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즉시 정수리로부터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얼굴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이에 더욱 집중하자 머리 가슴 배 허벅지 발 손 할 것 없이 열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벌레가 기어 다니듯 꿈틀댔다. 천지의 氣가 온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기미가 분명했다. 그리고 강력한 의식의 에너지로 둘러싸인 몸을, 몸 밖의 인연이 뚫고 들어와 마음을 발광시키지 않음도 알았다.
그러다가 몸의 어느 곳에서 아픔이나 근지러움이 오면 아프고 근지러운 그곳을 관해서 감각이 없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오장을 관찰했다. 그리고 마음을 몸 밖으로 꺼내 한 번 더 겉을 관찰하고는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관찰하고 대자연을 관찰하여 그 기운을 몸속으로 끌어들였다.
오장이 꿈틀대다가 이윽고는 그 모습이 하나씩 하나씩 의식의 공간에 나타나고 연이어 뱃속 전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뱃속의 똥오줌 가래 침 음식의 찌꺼기 같은 더러운 것들이 사라져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자 그것들마저 순식간에 사라짐과 동시에 고막을 터뜨려놓을 듯 무거운 압력이 귀를 털어 막았다.
그러자 번쩍 눈을 떴는데도 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의식마저 있는 듯 없는 듯 몽매했다. 드디어 두 개의 마음이 하나로 꽁꽁 묶여져 삼매(三昧)에 들어 도에 이른 것일까?
하지만 아니었다.
아직 두 단계가 남아있었다. 도의 문 바로 밑 계단까지 올라 발을 막 디뎠을 뿐이었다. 그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을 의지로 마지막 한 방울 기름을 태우듯 심혼의 불꽃을 한 곳에 집중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지막 계단을 막 오르는 찰나였다. 홀연히 한 여인이 그의 혼불 앞에 조용히 나타났다. 아름다웠다. 미소로 혼을 앗아가는 관세음보살보다 더 아름답다고 그의 혼은 의식하고 있었다.
그나 그 뿐이 아니었다.
보일 것 같던 도의 문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향기가 진동하는 희고 노란 국화 꽃밭이 관능을 자극했다. 그리고 여인은 꽃밭 가운데 물에 뜬 연꽃처럼 소복소복 잘 자란 푸른 잔디를 밟고 서있었다. 감로수 병을 들고 바다 위에 고요히 선 수월보살(水月菩薩)이 저리도 고울까!
“도를 구하는 사람아, 현빈지문(玄牝地門.현묘한 암컷의 문)을 아시나요?”
여인이 뇌사시킬 듯 요염한 미소로 말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들어주는 보살님이신가요?”
대답대신 그의 황홀한 의식은 그렇게 되물었다.
“세상의 소리는 누구나 다 듣는 법, 나의 물음에 대답해보세요.”
“알다 뿐입니까. 그 문 안에 천지지근(天地地根.천지만물을 탄생시킨 근원)인 도가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