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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재래시장 왜 죽어가는가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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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재래시장 왜 죽어가는가 했더니...

“불경기, 불경기 이러다간 혁명 일보직전”

[글로벌이코노믹=김종일 전문기자] “대통령을 여러 명 배출한 도심더(도시입니다). 근데 우째(어떻게) 이리 (살기)힘듬니껴?(힘이 드나요?)”.

대구광역시에서 속칭 가장 잘나간다는 서문시장 상인의 말이다. 초로(初老)의 길목에 선 상인의 둥근 눈망울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 12(일요일)과 14일(화요일)에 동일한 장소를 같은 시간대에 방문 취재했다.

인터뷰에 응한 상인들의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가게 보증금 이자와 월세 및 관리비 등을 제외하면 집으로 가져 갈 돈이 없다는 것이다.

상인들의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12일과 14일 정각 12시. 1층 먹자거리.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특유의 목소리 높은 왁자지껄한 구석은 찿아 볼 수 없었다.

4구역 2층,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 정겨운 모습들만이 텅 빈 상가를 지킬 뿐이었다.

이따금씩 4000원짜리 백반을 머리에 이고 배달 다니는 아주머니의 똬리가 눈에 들어왔다. 종종걸음으로 2구역 2층으로 서둘러 갔다.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제법 있는 곳이었다.

기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절간 생활소품들을 파는 상인들이 잔뜩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라는 나름의 기준이 섰기에 들렀다.
그러나 기자의 생각은 공염불에 그쳤다. 스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2시 20분 경이었다. 같은 건물 내, 아이용품을 파는 곳도 젊은 여성들을 위주로 장사하는 옷가게들도 손님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여성 의류코너 A사장(30대. 여)은 “집에서 먹고 노는 게 훨 나아요”라며 “사는게 사는게 아닙니더”라고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빚이 빚이...”라며 읊조리던. 여인의 눈빛은 잊지 못하게 만드는 절규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잃을 것이 더 이상 없다는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기자를 고개 들지 못하게 했다.

A사장은 “애들 (용품)파는데는 그나마 나아요”라는 말에 아이의류와 신발을 파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아동용품 가게 B사장(20대 말 내지는 30대 초반 여성. 나이를 극구 밝히지 않았다.)은 “턱도 없심더. 마진이 없어얘. 인터넷으로 (젊은 사람들이)죄다 구매하니까니 진짜 (남는 것이 없어)힘들어얘”라고 푸념했다.

기자는 10분가량 지켜봤다. 묻는 사람은 두 사람. 그러나 정작 이리 고르고 저리 고르다 어딘가로 향했다.

사진 찍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가 점포마다, 점포 주인의 핸드폰 번호까지 적혀있는 상황이라서 자칫 사진을 잘못 찍다가는 기자가 멱살 잡히는 상황이 돌발할 것 같았다. 분노의 덤터기를 쓸 판이었다.

정도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했다. 생선가게는 국산 타령의 철없는 정책으로 인해 거래형성이 대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초라했다. 생선가게 주인 C씨(50대 남)는 “수입산은 무조건 나쁘다는 부정적 인식의 확대로 국산 생선가격이 치솟아 정작 서민들이 사먹을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생선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산한대구서문시장좌판.대구중구서문동서문시장1지구에서장을보러나온시민들이생선좌판앞을지나치고있다.
▲한산한대구서문시장좌판.대구중구서문동서문시장1지구에서장을보러나온시민들이생선좌판앞을지나치고있다.
손님으로 보이는 아줌마(40대 후반으로 추정)도 거들었다. “월급 2백만원 받아 가지고 월세 내고 새끼들 가르치고 경조사비 내고 차비 빼면 뭐 남는게 있는교?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비싼 제주산 은갈치 사먹을 수 있겠는겨? 물 좋은 거 2만원합니더. 사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교?”라고. 그녀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기자는 생각했다.

섬유의 도시 대구는 포목과 원단으로 국내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문시장 포목상가 역시 찿는 사람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원단상가내 점포주 D씨(50대 여성)는 “우리나라에는 3년치 재고물량이 쌓여 있다”며 “경기가 바닥나도 완전 바닥났다”고 했다. 그녀는 “불경기 불경기...이러다간 혁명나예”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상가로 전락한 대구 서문시장의 침체 원인을 생각해 봤다.

첫째, 정부의 철없는 정책이 재래시장을 죽였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재래시장을 노년층과 여성적 관점에서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뭔가 재래시장에 가면, 인정이 넘치고, 흥정이 되고, 제품이 다소 하자라도 있는 듯 온정주의(溫情主義)위주의 정서를 머릿속에 담아 정책으로 뱉어 낸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종합해서 정부가 남성과 소노년(小老年)층을 배제한 재래시장성장정책을 입안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다. 재래시장 역시 자본주의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커다란 잘 못이다. 재래시장이 됐건, 과학화된 시장이건 간에 자본은 무차별하다는 점을 정부 정책 입안자들이 간과한 행위가 재래시장을 고사직전으로 몬 장본인이라는 판단이 섰다. 재래시장은 싼 것만을 팔 것이라는 임의적 사고(思考)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도 크다. 외형적 일본식 시장 분위기를 연출하여 결국 리모델링 업자의 배만 불리운 이른바, 골프장 흥정 마인드-내실 없이 언론을 활용한 홍보 위주의 삼류 로비행위-도 재래시장을 죽이는데 한 몫 했다. 시장은 가격과 제품의 질서가 조화로울 때 행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한 셈이다. 두 번째, 되풀이되는 상품순환구조의 개선점을 찿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래시장은 처음부터 소량의 접근에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 집하와 분류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시와 같이 중형급 도시가 갖는 시장의 특성과 각각의 제품들에 대한 독립성을 무시한 채 대형마트에서 행해지는 계량화 정량화 정책을 재래시장에도 한치의 오차 없이 적용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대구시와 영천시 중간에 사는 농민이 생산한 ‘갑’이라는 제품을 시장에 가져와 판매가 이뤄지는 순간까지 드는 생산비, 물류비, 자릿세 등이 이미 대형매집상 가격의 배에 가깝다. 따라서 농민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매집상의 저가수매에 응하게 되고, 농민 품을 떠난 상품은 국산이라는 국수주의적의 브랜드로 포장되어 재래시장에 물건으로 진열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게 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고객이 재래시장을 외면하는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다. 이미 가격이 오를 만큼 치솟은 상태에서 재래시장을 꽃으로 장식한다손 치더라도 고품질 상품을 저가로 판매하는 대형유명마트와 경쟁이 될 수 없다. 재래시장이 죽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는, 재래시장을 무조건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이다. 시장의 원칙으로 접근하여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간접자본(SOC) 차원에서 정부의 직간접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고자하는 정책이 셋트플레이를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 등 정부 각 기관들이 제각각으로 정책과 집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부처 정서주의가 재래시장을 죽이는 원인으로 작동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