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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횡포 차단’ 美ㆍ獨 공정경쟁, 日 사전예방에 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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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횡포 차단’ 美ㆍ獨 공정경쟁, 日 사전예방에 치중

주요 선진국과 한국의 불공정거래 규제 내용 비교

주요 선진국 대·중기거래 규제 취지 유사, 한국보다 시장경쟁 보호 더 중시

美 일부 규제 ‘정치적 산물’ 논란 불구 존속…獨카르텔청 기업거래 ‘노터치’
▲KT(회장이석채)가협력업체동반성장의일환으로추진하는무선이론및실무교육장면.
▲KT(회장이석채)가협력업체동반성장의일환으로추진하는무선이론및실무교육장면.


[글로벌이코노믹=이진우 기자] ‘갑(甲)의 횡포’가 우리 사회를 온통 들끓게 하고 있다.

포스코 계열사 임원의 항공사 여승무원에 대한 비인격적 행위, 남양유업의 대리점에 제품 밀어내기 강요와 막말 언행 등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사회적, 경제적, 성별의 우월적 힘과 지위를 지닌 개인이나 집단인 ‘갑’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을’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불공정, 불균형, 부정의 형태로 남용한데 따른 국민적 공분과 지탄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시정하려는 움직임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운동기간의 핵심 이슈였던 경제민주화도 다름아닌 ‘갑’ 대기업과 ‘을’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간 불공정·불균형의 거래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적 시도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와 기업, 학계에서 나란히 추진하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3.0은 바로 대한민국 경제성장에 중증질환인 갑을간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여 생산적 상생의 동반자 시대를 구축하려는 정책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반성장3.0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를 올바르게 고치기 위한 규제 내용을 중심으로 일본,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불공정거래 규제 내용들을 살펴보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본다. <편집자주>



■한국

우리나라는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국정과제로 제시하기 전에도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남용 행위를 통제하는 법적 수단으로 공정거래법이 시행돼 왔다.

1975년 제정된 공정거래법은 민법인 계약법만으로 불공정거래에 따른 중소기업 보호가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라는 국가권력을 이용해 대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시정조치하고 과징금과 벌금을 부과해 제재하도록 했다.

이어 1984년 일본의 하청대금지급지연등방지법을 모델로 삼아 다시 특별법인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공정거래법으로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남용 내용을 입증하는데 어려움과 부담을 느낀 공정위가 입증 부담을 덜기 위해 당시 행정부 지정고시였던 하도급거래상의 불공정거래행위를 특별법으로 격상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06년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이 제정되면서 위탁기업(대기업)의 납품물품 수령거부 및 감액, 과도한 저가 납품대금 강요, 수탁업체(협력업체)에 추가 제조비용 전가 또는 증액 등을 금지시켰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여야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법을 추진,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부당단가인하, 발주취소, 부당반품 등 행위에 피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부과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련의 정부 조치들은 중소기업 보호를 통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대기업쪽 재계는 공정거래 관련 제도들이 규제 일변도라며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납품단가연동제와 납품단가 조정권 부여에 대해 “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을 무시한 것”이라며 “납품단가 조정권은 정부가 카르텔을 만들어 준 꼴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품질 향상 노력을 후퇴시킬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가전업체NEC의해외전시회모습.
▲일본가전업체NEC의해외전시회모습.


■일본

일본도 1956년 하청대금지급지연등방지법(하청대금법)을 제정,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주요 내용은 ▲지급기일에 하청대금 미지급 ▲발주 금액보다 낮은 감액지급 ▲과도하게 낮은 하청금액을 부당하게 강요 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한편, 납품계약시 수급업체에 계약 주문서를 교부하지 않을 경우 5000만엔 이하 벌금 부과 등의 벌금형을 포함하고 있다.

2009년 11월엔 하청대금법상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이른바 불공정 업종의 감시를 강화하고 시정조치를 취하기 위한 중소사업자 거래공정화 추진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이 프로그램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컴플라이언스(하청법 준수) 체계를 구축해 독점금지법 위반행위 업종에는 강습회 실시와 함께 해당 대기업의 법 준수를 압박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 사내 컴플라이언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한편,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도 조직내에 우월적 지위 남용사건 테스크포스를 설치해 법 이행 여부를 철저히 감시했다.

이밖에 일본 정부는 하청중소기업협회에 하청거래 알선권을 부여하는 하청중소기업진흥법을 만들어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하청거래사업을 운용하고,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납품단가 연동제와 유사한 원재료 가격 변동분을 대기업이 보전해 주는 ‘차액보전제도’도 도입하는 등 바람직한 기업간 거래 사례(Best Practice)를 확산해 나갔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주요국의 기업간 거래규제’ 보고서에서 “일본은 하도급관계의 기본 내용을 규율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하지만, 우리가 사후적 분쟁해결 및 강력한 처벌을 통한 공정화에 중점을 뒀다면 일본은 분쟁발생의 사전적 예방 중심의 규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국

미국은 한국, 일본처럼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간 하청거래의 불공정성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하는 제도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시장의 역할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기업 풍토에서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에 따른 손해 구제는 기업간 해결(민사해결) 원칙에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소기업과 소매업자를 보호하거나, 기업 인수합병(M&A)에 발생하는 경쟁 저해, 소비자 불이익을 차단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은 마련돼 있다.

1936년에 제정된 로빈슨-팻맨(Robinson-Patman)법은 제조업자의 가격차별 행위를 금지하는 연방법이다.

체인점이 제조업자로부터 제품을 소매업자보다 낮은 가격으로 구입 판매한데 따른 소매업자의 가격 경쟁력 상실을 막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로빈슨-팻맨법은 당시 정치적 의도로 탄생한 법으로 오히려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소비자에 더 싼 가격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경쟁정책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반론에도 이 법은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법으로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연방거래위원회(FTC:Federal Trade Commission)의 활동과 규제 조항을 명시한 FTC법이 있다. 이 법에 의거, 위원회 산하의 경쟁국과 소비자보호국이 주도적으로 기업의 불공정한 부의 이전 방지, 소비자 선택을 제약하는 요소의 제거를 진행함으로써 시장 실패 기능을 방지하거나 교정하고 있다.

M&A의 반시장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법적 장치로는 클레이튼(Clayton)법, 셀러-케포버(Celler-Kefauver) 반합병법이 있다.

클레이튼법은 경쟁을 감소시키거나, 독점을 유발시킬 수 있는 경쟁기업 인수를 차단하는 내용이다. 경쟁사를 없앤 특정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독점구조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없애겠다는 목적이다.

셀러-케포버 반합병법은 M&A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키운 기업이 독점지위를 내세워 소비자에게 가격 착취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독일

강소기업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독일은 시장경쟁에서 공정거래 보장과 대·중소기업간 도급계약에서 중소기업 보호를 우선하고 있다.

그 핵심을 이루는 법 제도로는 경쟁제한억제(GWB)법, 민법의 도급계약 규정을 꼽을 수 있다.

경쟁제한방지법은 시장지배력을 지닌 대기업이 공격적으로 시장경쟁질서를 훼손하고, 그에 따라 경쟁사업자인 중소기업의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적 장치다.

시장지배 대기업의 경쟁질서 저해 행위로는 약탈적 가격(할인) 설정, 부당한 염매(리베이트) 행위, 끼워팔기 등이 포함돼 있어 특정 시장에서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이 법은 중소기업들의 카르텔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을 둬 중소기업간 협업 및 제휴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독일 민법(BGB)은 대·중소기업간 도급계약 관련 도급인(대기업)와 수급인(중소기업)의 의무와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특히 수급인이 예상치 못한 문제로 비용 증가로 도급인과 최초 계약의 대금의 의미가 없을 경우 그 급부를 거부할 수 있는 ‘수급인의 급부 거절권’이 규정돼 있으며, 같은 연장선상에서 도급계약 이후 현저한 조건 변경이 발생해 당사자에게 심각한 불공정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경우 조건변경을 일정 정도 인정하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두고 있다.

이밖에 독일은 건축, 조달 등 하위법규에 하도급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불공정한 계약 조항의 사법상 무효 조치, 납품 완료 즉시 대금지급(납품 후 2개월 이내 대금지급 금지) 등으로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고 있다.

1958년 설립된 독일연방카르텔청은 기업간 합병, 시장독점, 가격담합에 관련된 사항들을 조사·감독하는 재경부 산하조직이지만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카르텔청은 시장경쟁을 유도하는 역할을 할뿐,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와 달리 대·중소기업간 거래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자료 도움=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중소기업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