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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156)]제9장, 道가 없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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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156)]제9장, 道가 없는 역사

한성민은 짐을 챙겨서 차에 실어놓고 운전기사더라 기다리고 있어라 하고 아내를 데리고 룸비니 동산으로 향했다.

도리천에서 천제환인 연등불전에 공양을 올리던 석가세존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마야 부인의 태에 들었다가 태어났다는 그곳은 황량했다.
아름다웠다는 옛 꽃들은 한 송이도 없고, 대신 너른 동산에 잔디만 파릇파릇했다.

그러나 세속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가지를 붙들고 해산했다는 그 나무는 초연히 서있었다. 본래 그 나무인지 아니면 몇 대 자손인지 알 수는 없으나 서너 아름이나 되는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지가 치렁치렁 땅에 닿을 듯 늘어뜨렸다. 제 몸을 붙들고 태어난 부처의 가피를 입어서일까? 2500년의 긴 세월을 병 없이 잘 견뎌서 그날의 환희를 오롯이 품은 듯도 했다.

최서영은 혹 자신이 소중한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손에 닿는 가지는 다 쓰다듬다가 한 가지를 붙들었다. 그리고 마야부인이 그랬듯 잡아 매달려 당겨보다가 활처럼 휘어 부러질 것 같아서 놓았다. 힘들어하던 가지가 재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고 그녀는 살며시 웃음지어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내려가서 마을을 둘러봅시다.”

한성민은 아내가 지은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얀 치아를 드러낸 모습이 귀여워서 마주 웃어주고는 손을 잡아 걸음을 옮겼다.

“마야부인이 해산하고 몸을 씻었다는 연못은 어디쯤에 있어요?”
최서영은 기왕이면 그 연못에 가서 손이라도 씻고 싶어 물었다.

“그 연못은 흙 속에 묻힌 지가 오래인 것 같소”

아내가 마야부인의 해산을 추상(追想)하는 것일까? 눈동자에 맺힌 동경(憧憬)의 빛을 발견하고는 사라진 연못을 아쉬워하였다. 하지만 옛 것은 모습을 감추기 마련이니 어쩌랴! 그 연못을 상상으로만 그려보며 동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동산 근처 한 마을에 접어들었다.

흙으로 쌓아올리고 지붕이 평평한 두어 채의 허름한 집을 지나 골목길에 들어서자 열 한 두어 살쯤 되는 계집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짧은 치맛바람으로 흙먼지가 잔뜩 묻은 두 다리를 무릎 위까지 내놓고 신나게 자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사내아이와 계집아이가 마주앉아 공기놀이를 하느라 시간을 잊은 듯했다.

“어머, 아이들이 공기놀이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우리와 또 같네요?”

최서영이 신기한 듯 엉겁결에 놀라워했다.

“원주민 마을에 가면 사람들의 생김새도 우리와 다르지 않소. 서울 거리에 서있으면 아무도 구분하지 못할 게요. 그래서 당신한테 보여주려고 일부러 이곳에 온 것이오.”

한성민은 아내가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만리타국에도 한민족의 혼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부인 못할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이 마을을 찾았던 터라 아내의 놀라움은 당연했다.

“어머, 그래요?”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에 달려온 듯 놀랍고 신비로운 눈동자를 반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