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러한 주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소나기에 사그라지듯이 식어버리고 한쪽에서는 국한문 혼용론의 불가피성을 조심스럽게 호소하는 말들이 그 나름대로 조리 있게 일어나기도 한다.
대장염은 사람이, 창자염은 짐승들이 앓는 병?
마치 모서리차기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뛰는 어설픈 동작으로, 코너킥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세련된 동작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대장염이나 위암은 사람이 앓는 병이고 창자염이나 밥통 암은 짐승들이 앓는 병쯤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우리 것을 천시하는 언어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한 예로 ‘최고위원’이라고 하면 흡족해 하고 ‘으뜸위원’이라고 하면 왠지 조금 섭섭한 느낌이 드는 것이라든지 한길이나 큰길이라는 우리말을 두고 하필이면 대로(大路)라는 이름을 붙여서 강동대로, 송파대로, 올림픽대로 등으로 부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 많은 길 이름 중에서 우리말의 정취를 풍기는 이름은 아리랑 고개길, 노들길, 뚝섬길, 애오개길, 여의 나루 등 전체의 약 2~3%에 불과하며 ‘웃긴내’(위에 있는 길다란 내란 뜻)를 ‘상장천(上長川)’으로, ‘여우내’(폭이 좁은, 살찌지 않은 여윈 내)가 ‘여수(麗水)’로 변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숙명여자대학교’를 ‘맑고 밝은 계집 큰 배움터’로 하자든지 형수를 ‘언니의 계집’으로 하자든지 하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섹시하다는 말은 화냥끼가 있다는 말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섹시하다는 말은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화냥끼가 있다는 뜻인데도 그 소리를 들으면 칭찬의 말로 알고 모두 좋아들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화냥끼가 풍긴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일부러 한자로 바꾸어야 할 까닭은 없다. ‘신문로’는 ‘새문안길’로, ‘후암로’는 ‘투텁바위길’로, ‘상동’은 ‘윗마을’로, ‘야촌’은 ‘들마을’로 해서 안 될 이유가 없다.
넓은 곳이라는 뜻의 ‘너르목’이 ‘노루목’으로 발음이 변하고 결국은 노루가 많이 살았다는 얼토당토 않는 설화가 생기면서 노루 장獐, 목 항項의 ‘장항(獐項)’이 되었던 것이다. 장항뿐만이 아니다. 목포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는 동네의 앞쪽에 있는 개펄이라는 뜻인 ‘앞개’ 또는 남쪽에 있는 개펄이라는 뜻의 ‘남개’였다. 그런데 ‘남개’는 ‘나무개’가 되었고 나무는 ‘나무 목(木)’으로, 개펄은 ‘포구 포(浦)’가 되어 ‘목포(木浦)’가 된 것이다. ‘목포의 눈물’은 원래 ‘나무개의 눈물’이어야 맞을 게다. 또 ‘여윈비’는 ‘여우비’로 변하여 여윈비가 내릴 때 마다 여우는 팔자에도 없는 시집을 가게 되고 좁은 길이 나있는 여윈 고개길은 ‘여우고개’가 되어 여우들의 전용도로가 되었다.
남이섬은 남이장군과 관계가 없다
남이섬도 ‘남쪽에 있는 섬’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남의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