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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간 찾아다니는 '현대판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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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간 찾아다니는 '현대판 김삿갓'

[우리 시대 인문학 공간 찾아다니는 '현대판 김삿갓' 이강석 어학원 원장]


"근처 도서관에서 인문학 사색 어때요?"



낮에는 서원‧도서관 돌며 사색의 인문학

밤에는 시장‧식당에서 삶의 인문학 공부


'가치지향' 英학습법으로 공부‧깨달음 두 마리 토끼 잡아



▲ 서울 정독도서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강석어학원의 이강석 원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이강석어학원의 이강석(49) 원장은 매주 월요일이면 포털사이트에서 ‘새로 개관한 도서관’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한다. 도서관이 검색되면 아무리 그곳이 두메산골이라 할지라도 지체 없이 여행을 떠난다. 선인들의 지혜가 살아 있고 펄떡이는 정보가 넘쳐나는 ‘인문학 공간’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전국의 도서관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 그의 인문학 여행은 옛 배움의 공간이었던 향교(공립학교)와 서원(사립학교)으로까지 확장되어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더 나아가 그의 발걸음은 이제 시장·항구·저수지·다방·호수·강·기차·카페·이발소·역 등을 향하며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메모한다.

사실 길에서 얻은 인문학적 사유는 이 원장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어학습 특허를 내기도 한 그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주>


-인문학 공간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옛날에는 사서삼경을 읽으며 자기수양도 하고 입신양명도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잖아요. 그 인문학적 공간이 바로 공립학교인 향교와 사립학교인 서원이었어요. 그런데 향교와 서원은 소수 특권층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중교육의 시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비의 인문학적 사유가 녹아 있는 향교 및 서원과 함께 지식과 정보가 집적되어 있는 도서관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영어라는 학문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 단순히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같은 내면의 성찰이나 인격수양이 되면서도 그러한 능력을 가지도록 하는 ‘가치지향’ 영어학습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기도 했고요.”

-선인들은 한문으로 된 교재를 통해 공부도 하고 수양도 했습니다. 표의문자인 한자가 아니라 글로벌 언어인 영어로도 그게 가능한지요?


“선인들은 천자문이나 소학을 거쳐 사서삼경을 읽으며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정과 국가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어요. 영어 학습도 이처럼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얼마든지 공부와 수양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지 단어를 위한 단어학습이나 문법을 위한 문법학습을 버리고 영화, 소설, 신문, 잡지 등에서 교훈이 될 만한 의미있는 내용으로 교재를 구성해야 합니다. 가치지향 학습법 또는 의미학습법으로 이름 붙여진 이 학습법을 통한다면 저절로 연상이 되어 잘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이 원장은 국내 최초로 가치지향의 키워드 영어학습법으로 특허를 낸 주인공이다. 여기에 길 위에서 길어 올린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결시켜 공부와 인격수양을 동시에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교육실험은 경기 동두천에 자리한 이강석어학원에서 10여 년 이상 실험되어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국인의 영어 공부법에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첫째, 교재를 보지 않으면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 일상적으로 영어를 반복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두 가지 문제점은 비단 영어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본질과도 관련이 있어요. 모든 공부의 공통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지고, 과거의 학습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특히 영어 공부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기억해야 할 영어 단어나 문장의 양이 많아지고 과거에 공부한 내용을 매번 반복할 수 없어서 상당부분 잊게 됩니다. 단순히 암기력에 기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복을 많이 하지 않고도 필요한 상황에서 영어 문장을 떠올리거나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키워드를 통한 가치지향 학습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지요.”

이 원장은 먼저 키워드 단어학습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사람과의 신뢰를 의미하는 ‘believe(믿다)’란 단어 안에 ‘lie(거짓말하다)’가 들어 있는데, 이는 작은 거짓말에도 신뢰가 안 생기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되게 사람을 대하면 상대방에게 신뢰와 믿음이 생긴다고 연상한다. 또 ‘believe’에서 ‘b’를 ‘r’로 바꾸면 ‘relieve(안심하다)’가 되는데, 거짓말 하지 않고 신뢰를 주면 안심하게 된다는 식으로 연상하면 단어를 절대 잊지 않게 된다. 또 ‘trust(신뢰하다)’에서 철자 ‘t’가 떨어져 나가면 ‘녹슬다’는 의미의 ‘rust’가 되는데, 신뢰를 잃으면 ‘마음이 녹슬다’가 되는 식이다.

“똑같은 단어를 공부하더라도 키워드 단어학습법을 택한다면 상황이 연상되므로 거의 잊지 않게 됩니다. 영어도 이처럼 생각과 사유를 하며 공부를 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자기성찰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지요. 우리 가요에 ‘님’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고 했듯이, 영어 단어에도 ‘mean’이 ‘의미하다’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미로 살아야 하지만 상대방을 수단으로 해서 살려고 하면 mean에 s가 붙어 means(수단)가 됩니다. 상대방을 수단(means)으로 보지 말고 의미(mean)로 접근하라는 생각을 가지자고 하면, 두 단어를 기억하게 되지요. 또 ‘relate’는 관계를 맺다라는 의미인데,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목적은 상대를 더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relate’에서 ‘r’을 탈락시키면 바로 ‘고양시키다’라는 의미의 ‘elate’가 되지요. 키워드 영어학습법은 자기 내면의 수양에서 출발해 대인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습니다.”

▲ 모전도서관

-국내 도서관을 다 둘러보셨을 테니 어떤 도서관이 좋은 도서관입니까?


“마음의 양식이 되는 양서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색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환경이 어우러져 있어야 해요. 도서관 위에 테라스가 조성되어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거나 주변에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으면 더 좋지요. 거기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 도서관 내에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사색의 공간으로 적합한 도서관은 가평 조종도서관, 삼국유사 군위도서관, 평창 대화도서관, 남양주 진접도서관, 익산 모현도서관, 일산 덕이도서관, 청양 정산도서관이 있고, 개인적으로 음식이 맛있었던 도서관은 동작도서관입니다.”

그는 여수 돌산도서관과 쌍봉도서관, 강촌 남산도서관, 강원 영월도서관을 시작으로 도서관 여행에 올랐다. 최근에는 고양시 백석도서관, 포항 흥해 이팝 작은도서관, 대전 노은도서관을 다녀오며 무려 전국에 산재한 731개의 도서관을 모조리 답사했다. 전국 도서관을 답사하며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인문학의 흥취를 재발견한 것이다.

-열람실과 독서실로 구성된 도서관은 다 비슷한데 어떤 점에 이끌렸습니까?


“겉으로 보면 외형은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향기가 다르듯이 도서관이 제각각입니다. 뒤에 산을 끼고 있느냐, 또는 앞에 강이 흐르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청양 정산도서관에서 내려다 본 가을 들녘의 황금빛 들판은 잊을 수가 없어요. 경북 군위에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었다고 해서 ‘삼국유사 군위도서관’이라고 명명되었는데, 일연스님 뿐만 아니라 근처에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가 있어 일반 도서관과는 또 다른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요.”

▲ 삼국유사 군위도서관

-경기도 일산에는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도서관이 있다면서요.


“일산에만 14개의 도서관이 있어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서관을 가지고 있지요. 이름이 아름다운 덕이도서관이 14번째로 개관했고, 13번째 도서관의 이름은 재미있는 식사도서관입니다. 특히 식사도서관 뒤에 야트막한 산이 있어 넓은 도서관의 창으로 내다보면 산 바로 밑이 한 폭의 풍경화 같습니다.”

이강석 원장은 국내 최고의 도서관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도서관장인 이용훈 씨가 트위터에 ‘국내 도서관 가운데 건축미가 가장 빼어난 도서관은?’하고 올리자 주저없이 가평의 조종도서관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미술관으로는 의재 허백련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의재미술관’이 한국건축대상을 수상할 만큼 아름답다고 그는 덧붙였다.

-앞으로의 도서관은 어떠해야 할까요?


“지금 새로 개관하는 도서관은 대개 독서실 역할을 하는 열람실을 없애고 자료실 위주로 꾸미는 게 대세입니다. 물론 지방은 아직도 열람실을 겸하고 있지만 도서관 본래의 기능인 책을 열람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곳으로 변해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프랑스의 퐁피두센터는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과 미술관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전 세계의 다양한 정보가 모이는 도서관의 역할이 훨씬 큽니다. 우리도 도서관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 서가가 늘어선 자료실 공간이 아니라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정보공간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 정산도서관

-도서관들이 각종 문화행사를 많이 개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자 도서관에서는 저마다 인문학을 살리기 위한 특강을 유치하고 있는데….


“진짜 인문학 관련 강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인문학을 살리려고 하는 방향이 아쉬워요.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고 인문학을 살리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을 통한 사유를 할 수 있게 훈련시켜야 해요. 도서관은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공간이라면,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은 사유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고 사유하지 않으면 삶에 발전이 없지요.”

-길 위의 인문학을 학생들과 하는 수업에서는 어떻게 접목하는지요?



“영어를 가르치면서 중간 중간 제가 느끼고 깨달은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고, 학부모님들과 상담할 때 가족여행을 떠나보도록 권유합니다. 가령 휴가 때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제가 가본 도서관, 향교, 서원 등을 한번쯤 들러보도록 추천하지요. 번잡한 유원지가 아닌, 조용한 곳에서 잠시 머무르는 것도 삶을 충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저의 경우에는 낮에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정신의 인문학을, 밤에는 시장이나 국밥집에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삶의 인문학을 공부합니다.”


이강석 원장은 국내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한 가지가 아쉬웠다고 한다. 현지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려 읽은 다음, 자기가 사는 근처 도서관에 반납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꿈이다. 지금 당장 개선하기는 어렵겠지만 검토해볼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 청평도서관

-‘영자신문영어공부’라는 다음카페에 동두천 근교 베스트100을 소개할 정도로 동두천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후 급격히 발전한 기지촌(基地村)인 동두천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지요. 미군 부대가 주둔해 있고, 그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상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고향인 전북 부안을 떠나 두 살 무렵 부모님과 함께 동두천에 정착해 미군들이 버린 잡지나 소설을 보면서 영어를 익혔어요. 지금은 미군 이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까지 보태져 더욱 다문화 사회가 되었지요. 마꼰도를 배경으로 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저도 동두천을 무대로 한 영어소설을 집필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게 소망입니다.”


-요즘 영어로 배우는 삶의 지혜를 하나씩 소개한다고 들었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에도 인생의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 단어들을 통해 삶의 교훈이나 지혜를 발견하는 일이지요. 예컨대 ‘clover’란 단어에는 ‘love’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는 여기에서 ‘진정한 사랑은 네 잎 클로버처럼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peace’란 단어에는 ‘pea’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작은 콩 하나라도 나누려는 마음만 있으면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요.”


-특허받은 영어학습법이 해외로 수출되었는데, 해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일본과 중국과 대만 3개국에 ‘특허받은 영어학습법’이 수출되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수출상담을 하고 있어 점차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부분의 영어학습서들이 그림 위주의 단어 학습법에 머물고 있는데 반해 제가 개발한 키워드 영어학습법은 단어나 문장 자체의 본질을 의미와 가치지향적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독창성과 효율성면에서 높게 점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시한 기본 패턴을 중심으로 응용한다면 한 개의 문장이 백 개의 문장으로, 백 개의 문장이 수천 개의 문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게 됩니다.”


이강석 원장은 단어 ‘anger(화)’를 공부할 때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Your best life now)’에서 발췌한 ‘나에게 화가 나있는 어떤 사람에게 같이 화를 내게 되면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When you express anger to somebody who has been angry with you, it's like adding fuel to a fire.)’며 한 발자국 물러서서 화를 참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이 공부도 하고 지혜도 얻는 이강석 영어학습법이다.



이강석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어 공부의 최종 목표는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성찰하고 세상을 통찰하는 능력을 기르는 ‘인문교양의 함양’에 있습니다. 영어 공부를 하면서 접한 좋은 문장들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수준 높은 영어 실력과 인문 교양을 동시에 쌓을 수 있어요. ‘키워드 학습법’이 단순히 문제풀이 기술을 습득하고, 단편적인 사고에 익숙하게 하는 기존의 기능적인 영어 학습법을 고차원적인 공부로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