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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4)]제1장 욕망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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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4)]제1장 욕망의 유혹

(4)

한스러움이 돌변해 저 나락으로 끌고 가든 절망이 사그라든 불꽃처럼 그 처절한 모습이 돌연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승의 화려한 유혹(五色 五音 五味)을 못 잊어 통곡하는 혼백처럼, 인연이 없는 터에서 발광하던 욕망의 추악함이 찰라 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나는 한풀이에 미쳐 날뛴 욕망의 화신이었구나!"

그제야 자책의 절규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태어남은 태어날만한 원인이 있을 것이며, 그 원인은 존재해야 할 몫까지 주어져 있음을 그제야 섬광처럼 깨달았다.

“그런데도 몫이 없는 터전에서 내 몫을 찾겠노라며 물고기가 땅에서 버둥대듯 했으니!”

하고 탄식한 그는 주어진 삶의 몫이 무엇인지를 심해에서 물고기를 건져내듯 숨어있던 천성을 찾아내 끌어올렸다.

바로 도에 이르는 배움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오색에 눈이 멀어 바르게 보지 못하고, 오음에 귀가 멀어 바르게 듣지 못하고, 오미에 사물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체 영혼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 아닌 ”나”의 탈을 쓰고 병신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확인한 그는 두터운 땅을 밀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도를 향한 열망이 치솟아 올랐다. 그 마음은 실로 제어할 수 없는 불꽃같아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소리쳤다.
“파도여! 파도여! 삶의 몫을 찾았노라!

배우고 또 배워서 도를 얻으리라!

파도여, 파도여! 욕망의 파도여!

너는 나를 막지 못한다!“

한성민은 그 바닷가에서 그날 곧 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 해전에 돌아가신 부모가 물려준 논밭을 하나 뿐인 여동생을 위해 여남은 마지기만 남겨두고 다 팔았다. 그런 뒤에 훌쩍 유학을 떠나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공부했다. 십 수 년을 수도승처럼 명상하며 치열하게 배워서 최고의 학위를 받고서야 귀국했다.

그러나 그는 세속의 집단 속으로 또 뛰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주어진 삶의 몫이 아닌 탓에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뒷산 석굴에서 도를 향한 명상수행을 시작했다. 그리한 세월이 금년 겨울까지 어언 3년이었다.

농사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쉴 사이 없이 삼백 예순 날이 두 번 지난 작년까지 명상에 들기 위한 자신과의 처절한 투쟁의 나날이었다. 풀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생각과 생각을 상속시키는 업의 발광을, 도를 그리워하는 심혼(心魂)이 사투를 벌이며 누르고 누르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금년 겨울부터는 예년과는 달랐다. 거미줄처럼 엉켜서 심혼을 괴롭히는 온갖 업의 발광을 거의 다 지워냈다. 이제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 푸른 하늘과 맞닿은 정상을 바라보듯 도의 문이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시시각각 꿈틀대는 업의 뜬금이 문제였다. 사랑을 시샘하는 연적처럼 방해가 하도 심해서 그리운 그곳 주변을 겉돌며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어찌나 질기고 끈적이든지 철옹성을 무너뜨리듯 사투를 벌였던 지난날보다 힘겨웠다.

그렇다고 과거 세상살이처럼 절망하지는 않았다. 금년 겨울과 여름에 뜻을 이루지 못하면 3년을 더 정진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3년........그렇게 죽음에 이를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그리운 그곳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결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