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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재 선발 노력 뒤늦게 인정받아 홀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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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재 선발 노력 뒤늦게 인정받아 홀가분"

[스페셜-서태열 고려대 평생교육원 원장]

대법원 “고려대 내신등급 산출방식 ‘고교등급제’ 아니다”


공교육 정상화 기여 위해 타 대학과 다른 방식 도입


독도 문제, 경제‧외교력 함께 미래가치지향 관점서 접근 필요


▲서태열고려대평생교육원장
▲서태열고려대평생교육원장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고려대가 지난 2009학년도 수시 입시에 도입한 내신등급 산출방식이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었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다.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수험생 24명의 학부모가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2심과 대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최근 ‘고려대의 내신등급 산출방식은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고교 내에서 동일 교과 내 여러 과목 중 지원자가 선택해 이수한 과목별 원(原)석차등급을 보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확정 판결했다.

당시 입학처장을 맡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서태열 교수(현 평생교육원 원장)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그릇된 오해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고려대가 5가지의 상수값을 동원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려한 노력을 뒤늦게나마 인정받아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 채 ‘고려대가 입시명문고를 우대했다’는 식으로 사회 분위기를 몰아가며 다양한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고자 했던 대학의 노력이 외면 받았을 때 가슴이 가장 아팠다는 서 교수는 <글로벌이코노믹>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편집자 주>

-고려대의 내신등급산출 방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았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일류고 출신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별 학력 차이를 반영한 것이 아닌데도 대학이 제시한 다양한 사실과 물증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한쪽 방향으로 몰아붙였어요. 1심이 끝나고 항소하면서 스토리텔링 하듯 자세하게 고려대의 취지를 재판부에 설명했고, 그것이 대법원에서도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려대가 당시 다른 대학과 전혀 다른 내신등급산출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학입시가 학교 공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 대학의 전문가들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은 것이지요.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은 교과를 통한 교육이 다 수행하지 못하는 내용을 교과 이외의 활동을 통해 보완하도록 하는데 있어요. 그런데 교육현장에서는 이 활동을 ‘비교과(非敎科)’로 잘못 규정함으로써 비교육적인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외국에서도 교과 이외의 교육을 ‘엑스트라(Extra) 교과’라 하여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국영수가 점수 따기 위한 교과라면, 학생들이 교과에서 배울 수 없는 동아리활동, 진로준비, 미래를 위한 자기추구 등이 모두 비교과 영역이지요. 고려대에서는 영어 우수자를 위한 토플 점수만 반영하는 게 아니라 스포츠활동, 동아리활동, 자기계발을 위한 한자검정시험, 한국사능력시험 등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을 가능한 한 다 인정해줘야 한다는 인식아래 어떻게 이를 반영해줄 것인가 고민한 것이 그때 사건의 핵심이었습니다.”

사실 고려대가 새로운 내신등급산출방식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대학입시에서 비교과 영역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예컨대 봉사시간 20시간 이상이면 만점, 출석을 다하면 만점 등을 줬다. 혹시 이번 고려대 입시사태처럼 누가 대학에 딴지를 걸어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대는 동아리활동, 어학활동, 스포츠활동 등 4개 분야로 나누고 학생들의 활동이 진정성을 가지고 적극성을 띠고 있느냐를 중심으로 평가했다. 이렇게 되면서 다른 대학이 전교 학생회장을 지낸 수험생에게 높은 가산점을 준 것과는 달리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 1번항목부터 11번항목까지 꼼꼼하게 읽고 처리하면서 당시 유명무실한 비교과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균형있게 반영한 것이다.

“당시 대학으로선 획기적인 방식이었어요. 원래 입학사정관제의 근본정신도 점수 1~2점 높은 수험생을 뽑기보다 창의적인 인재를 뽑고자 했거든요. 그래서 고려대 정신에 걸맞은 도전이나 개척정신을 가지고 자기만의 무엇을 찾는 학생을 뽑았어요. 물론 이걸로 수시전형 전체를 뽑는 게 아니고 몇몇 전형에서 이 같은 요소를 최대한 반영한 것입니다. 교과부분에서 정해진 9등급 점수도 겉으로는 다 맞추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대학들이 무력화시켰는데, 고려대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 제가 입학처장이 되기 전부터 이를 공식화했어요.”

-소송은 어떻게 해서 시작된 것인지요?

“소송 당사자가 경남 창원의 학부모들이지만 그 배후에는 전 민주노동당대표, 경남 진보교육감에 출마하기도 한 전교조 교사,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등이 있었어요. 소송 제기자들은 처음에는 고려대가 내신산출을 위해 사용하는 상수값이 특목고를 우대하는 고교등급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다가, 그 다음에는 입시명문고를 우대한다로 말을 바꾸어가며 합리화시켰어요. 그런데 고려대 내신산출방식을 따르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특목고를 우대한 게 아니라는 데이터가 단박에 확인이 되요. 1단계를 통과한 학생수를 비교해보면 특목고와 일반고에 차이가 없는데다가 전체적으로는 특목고보다 일반고가 더 유리하게 나왔거든요. 실제 소송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고려대의 과학적인 표준화 등급공식에 적용해보니 손해를 본 게 아니라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오해가 발생한 것인가요?

“내신등급 조정을 표준화한다는 데 오해가 있었던 것이지요. 통계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기본상식이지만 한 번 표준화 한다고 해서 바로 정규분포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려대가 정규분포도를 만들기 위해 다듬는 역할을 했는데, 이걸 조작했다고 비약한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내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조정되는지를 모르고 밀어붙였다고 봅니다. 고교에서 내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학교에서 시험을 치면 원점수가 기재 안 되고 표준화 점수가 학생부에 기록됩니다. 그러면 그 표준화된 점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못 믿는다고 대답하지요. 어느 학교에 우수학생이 몰릴지 아무도 모르고, 그 학교에 계속 우수학생이 몰린다는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교등급제를 실시한다면 대학의 입장에선 굉장히 편하게 입시정책을 펼칠 수가 있어요. 고교등급에 따라 가산점수를 주면 되니까요. 그렇게 하는 게 소송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고교등급제입니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 고려대는 해당 과목의 학교 평균과 표준편차를 전체 지원자의 평균과 표준편차에 따라 다시 표준화했던 것입니다.”

입시정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지난 2009년 고려대입시사태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등 소위 ‘SKY대학’에 많은 합격자를 보내는 특목고의 경우 내신등급이 불리하기 때문에 수험생 대부분이 수능으로 지원하고 수시로 지원하는 수험생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2013년 서울대 입시를 분석해봐도 예술고를 제외한 특목고는 대부분 수시보다는 정시에서 합격자를 배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모 국공립대 총장님도 자기도 수학을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해요. 그래서 고려대가 적용한 상수값 5개 중 특목고를 위해 작동하는 건 없지 않습니까, 라고 여쭈었어요. 전체 지원자의 평균 내신등급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도록 했을 뿐 고려대가 마음대로 몇 등급에서 조정하라고 값을 주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그 분이 아무튼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말을 해요. 참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고려대가 특목고를 우대했다는 객관적인 통계가 전혀 없는데도 어떻게 하든지 ‘고려대가 특목고를 우대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 것이지요.”

서 교수는 고교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가령 성적이 좀 부진한 학생이 A과목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B과목을 선택할 때 성적이 우수한 어떤 학생이 점수를 잘받기 위해 A과목을 선택할 경우 당연히 유리하게 된다. 이 같은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학교별 차이는 제외한 채 해당 과목의 학교 평균과 표준편차를 전체 지원자의 평균과 표준편차에 따라 다시 표준화 한 게 고려대의 내신등급산출이다.

-학생들이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유불 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과부는 난이도를 조정해서 문제점을 없애겠다고 공언하지만 사실은 해마다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난이도 조정을 가능하다며 시도하기 때문이지요. 두 과목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도 힘드는데 11개 과목의 난이도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나요? 통계학자에게 물어보면 여러 개 과목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난이도를 조정하려면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처럼 통합수능이 되어야 가능해요. 학생들에게 선택의 다양성을 주면서 난이도를 조절하겠다는 건 넌센스입니다.”

-1995년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통합수능으로 가자고 해놓고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통합수능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모르겠다며 반발하는 바람에 정착이 안 되었어요. 통합수능으로 가는 게 정상이에요. 교사는 열심히 가르치는 거고 문제를 맞추고 못 맞추고는 학생의 문제이지요. 교사가 학생들이 문제를 잘 풀 수 있도록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학교교육이 정상화 안 되는 거지요. 모든 고교들이 오로지 대학입시에 초점을 두니까 어떤 시험이 나오더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않는 겁니다. 통합수능은 공교육 정상화의 밑거름입니다. 교육당국도 학교를 다양화 시켜야지, 학생들이 듣는 과목을 다양화 한다고 해서 교육이 발전하지 않아요.”

-MB정부가 들어서면서 사교육을 잡는다며 도입한 EBS연계 70% 시험출제가 공교육을 망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학생들이 교과 이외의 교과활동을 하도록 유도했던 고려대 방식이 좌절되는 바람에 국내 입시정책도 상당히 후퇴했어요. 게다가 교육당국이 EBS연계 출제방식을 선택하면서 공교육은 더욱 엉망이 되었어요. 고교 일선 교사들은 몇몇 EBS강사들의 보조교사로 전락함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되었고, 교육당국이 EBS라는 특정업체에 돈벌이 할 수 있는 특혜를 준 꼴이지요. 이런 걸 교육정책이라고 내놓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한다면 대학에 자율성을 더 줘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려대 입시사태의 당사자로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대학입시는 전 국민의 관심사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장하고 매도하는 등 우리 사회가 아직 덜 성숙된 것 같아 가슴이 아팠어요. 고려대가 하고자 했던 입시의 본질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가능한 한 반영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반영해줌으로써 학생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대학과 고교를 연계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대법원에서의 확정 판결이 대학의 입시부정이 아니라 교육의 발전을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받았으니 다시 창의적인 인재선발과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입학처장으로 계실 때 논술캠프를 실시하는 등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입학사정관제와 마찬가지로 논술부분도 정상화시키고 싶었던 부분입니다. 논술출제 방향을 캠프를 통해 다 공개해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것인데, 하지도 않은 입시부정을 했다고 사회가 매도하면서 추진력을 많이 잃어버렸죠.”

-요즘 대학의 입학사정관제를 보면 마치 TV프로그램의 오디션을 연상시킵니다.

“입학사정관제의 기본 취지는 학생에게 교과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해도 도전정신이나 창의력을 가지고 있으면 입학기회를 주는 데 있어요. 그런데, 현실을 무시한 채 ‘개천에서 용을 찾는 식’의 이벤트 위주로 가고 있는 건 정말 잘못된 입시정책입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이벤트성으로 진행된다면 큰 일 납니다. 입학처장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의 MIT처장과 교류하면서 소수의 재능있는 학생을 선발했을 경우 관리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 학생이 수학능력을 가지기 까지 보살핌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틀리고, 잘하는 일과 정말 잘하는 일이 틀립니다. 하지만 지금의 입학사정관제는 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기보다는 쇼같은 방식으로 인재를 찾아내려 하고 있어요. 그건 다른 분야에서는 몰라도 교육에서 할 일은 아니지요.”

-지난 2년 간 한국사회과교육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을 꼽으신다면?

“학회 50주년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과학학회로는 효시인데다가 전국 13개 지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무엇보다 학교현장과 학문연구를 연결시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산증인의 역할을 해온 학회답게 지난 50주년 행사에서는 학술지 특집호와 함께 전통과 민족성, 시민정신, 그리고 국가정체성을 아우르는 이슈를 다루면서 집중적으로 조명했어요.”

-황실학회 회장도 맡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황실학회는 황실복원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연구하는 학회이지요. 이석 황손과 전주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해 단절된 황실의 전통을 복원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대한제국의 황실이 일제에 의해 단절된 탓에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황실이 복원되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독도뿐만 아니라 한일 역사 전반에 걸쳐 왜곡을 하고 있는데, 가장 심한 왜곡은 무엇입니까?

“역사왜곡 중에서도 식민시대에 일어났던 부분을 가장 크게 왜곡하고 있어요. 식민 지배를 합리화 하는 과정에서 역사왜곡이 많아요. 독도의 경우 1905년 일사늑약을 맺으면서 일본은 독도를 강제로 편입한 후 지금까지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어요. 물론 역사왜곡 과정에서 우리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 요즘은 자료를 많이 발굴하고 연구가 활발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의 속성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넓은 시각에서 일본이 왜 독도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미국이 왜 일본편을 드는지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일본이 미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전부터 노력을 했어요. 민족자결주의로 유명한 루즈벨트 대통령조차도 친일파에요. 일본의 역사왜곡이 결코 단기간에 단순하게 일어난 게 아니라 굉장히 오랜시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프로세스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영토문제와 역사왜곡은 국력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국력이 있다면 일본이 감히 역사왜곡을 꿈꿀 수 있을까요? 일본이 제국주의시절 차지했던 만주땅을 지금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건 중국의 국력 때문이지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왜곡은 이미 1980년대부터 증거자료들을 축적해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도 한순간 벌컥 화를 낼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한 예로 외국의 도서관에 독도를 알리는 일본책이 많은지, 한국책이 많은지를 비교해보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역사왜곡은 국력을 키우고 외교 및 미래전략과 맞물려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동남아시아를 우리의 파트너 국가로 만들어 놓으면 일본이 아무리 역사를 왜곡해도 소용없게 됩니다.”

-우리는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하는 교사들이 많아 충격을 받았어요. 전쟁을 겪으신 분들은 남침을 너무나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지만 요즘 학교현장에서는 남침을 증명하는 소련 외교문서를 보여줘도 소용이 없어요. 한국전쟁이 남침이라고 하면 교사가 왕따 당하는 게 우리 역사교육의 현실입니다. 사회적 불신이 국가관과 역사관을 이렇게 만들었지요.”

서태열 교수는 한국 사회의 불통(不通)의 문제가 역사교육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내용이 진실이고 사실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이념을 기준으로 자기에게 유리하면 진실이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실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산업화를 통해 만들어진 이기심 탓으로, 좌우이념을 내려놓고 진실과 사실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과 진실을 떠나 바람잡이를 하고 쇼처럼 사안(事案)을 끌고가서는 안 됩니다. 쇼는 끝나고 나면 언제나 허탈하지요. 사실과 진실은 기호와 취향의 문제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젠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