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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 때문에 팔자에 없는 시집을 가는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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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 때문에 팔자에 없는 시집을 가는 여우

[일제 잔재 땅이름과 말밑 풀이 1]

[글로벌이코노믹=반재원 기자] 우리는 주기적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국어순화운동과 한글 전용론의 필요성에 대하여 많은 지면과 시간을 들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마치 더 이상 외래어의 홍수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당장이라도 우리의 민족정신이 파멸에 이르고 말 것만 같은 위기감마저 확산시키면서 천 가지의 형태에 만 가지의 처방을 쏟아 놓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소나기에 사그라지듯이 식어버리고 한쪽에서는 국한문 혼용론의 불가피성을 조심스럽게 호소하는 말들이 그 나름대로 조리 있게 일어나기도 한다.
‘큰 창자염’보다는 ‘대장염’으로, ‘허파병’ 보다는 ‘폐병’으로, ‘염통병’보다는 ‘심장병’으로, 수학시간에는 두 변 같은 세모꼴보다는 이등변 삼각형으로, 운동경기 중계방송에서는 문지기보다는 골키퍼, ‘모서리차기보다는 코너킥으로 하는 것이 교양인이 쓰기에 더 세련되어 보이는 모양이다.


대장염은 사람이, 창자염은 짐승들이 앓는 병?

마치 모서리차기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뛰는 어설픈 동작으로, 코너킥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세련된 동작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대장염이나 위암은 사람이 앓는 병이고 창자염이나 밥통 암은 짐승들이 앓는 병쯤으로 생각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우리 것을 천시하는 언어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한 예로 최고위원이라고 하면 흡족해 하고 으뜸위원이라고 하면 왠지 조금 섭섭한 느낌이 드는 것이라든지 한길이나 큰길이라는 우리말을 두고 하필이면 대로(大路)라는 이름을 붙여서 강동대로, 송파대로, 올림픽대로 등으로 부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 많은 길 이름 중에서 우리말의 정취를 풍기는 이름은 아리랑 고개길, 노들길, 뚝섬길, 애오개길, 여의 나루 등 전체의 약 2~3%에 불과하며 웃긴내’(위에 있는 길다란 내란 뜻)상장천(上長川)으로, ‘여우내’(폭이 좁은, 살찌지 않은 여윈 내)여수(麗水)로 변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숙명여자대학교맑고 밝은 계집 큰 배움터로 하자든지 형수를 언니의 계집으로 하자든지 하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섹시하다는 말은 화냥끼가 있다는 말

영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섹시하다는 말은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화냥끼가 있다는 뜻인데도 그 소리를 들으면 칭찬의 말로 알고 모두 좋아들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화냥끼가 풍긴다.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고유의 토박이말을 일부러 한자로 바꾸어야 할 까닭은 없다. ‘신문로새문안길, ‘후암로투텁바위길, ‘상동윗마을, ‘야촌들마을로 해서 안 될 이유가 없다.

넓은 곳이라는 뜻의 너르목노루목으로 발음이 변하고 결국은 노루가 많이 살았다는 얼토당토 않는 설화가 생기면서 노루 장, 목 항장항(獐項)이 되었던 것이다. 장항뿐만이 아니다. 목포도 마찬가지이다. 원래는 동네의 앞쪽에 있는 개펄이라는 뜻인 앞개또는 남쪽에 있는 개펄이라는 뜻의 남개였다. 그런데 남개나무개가 되었고 나무는 나무 목(木)으로, 개펄은 포구 포(浦)가 되어 목포(木浦)가 된 것이다. ‘목포의 눈물은 원래 나무개의 눈물이어야 맞을 게다. 여윈비여우비로 변하여 여윈비가 내릴 때 마다 여우는 팔자에도 없는 시집을 가게 되고 좁은 길이 나있는 여윈 고개길은 여우고개가 되어 여우들의 전용도로가 되었다.

남이섬은 남이장군과 관계가 없다

남이섬도 남쪽에 있는 섬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남의섬’ ‘남이섬으로 불리다가 급기야는 남이(南怡)장군이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곳으로 와전되어 남이 장군의 한이 서린 곳으로 변해 버렸다. 지금은 섬 한 가운데에 남이 장군의 가짜 묘까지 만들어 비석까지 큼직하게 세워 놓았다.

또 순 우리말 땅 이름인 텃골기곡동(基谷洞)으로, ‘새터신기동(新基洞’)으로, ‘새동네신동리(新洞里)등으로 바꾼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넓은 벌을 뜻하는 너르메놀뫼가 되고 그것이 한자로 변하는 과정에서 은 누렇다는 황(黃)이 되고 는 산(山)이 되어 황산(黃山)이 되었다. 또 풀이 무성해서 새가 막을 치고 사는 섬이라 하여 새막섬이라 한 것을 새을, 맑을숙으로 하여 을숙도乙(淑島)가 되었다.

큰나루라는 뜻인 검나루가 곰나루, 곰나루가 웅진(熊津)이 되어 나루터에 곰 동상을 세워 놓은 일이라든지, 그 지역의 가장자리를 흐르고 있다는 뜻으로 지어진 가장자리 여울이 가재가 많이 살았던 것으로 잘못 전해져서 가재울이 되고 한자로 지명이 바뀌는 과정에서 가좌동이 되고 또 남가좌동’ ‘북가좌동이 되어 그곳에 큰 가재상을 세워 놓는 일 등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