절하게 가슴을 저미는 회한의 추억을 잠깐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五色分人目盲(오색분인목맹)

오색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五音分人耳聾(오음분인이롱)

오음이 사람의 귀를 멀게 하고

五味分人口爽(오미분인구상)

오미가 사람의 입을 썩게 한다.”

한성민이 남긴 뒤안길엔 화려한 욕망(五色)과 영육(靈肉)의 쾌락(五音)과 만족(五味)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회한어린 발자국이 선명했다.

먹이를 찾아 산야를 헤매는 들개 같았었다. 그러나 한 번도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사냥한 먹이마저 다 빼앗긴 채 숨을 몰아쉬는 짐승처럼 지치고 말았다. 남의 먹이를 무자비하게 빼앗아 뜯어먹는 하이에나 같은 인간 군상들이 그리했던 것이다.

이후로 그의 삶은 바위에 부닥쳐 깨지는 파도처럼 부서져갔다. 그리고 삶의 패배자가 흔히 그렇듯 술에 의지해 고뇌와 분노를 쏟아내며 못 이길 현실을 억지로 참아내야만 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