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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3)]제1장 욕망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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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3)]제1장 욕망의 유혹

(3)

한 모금의 술이 없으면 두 손은 덜덜 떨고, 취하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가 아무데고 웅크리고 잠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폭우에 시달리는 풀잎처럼 지쳐 흐느적거리는 육신의 삶을 토막내려했었다.
어느 해 늦은 가을이었다.

일 년째 방황을 멈추지 않던 발길이 덧없이 투덜투덜 흘러간 곳은 땅 끝 해변 가였다. 그는 그곳에서 시커먼 파도에 몸을 내 던져 피안의 언덕으로 떠밀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색(五色.물질적 탐욕) 오음(五音.유혹의 소리) 오미(五味.탁한 취향)에 도취돼 사냥꾼처럼 천하를 헤매던 탕아(蕩兒)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어이 염세(厭世)에 빠져들고만 어리석음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던 아버지처럼 가슴 깊숙이서 바라보며 안타까워만 하던 참 영혼이 꾸짖고 달랬던 것일까?
삶의 버팀목이었던 술을 이번에는 죽음의 골짜기로 용감하게 끌고 갈 사자(使者) 삼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사바(娑婆)의 절벽에 선
순간 자신을 붙드는 불같은 호통이 있었다.

그렇게 내 던질 목숨이 값싸고 처량하지 않느냐는 꾸짖음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울고 또 울어도 울음소리는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묻혀가고 듣는 이도 들어줄 이도 없어 더 서러웠다.

얼마나 울었을까?
제 풀에 지쳐서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을 즈음, 서러움에 동참이라도 하려는 듯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집어삼킬 듯 파도가 더 심하게 덮쳐왔다. 그 파도는 늘름대며 피를 뚝뚝 흘리는 악마의 혓바닥 같았다.

늑대 앞에 떨고 선 사슴이 그랬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무섭게 밀어닥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쳐 파도로부터 떨어져 물러섰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거울 속의 얼굴이 떠올랐다. 욕망의 오색에 무너진 몰골엔 유혹의 오음에 찌들고, 오미에 썩어가는 육신은 뼈만 앙상히 남은 산송장이었다. 광대뼈는 불거져 나오고 훌쭉한 양 볼, 그리고 눈덩이가 움푹 들어간 해골 같은 얼굴.......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다.

“욕망의 유혹에 허덕인 질곡의 삶

魂肉이 썩어도 아니 죽은 한귀(恨鬼)

첫닭이 울면 햇빛이 무서워

음산한 무덤 속 제 주검 안고

피눈물 쏟아 통곡하는 한귀

오늘도,

오갈 데 없는 바닷가에서

비에 젖어 목 놓아 우는가!

아, 한 귀 한 귀 외로운 귀,

천지간에 혼잔가 혼자인 가요!”

하고 비통한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상했다.

아마도 현실을 인정하면 체념이 뒤따르고, 체념은 불씨조차 없는 차디찬 부싯돌이 제 몸통을 깨뜨려 번쩍하고 빛을 쏘아내는 것과 같아서일 것이다. 끝이 곧 시작이니 바닥을 차고 훌쩍 날아오르는 새의 맹렬한 날개 짓처럼 희망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