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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교두보 '美UCLA 한국음악과' 폐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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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교두보 '美UCLA 한국음악과' 폐과 위기"

[스페셜]UCLA한국음악과 살리기 앞장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年 13만달러 마련못해…이번에 사라지면 학과 개설 다시는 힘들어


재정지원에 정부는 물론 기업·국악계·독지가들 한마음으로 나서야


3분박 리듬의 한국음악은 생명과 자유를 표출하는 독창적인 음악


국악학술단체와 연대 내년부터 5년간 '명인명창의 예술세계' 조명"

▲서한범단국대명예교수
▲서한범단국대명예교수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미국 UCLA 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족음악대학이 있다. 민족음악대학 안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 브라질, 멕시코, 미국재즈 등 각 대륙의 종족음악과 함께 한국음악과가 개설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음악과만이 재정난으로 거의 폐과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10년 넘게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야한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해 온 서한범 박사(단국대 명예교수)는 “지금 현재로서는 너무나 절망적이다. 한번 학과가 폐과 되고 나면 다시 개설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음악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전진기지이자 교두보인 UCLA 한국음악과를 살리는데 정부와 기업, 국악계, 그리고 뜻있는 독지가들이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이끌고 있는 서 박사는 UCLA 한국음악과의 폐과를 막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단국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명예교수로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한편, 일반인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글쓰기와 맛깔나는 국악해설로 공연현장을 누비고 있는 서 박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신데, 한국음악과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1970년대 이후 UCLA 민족음악대학 내에는 각 대륙의 소수민족들이 지켜오고 있는 9개 지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학과가 개설되었지요. 아시아 지역의 한국음악학과를 비롯하여 중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과 인도, 남미나 북미의 음악 등입니다. 한국음악학과에서는 가야금을 비롯한 여러 악기와 사물놀이, 성악일반, 무용까지 포함하여 실기와 이론을 겸한 한국음악 전반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UCLA안에 한국음악과가 있다는 걸 한국인들이 잘 몰라요. 국악인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에요.”

유럽 음악을 제외한 각 대륙의 전통음악이나 소수민족들이 지켜온 고유한 음악들을 비유럽음악 또는 종족음악으로 불렀으나 일반적으로는 민족음악으로 분류한다. 유럽 이외 지역의 음악들은 음악의 범주에도 못 들어가는 격이 낮은 음악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UCLA 민족음악대학은 각 나라의 고유음악을 보존 연구해온 세계적인 명문이다.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9개 민족음악을 골라 설치했는데, UCLA 재학생은 학기마다 6개국의 민족음악을 공부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한국음악과는 매학기 400명의 수강생이 몰려들 정도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한국음악학과에는 관현악기 클래스, 타악기, 무용, 이론 등 기초부터 고급반에 이르는 20개 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공 학생은 물론, 교양강좌로 한국음악을 수강하는 학생이 연 400명에 이른다는데, 어떻게 해서 폐과위기에 몰렸습니까?

“지난 2004년 주정부 예산이 삭감되면서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지원금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60%를 주정부 예산, 40%를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영구 기금 약 20억원이 준비되지 않은 한국음악과의 경우 매년 자체적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폐과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10년 전부터 폐과위기에 내몰렸지만 주임교수인 도날드 김(한국명 김동석) 교수를 비롯해 졸업생들과 독지가들이 발로 뛰며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지난 달인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적인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악인들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문제입니다. 심각합니다.”

김동석 교수는 국악고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국악인이다. 그의 주전공은 가야금이나 가야금 외에도 거문고, 단소, 해금 등의 악기도 잘 다루고 시조와 가곡, 민요 등의 성악에도 능하며 춤 실력도 대단하여 실기와 함께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음악과가 그나마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동석 교수의 활동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김 교수가 설립한 ‘코리안 뮤직&댄스 그룹(Korean Music and dance group)’이 그 동안의 실적을 인정받아 미 교육청에서 선정한 초‧중‧고의 특별 예능프로그램을 교내에서 강의할 수 있는 단체가 된 것이다. 각급 학교는 교장의 임의대로 외부 공연단체를 학교 안에 초청할 수 없고 교육청이 인정한 프로그램에 한하여 학교 방문 초청공연이 가능하도록 제도화 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방문 강연과 공연활동을 통한 수입 전액도 당연히 학과에 기부해 왔다. UCLA 한국음악과가 폐과 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 부산의 한 입시학원(서전학원)이 해마다 5만불을 지원해 주어 그동안 큰 힘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학원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3년 전에 지원금이 끊긴 상태에 있다.

-다른 나라 음악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도 본국이나 교포사회에서 영구기금을 마련해 주어서 안정적으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음악과는 최고의 인기학과임에도 불구하고 교포사회는 물론, 한국 정부나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겨우 한해 한해를 정말 힘겹게 넘겨왔단 말입니다. 연간 최소 13만불, 한화로 1억 5000만 원은 지원되어야 운영이 가능합니다.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악기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악보 제작이나 구입, 악기수리, 실습자료, 전시관 관리, 공연실습을 통한 의상이며 소도구, 기타 실습이나 수업을 위한 준비물 등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과 운영을 위해서는 교수 한사람만으로는 이론과 실기를 모두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공에 따른 강사의 초청도 필요하거든요.”

-지난 2001년부터 ‘Korean Music Symposium 강연 및 연주시리즈’를 개최해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음악학과에 교강사 분들이나 수강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어야지요.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외국인들, 특히 미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음악을 어떻게 대하고 평가할까’ 하는 점이 늘 궁금했어요.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는 해가 1982년도였는데, 당시 나는 서울대 국악과에 출강하고 있었어요. 마침 기회가 되어 국악과 학생 30여명의 음악감독으로 미국의 대학을 순회공연 하게 되어서 동부의 예일대에서부터 서부의 시애틀과 LA, 하와이대에 이르기까지 약 2개월 동안 30개 대학을 방문하며 한국음악에 관한 특강과 함께 공연을 하였지요. 지금도 기억에 분명한 것은 당시의 반응이 대단했다는 점입니다. 교포분들은 물론이고 미국 대학생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의 전통음악은 외면당하는 처지였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어요. 금속성의 차가운 음색과는 달리 한국 전통음악의 식물성 소재가 주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경험한다는 것은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관람 자세가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했어요. 특히 우리음악의 중요 요소인 리듬믹 패턴, 즉 장단형(長短形)에 관한 질문을 하는 등 우리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편이었어요.”

음악은 시간예술이고 시간은 리듬이다. 반복되는 리듬형을 우리음악에서는 장단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두 다리로 걷고 뛰어왔기에 ‘하나’라고 하는 시간 단위를 둘로 나누는 것에는 익숙해 있다. 가령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기는 쉽다. 그러나 사과 하나를 셋으로 쪼개라고 하면 일은 간단하지 않다. <쿵짝, 쿵짝>과 같은 2분식 리듬은 쉽고 단조로워 음악적으로는 별로 재미가 없는 리듬이다. 한국음악은 2분식 리듬보다는 3분할되는 리듬이 특징이다.

“한국음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주 고차원적인 3분할 리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이야기한다면 하나를 셋으로 나누어서 2/3와 1/3 또는 1/3과 2/3로 짝을 이룹니다. 1/3은 또 다시 세 쪽으로 쪼개지지요. 가령 아리랑을 2분식 리듬으로 부르는 것과 3분식 리듬으로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고 할 수 있지요. 한쪽이 길고 한쪽이 짧은 불균형의 리듬이지만 이러한 리듬을 활용하여 일정한 규칙을 찾아가요. 이러한 리듬에 익숙해 있지 않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3분식 리듬에 호기심과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또 악기의 음색도 서양의 악기에서 나오는 금속성의 음색과는 달리 대나무나 오동나무, 또는 명주실 등 식물성 재질에서 나오는 한국악기의 음색은 부드럽고 따뜻하여 인간미를 느끼게 되지요.”

사물놀이를 구성하고 있는 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은 음높이의 변화가 없지만, 리듬의 배합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기계적인 리듬이라면 한두 번만 들어도 지겹겠지만, 사물놀이는 예측되지 않는 리듬이 다양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든다는 게 서한범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음악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을 본 서 박사는 한국음악이 외국인에게 호기심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그들의 심장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매학기 400여명 학생들 몰릴 정도로 인기 강좌


일본음악과 인기없어 폐과하던 것과 크게 비교돼


K팝 알고나면 반드시 한국음악과 춤 꼭 찾을 것"


국악 실기·이론 전파 교수 제자 50여명 길러내


-외국인 음악학자나 전문가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노스웨스턴대와 UCLA에서 세계 민족음악을 공부하고 1960년 이후에는 미시간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윌리엄 맘(William Malm)이라는 학자가 있어요. 그는 민족음악 중에서도 아시아 음악, 특히 일본음악과 춤 전문가로 통하지요. 그래서 ‘아시아 음악’ 하면 그는 일본음악이라고 생각해온 학자이에요. 그런데 중국음악을 경험해 본 뒤에는 일본음악은 중국음악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70년대에 한국음악을 듣고 속된 말로 ‘뿅’ 갑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볼까요.”

한국 음악은 들을 때마다 나의 호기심을 끌며 일본이나 중국음악과는 달리 완전히 독창적이며 독특한 데에 놀랐다. 한국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서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직접 한국음악과 춤을 접했을 때, 그들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한 구조로 된 피리, 대금, 장고 등이 있으나 그 소리는 전혀 다르다. 한국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음계나 가락도 중국의 5음계나 일본의 음계와는 전혀 다르다. 무용도 감각적 요소가 풍부하여 매우 매혹적이었다. 한국의 음악과 춤은 우리 외국인을 보다 더 감동시킬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우아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양에서 가장 알고 싶은 신비로운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